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e스포츠 종주국이다. e스포츠 흥행의 시작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등장하면서부터 한국은 ‘e스포츠 열풍’에 빠졌다. 물론 e스포츠의 열풍은 당시 IT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하던 김대중 정부의 영향도 크게 한몫했지만 어찌 됐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빼놓고 e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게임의 역사는 스타크래프트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국민들 사이에서는 기정사실화되어 있으니 말이다. IT 산업의 발전과 동시에 성장해온 e스포츠 문화 덕분에 청소년들은 너도나도 눈치를 보지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채 ‘e스포츠 신드롬’을 불러왔으니 말이다.

스타크래프트로부터 시작된 e스포츠 열풍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면서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까지 탄생하였고, 심지어 케이블 방송까지 진출하게 되자 일부 프로게이머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정도로 영향력이 생겨났다. 이런 변화덕에 IMF 이후 우리나라는 1조 원이 넘는 산업 발전과 10만 명이 넘는 고용 창출까지 달성해내며 국가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이렇게 거침없이 성장해온 e스포츠 문화에도 암흑기는 존재했다. 야심 차게 등장했던 스타크래프트2의 부진과 함께 프로게이머들의 승부조작, 인성 논란, 정부의 과도한 게임 규제,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 불가 등의 여러 이유로 인기가 시들기 시작하던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1의 종말과 함께 엄청난 위기를 맞이하였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e스포츠에서 하나둘씩 발을 빼기 시작하였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프로게임단도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줄만 알았다.

다행히 리그오브레전드의 흥행과 함께 e스포츠는 다시 한 번 부활의 날갯짓을 펼칠 수 있었다. 한 번의 심각한 위기를 겪었던 e스포츠 문화는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진 채 세계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채 세계 대회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짜릿함을 느끼는 기쁨도 잠시, 그 행복마저도 그다지 오래가지는 못 했다.

한국이 e스포츠를 대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비해 중국은 매우 과감한 투자를 보이는 탓에 흐름이 서서히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중국의 e스포츠 이용자 수는 무려 1억 7,000만 명으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2017년도에는 일부 고등직업학교 신규 학과 목록에 ‘e스포츠운동과관리’가 포함되었으며, 중국 국가체육총국은 ‘프로게이머등록제’를 도입하여 정식 종목으로 추진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 문화부에 따르면 2017년도 기준 시장 규모가 약 8조 7,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게 분명하다.

이는 e스포츠를 홀대하고 있는 한국과 비교하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우려해온 수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쏟아부으며 ‘e스포츠 정식 스포츠화’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단순한 컴퓨터 오락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과 그러한 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일부 정치인 탓에 그마저도 쉽사리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둑과 체스가 정식 스포츠로 인정되면서부터 e스포츠 종사자와 지지자들도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신체활동을 중요시하는 게 스포츠다’라는 게 국민 대다수의 인식인데 바둑이나 체스도 신체활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e스포츠의 종주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이 정작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쉽사리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정부의 과도한 게임 규제로 인한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보인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내세우며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 일부 정치인들에게는 당연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국민들에게 여전히 ‘게임은 사회악’이라 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게 된다면 그들의 목소리와 입지가 눈 녹듯 사라질 것이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 아니겠는가. 이렇듯 우리나라 정부와 기성세대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탓에 오히려 민간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과 'e스포츠 정식 스포츠화' 그리고 '중국에 대한 소심한 반항'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실제로 과거 MBC 게임 히어로 출신 선수였던 서경종 대표는 현재 '콩두컴퍼니'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프로게이머 출신 선수들의 노후 복지에 힘쓰며 e스포츠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아직까지도 스타크래프트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국민들 앞에서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것도 그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이다. 이외에도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e스포츠를 살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민간의 노력을 절대 부정해서도, 외면해서도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 확실한 것은 항상 시대의 흐름을 알고 그에 맞게 움직이는 중국이 아무런 이유 없이 e스포츠를 스포츠화 시키며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는 게 절대 아닐 것이다. 이는 심척동자가 모두 아는 사실인데 정작 e스포츠 종주국을 외치고 있는 우리나라만 천하태평인 것 같다. 우리 정부는 심상치 않은 이러한 중국의 태도를 신중하고 침착하게 지켜봐야 한다. 중국으로 대한민국의 인재들을 떠나보내고 세계 대회에서 그들과 서로 맞대결을 펼치는 게 우리가 바라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결국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세계 대회에서 우리 민족끼리 서로 다른 나라의 국기를 흔들며 경쟁을 하는 모습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소중한 자원인 대한민국의 유능한 선수들이 국내에서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으며 전 세계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그날을 기대하며 말이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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