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이나 성차별 혹은 그 모두에 저항하면서 현재의 체제가 경제적 착취구조이며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 힘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그 저항이 아무리 미미하다 해도 언젠가는 모두를 위한 정의라는 이상을 배신하고 말 것이다.”

정혜연(28) 정의당 부대표는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bell hooks)의 책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에 나오는 이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본인이 여성이자 성소수자이고 가난한 청년이지만 단편적인 정체성과 관점만을 고수하며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정의’라는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 부대표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성차별 문제에서 어떻게 해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진보정치의 역할이고 많은 사람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라며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인 여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막으려는 사람들에 함께 맞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성소수자로서 첫 원내 정당 지도부가 된 정혜연 정의당 부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 부대표는 앞으로 정의당을 ‘청년들의 놀이터가 되는 정의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성소수자로서 첫 원내 정당 지도부가 된 정혜연 정의당 부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 부대표는 앞으로 정의당을 ‘청년들의 놀이터가 되는 정의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우리사회에 만연한 ‘혐오’ 정서에 대해서도 그는 “결국 혐오라는 것이 사회·경제적 절망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약자와 소수자가 서로 분절되고 나뉘는 게 아닌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될수록 누군가를 혐오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정 부대표는 가난한 농부의 자녀로 태어나 어렸을 때는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진보정치에 뛰어들었다. 이제 그는 아르바이트와 등록금, 저임금에 허덕이는 청년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1일 ‘청년정당’을 꿈꾸는 정 부대표를 만났다.

-성소수자로서 첫 원내 정당 지도부가 됐다. 진보정당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2009년 말 진보신당에 가입한 건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이런 게 다 알려지지 않겠구나’ 하는 위기의식도 느꼈다. 할 말 잘하는 정당, 목소리 내는 정당이 매력적으로 보여 뭐라도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역 모임에 들어가서 활동하기 시작해 지방선거 캠프에도 함께했다. 그런 과정에서 성소수자 당원을 만나며 중학교 때부터 고민한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됐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어 집에 빚이 많았고 그런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다 가난이 부모님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 탓임을 깨닫게 됐고 그럼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진보정당 활동에 애착을 갖게 됐다.”

-지난해 성소수자위원으로 있으면서 이른바 ‘메갈리아 사태’를 겪었다. 정의당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당시 상무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극단적 방식 미러링(mirroring)과 무분별한 혐오에 지지할 수도 없고 동의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상무위 결정에 동의하고 그게 정의당 입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소수자위원장을 했을 때도 소수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더 많은 권리를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이성애자·성소수자 구분 없이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누군가 가르치는 방식보다 함께 소통하고 포용하고 고민함으로써 우리 당이 성소수자 문제에서도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통해 그 권리를 획득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남녀가 대립하는 방식으론 약자와 소수자 ‘혐오’를 극복할 수 없다는 건가?

“‘메갈’ 문제에 있어 나는 결국 혐오라는 것이 사회·경제적 절망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특히 청년 세대에서 혐오 정서의 만연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극심해지면서 절망한 이들의 분노가 혐오라는 형상으로 상대를 향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한다면 분절하고 나누는 방식이 아닌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가 중요하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될수록 누군가를 혐오할 이유도 없어지지 않을까.”

▲ 정혜연 정의당 부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정혜연 정의당 부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나?

“나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벨 훅스(bell hooks)를 좋아한다. 그는 흑인이고 가난한 노동자 출신 여성이다. 그는 젠더라는 하나의 관점으로만 어떤 문제를 판단해 버리면 그건 우리 모두를 위한 정의를 배신한다고 봤다. 사회적 약자의 연대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는 이런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페미니스트냐, 아니냐 단정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성차별 문제에서 어떻게 해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진보정치의 역할이고 많은 사람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다.”

-최근 물의를 빚은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의 학교급식 노동자 비하 발언 등 정치권에 난무하는 혐오 발언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학교급식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바꿔야 하는 게 정치인의 역할인데 여성 정치인과 성소수자 정치인이 늘어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학교급식 노동자처럼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인 여성의 삶을 실질적 개선하려는 노력을 막으려는 사람들에 대해 가장 열심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당에 더 많은 의원이 생겨 이언주 의원 같은 이들이 국회와 한국사회에서 주류의 목소리가 되지 않도록 밀어내야 한다.”

-청년을 대변하는 부대표로서 ‘청년들의 놀이터가 되는 정의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청년정당이라는 것은 단순히 청년들의 정당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은 젊은 정당을 얘기하는 거다. 한국사회 존재하는 불평등 문제에 가장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 변화와 개혁을 가장 먼저 이끌어내는 정당이다. 그런 정치적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시기가 청소년·청년기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됐고 촛불혁명에 가장 앞장섰던 정의당과 심상정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도 높았다. 그런 청년을 대변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요즘은 보수정당들도 ‘청년’을 강조한다. 정의당의 ‘청년’은 어떻게 다른가?

“이 시대 청년이 여러 부문 중 하나라고 보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자금 대출을 받고 저임금에 노출돼 인생 전체를 비정규직으로 살게 될 수 있는 사람들의 문제다. 정의당은 이 시대의 새로운 노동자가 될 이들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많은 사회적 약자의 연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보수정당과 다르다. 우리사회 적폐는 자유한국당 같은 불평등 세력이 만들어 냈고, 바른정당도 불평등을 야기하고 약자를 배제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일조해 왔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수 세력의 공격에 함께 연대해 싸운 정의당이 청년을 위한 실질적 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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