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 MBC 드라마 PD에 대한 인사위원회가 다시 정회됐다. 지난 13일에 이어 두 번째다. 김민식 PD는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MBC에서 외쳤다가 징계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당당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인사위에서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MBC를 망쳤다는 비판을 받은 경영진을 상대로 ‘김장겸 MBC 사장이 왜 물러나야 하는지’ 소명했다. 일명 ‘필리버스터 투쟁’으로 명명되는 그의 ‘유쾌한 투쟁’은 그동안 MBC 상황에 무관심했던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시민들은 김민식 PD의 유쾌하면서도 당당한 투쟁에 박수를 보냈다.

MBC ‘PD수첩’ 제작진들도 지난 21일부터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2017년 한국의 노동 현실을 다루려던 아이템이 MBC 간부들에 의해 거부됐기 때문이다. 제작 거부에 동참한 PD들은 PD수첩 소속 11명 가운데 10명이다.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여전히 MBC가 ‘김장겸 사장 체제’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제작진 스스로 중징계를 각오했다는 얘기다. 특히 이번 제작 거부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아닌 제작진 차원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 사진=이치열 기자
▲ 사진=이치열 기자

간부들의 이탈 움직임도 시작됐다. 장형원 MBC 시사제작3부장은 지난 24일 보직사퇴 의사를 밝혔다. 장형원 부장은 이날 MBC 사내게시판에 “오늘 PD수첩 팀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는 글을 올렸다. “국민을 속이는 방송을 했고 지금도 정확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방송을 제작한” 것에 책임을 지는 차원이라 했다. 최근 상황에 대한 MBC의 일방적인 비난성명도 보직사퇴 이유라고 밝혔다.

김민식 PD의 ‘필리버스터 투쟁’과 PD수첩 제작진의 제작거부 그리고 장형원 부장의 보직사퇴는 MBC 정상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지가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2년 파업 이후 ‘김재철-김종국-안광한-김장겸 체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MBC 구성원들은 해고와 징계, 부당전보 등을 겪으며 스스로 위축됐다. 일부 구성원들이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워보기도 했지만 그 목소리는 외부로 뻗어가지 못했다. 시민들은 점차 MBC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MBC는 시민들과 격리됐다.

김민식 PD와 PD수첩 제작진의 제작거부, 장형원 부장의 ‘투쟁’을 주목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언론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와 MBC 경영진은 이런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사 구성원들이 고대영 KBS사장과 김장겸 MBC사장 퇴진을 압도적으로 요구했지만 이들은 묵묵부답이다. 이전 정권에서 ‘정권 편향적인 보도’를 해오는 데 앞장섰던 당사자들이 언론개혁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거나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결국 양사 구성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 제 목소리를 낸다는 건, 과거처럼 노조가 중심이 돼 전면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김민식 PD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언급한 것처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한 뒤 ‘각자 서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 방법’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방법은 페이스북 라이브가 될 수도 있고, 필리버스터 투쟁이 될 수도 있다. 부당한 지시에 대한 제작거부나 자신의 양심에 따른 보직사퇴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MBC 구성원들의 이 같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였을 때 오랜 기간 시민과 MBC 사이에 놓인 불신의 장벽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PD 한 명의 ‘필리버스터 투쟁’에 왜 시민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냈는지 MBC 구성원들은 헤아릴 필요가 있다. 김민식 PD와 PD수첩 제작진 그리고 장형원 부장의 투쟁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때문에 지금 MBC에는 더 많은 ‘김민식’과 ‘장형원’ 그리고 PD수첩 PD들이 나와야 한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차원의 투쟁이 아니라 MBC의 ‘○○○ 기자’ ‘○○○ PD’가 싸우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것이 지난 9년 동안 쌓인 ‘적폐’를 끊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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