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삼성 뇌물 재판’ 보도를 둘러싸고 법조계의 비판이 무성하다. 일부 언론이 ‘특검에게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형사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보도라는 것이다. 핵심 증인이 출석한 날엔 법리를 정반대로 해석한 보도도 나와 의도가 의심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3개월 간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공판 보도를 종합한 결과, 언론 보도는 ‘증거 없는 특검→특검 주장 뒤집는 증인→’맹탕‘ 안종범 수첩→여론 재판→삼성 경영 위기’ 순의 추이를 보였다. 이같은 보도는 다수 경제지 및 일부 보수언론에서 주를 이뤘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①증거 없는 특검?… “뇌물 사건 직접증거는 자백이다”

‘특검에게 증거가 없다’는 비판은 지금까지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이재용 재판 ‘증거 실종’···삼성 ‘특검, 정황말고 증거 내놔야’”(4월28일 더팩트) “4월 삼성 공판, 증거 부족한 특검의 ‘판정패’”(5월1일 메트로신문) “정황은 가득, 증거는 부실한 '세기의 재판'”(5월1일 머니투데이) “‘증거 넘친다’던 특검, 잇단 진술 번복에 ‘난감’”(6월21일 한국경제) “차고 넘친다던 증거 어디가고… 여론전으로 몰고가는 특검팀”(7월14일 헤럴드경제) 등이다.

요지는 명시적·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명시적으로’ 그룹현안을 청탁했다는 증거나 대통령과 대가관계를 합의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간부들의 각종 문자내역 △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국민연금관리공단·보건복지부 압수수색 문건 △‘대통령 말씀자료’ 및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업무수첩 등 특검이 제출한 2만 쪽이 넘는 기록이 정황 증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일반적인 형사재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면 저렇게 적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실적으로 형사재판은 직접증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범죄를 추단케 하는 정황증거를 가지고 다툰다. 뇌물의 경우 직접증거가 있다면 그건 ‘자백’인데 그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

삼성 재판은 “유죄에 필요한 조건이 절반 넘게 인정된 상황에서 출발했다(김 변호사)”는 것이 법조계 전반적인 평가다. 일반적으로 뇌물 사건은 금품을 준 사실이 있는지부터 다퉈지는데 이 사건은 이미 최씨 측에 거액의 돈이 건너 가 최씨가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고 양측 모두 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부분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에서 시작하고, 설사 받았다 해도 ‘배달사고가 났다’거나 ‘빌린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 마련”이라며 “이 사건은 공여가 팩트로 정리됐다. 그렇다면 이게 뇌물로 준 것이냐, 아니냐가 쟁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에게 직접 금품을 준 단순 뇌물죄는 ‘직무관련성’만 입증되면 범죄로 인정된다. 검찰 관계자는 “직무관련성은 쉽게 말하면 ‘니가 공무원이니까 돈을 주지 아니면 왜 주냐’로 설명할 수 있다”면서 “평소 선물을 주고 받는 관계로 매년 200억 원을 줘왔다면 대가관계가 없는 경우겠지만 말이 되느냐? 안종범 수첩을 보면 SS(삼성 지칭)아래에 ‘금융지주회사’ ‘은산분리’ ‘외투기업 세제혜택’ 등 삼성이 원하는 현안이 적혀 있고 바로 그 밑에 미르·K스포츠, 빙상, 승마 등 대통령이 바라는 부분이 고스란히 적혀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 공소장에 대통령이 △각종 재정·경제 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결정하고 △기업활동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사항들을 소관 부처를 통해 최종 결정하고 △기업에 각종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기관에 대한 지휘권·인사권 등을 가지고 있다고 적시했다.

② 安 수첩 직접증거 불발? 특검이 수세에 몰렸다?… “명백한 오류”

지난 7일엔 ’맹탕 안종범 수첩‘ 보도가 쏟아졌다. 재판부가 7월6일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을 간접증거로 채택한 것을 두고 언론은 “안종범 수첩의 직접증거 채택이 불발됐다” “이재용 부회장 측에 유리하다” “특검이 갈수록 수세에 몰린다” 등의 평가를 내놨다.

법조계에 따르면 ‘안종범 수첩이 간접증거로만 채택됐다’는 지적은 동어반복에다 재판부 결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이다. 안 전 수석 수첩은 원래 간접증거였다. 재판부 결정은 이를 증거로 ‘채택’한 것에 의미가 있다. 최순실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을 심리하는 형사합의22부는 이미 지난 1월 안 전 수석 수첩을 간접증거로 채택했다. 업무수첩이 간접증거로 채택돼 특검이 수세에 몰린다는 인과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 7월7일 동아일보 10면
▲ 7월7일 동아일보 10면

같은 기간, 업무수첩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보도도 주를 이뤘다. 7일자 동아일보 10면 “예고편만 요란했던 ‘맹탕 안종범 수첩’”은 ”(내용이) 대화 형태의 문장이 아니라서 정작 수첩 주인조차 그 의미에 대해 ‘모르겠다’거나 ‘그냥 (대통령이) 말씀하신 걸 기재한 것’이라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수첩 속 단어들이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불분명한 점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남근 변호사는 “대통령 말씀자료나 업무일지의 경우 나중에 증거로 사용될 것을 우려해서 가감할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수사기관에 하는 진술은 증거로 사용되는 걸 아니 가감하게 된다”면서 “말이 왔다갔다 하는 증인 진술보다는 다른 주관적 의사가 개입되지 않고 그대로 기록돼 있는 증거의 신빙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③특검 주장 뒤집는 특검 측 증인?… “100 중에 1 잡고 쓴다”

“특검 측 증인이 특검 주장을 뒤집었다”는 보도도 3개월 내내 발견됐다. 재판 해석은 언론사별로 다양할 수 있지만 전체 맥락을 잡지 못한 왜곡 보도도 적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6월1일 아시아경제 11면
▲ 6월1일 아시아경제 11면

독일에서 정유라씨를 돌봐 준 핵심 증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대표적이다. 박 전 전무는 지난 5월31일 법정에서 특검이 지목하는 삼성 측 ‘허위진술’을 확인한 증인이다. 삼성 관계자가 ‘정유라 승마지원’을 먼저 자신에게 물어봤고, 최씨와 대통령 간의 친분관계도 자신이 먼저 알려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삼성 측은 모두 ‘박 전 전무를 통해서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전무는 자신이 ‘최씨의 대리인’임을 알고 삼성이 접근했다는 증언도 내놨다.

일부 매체는 “삼성 합병 얘기 없었다 특검 주장 뒤집은 박원오”(6월1일 아시아경제) “이재용 재판 핵심 진술 번복…‘삼성 합병 얘기 없었다’”(6월1일 뉴스1) “박원오 증언 번복...‘혐의 입증‘ 수세에 몰린 특검”(6월1일 데일리안) 등의 보도를 냈다. 박 전 전무가 검찰 수사에선 “최씨가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다'라고 말한 걸 목격했다”고 해놓고 법정에선 “합병, 합친다는 말은 못들었지만 그런 뉘앙스는 있었고 은혜 앞에 무슨 단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난다”고 한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검찰 관계자 사이에선 당일 공판은 특검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재판이 50:50일 수도, 70:30일수도 있지만 그날은 99:1이라고 알려졌었다”며 “증거가치가 없는 내용이고 (증인이) 검찰과 법정에서 조금 다르게 진술한 건데 이 ‘1’을 잡고 그렇게 썼다. 악의적 보도라는 말도 나왔다”고 말했다.

④ 여론 재판과 경제위기로 귀결… 특검 ‘깎아내리기’ 시도?

‘증거 없는 특검→특검 주장 뒤집는 증인→’맹탕‘ 안종범 수첩’ 흐름의 보도는 여론 재판으로 귀결됐다. ‘증거가 없다’는 가정을 사실로 전제한 뒤 특검이 법원칙이 아닌 국민 여론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을 기소했다는 논리다.

이 경우 언론사 임원진이 대거 등장했다. “여론이 법정의 문턱을 넘어서면 안된다”(7월18일 김종수 아주경제 부국장), “특검의 여론몰이식 삼성 기소는 전제부터 잘못됐다”(7월19일 한국경제 사설), “이재용재판의 괴담들”(7월24일 박종면 머니투데이 대표) 등이 주요 기사다. 한국경제 사설은 특히 “결국 우리 사회의 반재벌 정서를 부추기고 이에 편승해 기어이 큰 것을 ‘한 건’ 올리고야 말겠다는 특검의 심산이 읽힌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적었다.

▲ 7월18일 디지털타임스 8면
▲ 7월18일 디지털타임스 8면

‘오너 부재’에 따른 위기론은 꾸준히 지펴져왔다. “경영공백 삼성 ‘미래 사업 이끌 리더가 없다’”(4월20일 아주경제), “외신들도 우려하는 삼성사태”(5월15일 매일경제), “‘맹탕 재판’ 속 삼성 경영 위기 가중”(6월14일 아주경제), “오너 공백 장기화땐 삼성의 미래 없다”(7월18일 디지털타임스) 등의 흐름이다.

이같은 경제위기론은 실체가 불분명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3년 구속됐고 이재현 CJ회장이 2014년 징역 4년 선고를 받았으나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력은 체감하기 어려웠다. 지난 1월 발표된 전성인 홍익대 교수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2008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와 삼성전자의 매출·이익률 간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안종범 업무수첩 관련해선 깎아내기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쪽(삼성)에서 아프니까 그러는(신경쓰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재벌 사건이 진행될 때 검찰에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나와 상당히 힘든 것은 맞지만 삼성의 경우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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