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한국의 노동 현실을 조명하려 했다가 아이템 불허 통보를 받고 지난 21일 ‘제작 중단’을 선언한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24일 MBC 시사제작국장과 편성제작본부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앞서 PD수첩 제작진은 내달 1일자 방송을 위해 ‘한상균을 향한 두 개의 시선’이라는 제목의 기획안을 제출했다. 파업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의 막말, 극단적인 과로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배 노동자와 졸음 운전으로 7중 추돌사고를 낸 버스 운전 노동자 사건, 사회 이슈가 된 최저 임금 문제 등을 다루고자 했다.

하지만 조창호 MBC 시사제작국장은 이들에게 “당신들이 당신들의 수장(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아이템을 하는 것은 방송법에 저촉된다”며 아이템을 막았다. 제작진의 취재 의도를 편향된 잣대로 재단한 것이다.

▲ 김현기 MBC PD수첩 PD가 24일 오전 서울 상암 MBC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작 자율성 실태를 고발하고 책임자들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현기 MBC PD수첩 PD가 24일 오전 서울 상암 MBC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작 자율성 실태를 고발하고 책임자들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민주노총의 가맹 조직인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노조원들이 한 위원장에 대한 아이템을 제작할 경우 이해당사자의 일방 주장만을 대변하게 된다는 주장이나 이는 MBC의 대다수 PD들이 노동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수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MBC가 ‘사용자’로서 노사 관계의 이해 당사자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울러 제작 불허 조치는 저널리스트의 양심과 자율성을 침해·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MBC PD수첩 제작진들은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 전후로 회사는 PD수첩 PD 절반 이상을 해고하거나 징계하고 타 부서로 발령낸 후 빈자리를 파업 중에 뽑은 대체 인력으로 채웠다”면서 “회사의 징계와 부당 인사 앞에 무력했으나 그럼에도 PD수첩이 최악의 방송을 하지는 못하게 버티자며 지난 5년을 견뎌왔다”고 말했다.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했던 김현기 PD는 “아이템을 발제한 PD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해당 아이템을 다룰 수 없다고 한 것은 노동에 대한 편향적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그동안 PD수첩 아이템 불허 과정에서는 ‘시청률’, ‘시의성’ 등을 운운하며 PD수첩을 위하는 것 인양했다면 이번 사태는 노골적으로 편향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 MBC PD수첩 제작진들은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PD들이 양심과 상식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제작 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조 국장과 김 본부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MBC PD수첩 제작진들은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PD들이 양심과 상식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제작 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조 국장과 김 본부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김 PD는 “전사적으로 김장겸 MBC 사장 사퇴 요구가 있는 상황에서 PD수첩을 희생물 삼아 경영진의 정치적 의도를 외부에 드러내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PD들이 징계를 감수하고 단체 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이라도 이번 아이템과 관련해 건전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우리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수장’을 운운하는 국장이 있는 한 논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태의 모든 책임은 양심을 저버릴 수 없는 PD들을 극단으로 내몬 조창호 국장과 김도인 본부장에 있다”고 말했다.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MBC PD들의 제작 자율성을 유린하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방송을 막는 언론 부역자들이 MBC를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협회장은 “그런 상황에서 MBC PD수첩 PD들은 어떻게든 방송은 유지돼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부당한 간섭과 아이템 킬을 감내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버텨왔다”며 “이번 PD들의 행동은 공영방송 MBC를 되살리는 소중한 기폭제가 될 것이다. 반드시 MBC를 되살릴 것이라는 다짐을 국민들에게 전한다”고 말했다.

▲ MBC PD수첩 제작진들은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PD들이 양심과 상식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제작 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조 국장과 김 본부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MBC PD수첩 제작진들은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PD들이 양심과 상식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제작 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조 국장과 김 본부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MBC PD수첩 제작진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PD들이 양심과 상식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제작 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조 국장과 김 본부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PD수첩 제작 중단에는 PD수첩 PD 11명 가운데 10명(강효임·김현기·서정문·소형준·이영백·전준영·조윤미·조진영·최원준·황순규)이 참여했다. 참여하지 않은 PD 한 명은 2012년 파업 과정에서 채용됐다. 

한편, 미디어오늘은 조 국장과 김 본부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 시도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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