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일자리공약이 구체화되고 있다. 안정된 고용과 생활임금 보장 여부가 좋은 일자리(decent work)의 국제기준이라고 할 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와 최저임금 1만 원 정책은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정권교체를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모든 개혁에는 기득권 저항이 있기 마련인데, 현재 상황은 주체가 준비되지 못한 개혁에 따른 후과가 걱정이다.

전통적인(!) 반발로는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이언주 의원의 ‘밥하는 동네 아줌마’ 발언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한 보장요구를 “세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부한 궤변과 유사하다.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는 보수야당은 공무원 증원을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라며 결사반대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의 망언이 노동 천대를 넘어 반정치의식과 공공부문의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바른 증세논쟁을 위하여

오랜 군부독재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공공부문은 부패하고 무능한 비효율의 온상이라는 인식은 정치가 시민의 삶과 무관하다는 반정치 의식만큼 뿌리가 깊다. 취약했던 공공부문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와 만나면서 ‘작은 정부와 민영화’라는 주술을 맹신하게 만들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계급타협 산물로 형성된 복지영역에 대한 자본의 반격이 민영화 배경인 반면, 정치적 자유주의조차 겪지 못한 한국사회에 ‘이식된’ 신자유주의는 민영화가 나쁜 권력을 시장으로 나누는 일종의 민주화처럼 오인되기도 했다.

한국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 증세논쟁은 더 미룰 수 없고, 시민의 보편적 복지를 생산하는 공공부문으로 재구성하는 문제는 증세논쟁의 핵심이다. 내가 낸 세금보다 더 많은 사회안전망 혜택이 돌아온다면 누가 증세를 반대하겠는가.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더 중요해진 노동조합의 역할

증세논쟁이 진영논리가 아닌 생산적 토론과 사회적 대타협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의 보다 과감한 정책제시와 함께 노동조합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선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으로 천명한 것은 의미 있다. 상업성을 중시했고 비정규직 확산과 성과연봉제 도입 등 나쁜 일자리를 민간으로 확산시키는 첨병으로서 공공부문 역할이 강조됐던 지난 정권의 공공기관 운영원리는 폐기돼야 한다.

분배냐 성장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분배를 통한 성장이며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성장이냐를 논의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공공부문은 민간부문과 시장을 통해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탄탄한 공공부문은 시민과 기업의 재생산 토대가 되는 것이다.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한전의 적자원인이지만 기업에게는 비용절감이 되고 낮은 화물운송 요금은 코레일의 부담이지만 수출대기업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을 납세자의 복지로 환원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지키고 늘리는 주체로서 노동조합 역할이다. 구의역 김 군 억울한 죽음의 교훈은 공공부문의 나쁜 일자리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시민 모두를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점이며 병원노동자의 인력이 늘어나고 적절한 휴식이 보장될 때 국민 건강권도 강화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 6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참석해 일자리 추경 예산 편성에 협력을 당부하는 내용의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했다. 사진=KBS 페이스북 LIVE 방송 갈무리
▲ 6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참석해 일자리 추경 예산 편성에 협력을 당부하는 내용의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했다. 사진=KBS 페이스북 LIVE 방송 갈무리
정규직 노조,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가야

따라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납세자에게 제공하겠다는 선언과 동일하다. 이를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발생한 ‘주체의 불일치’ 즉 정규직화 대상인 비정규직들의 낮은 노조조직률과 기존 정규직 노조의 혼란문제를 시급히 극복해야 한다.

정규직화에 미온적이거나 반대하는 의견은 크게 무임승차론과 총액임금제가 존재하는 현실을 그대로 둔 채 갈등을 현장으로 이전시킨다는 불만이다. 교육현장이나 공무원처럼 국가고시를 거쳐 입직하는 경우는 고시제도 존폐가 걸린 문제이고, 수년간 공기업 시험을 준비한 청년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이나 고위관료들이 저지른 비정규직 채용비리가 있는 경우 정규직의 반대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조는 노동운동 밖에 있었던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의 조력자가 돼야 한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난관들을 함께 논의하고 지혜를 찾기 위해서도 노동조합으로 목소리를 모으는 것은 필수적이다. 앞에서 제기됐던 여러 의견들도 노동조합을 통해 허심하게 토론하고 공동 대응할 것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신분에서 계급으로’ 자본주의 초기 분절화 된 개별에서 노조건설과 연대를 통한 계급형성이 노동운동의 시작이었다면 어느새 ‘정규직이 신분’이 돼 버린 오늘날 공공부문 노동조합에서부터 한국노동계급형성의 도전이 시작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통해 노동조합이 시민권을 회복할 때 증세논쟁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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