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남편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편법 상속을 인정했다는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중앙일보 기사가 삭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취재한 사안이 아니고 뉴스타파가 의미 부여한 내용을 그대로 제목으로 인용해 적절치 않다고 팀 내부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지난 21일 “삼성 이부진, 재산분할 피하려 ‘편법상속’ 스스로 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혼 소송 과정에서 이부진 씨가 재산분할요구를 피하기 위해 그동안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온 ‘편법상속’을 고스란히 인정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임 전 고문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이부진 사장의 재산 내역 조회를 요청했다. 이 사장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유지와 증식에 본인의 노력과 가족의 희생이 있었으니 재산 분할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는 것.

뉴스타파는 이 때문에 이 사장이 ‘딜레마’에 빠졌다면서 “(이 사장이) 결혼 뒤 스스로의 힘으로 재산을 형성했다고 인정할 경우 재산분할요구에 응해야 하고, 반대로 스스로의 힘이 아닌 아버지와 삼성그룹의 도움으로 재산을 형성했다고 주장할 경우 재산분할요구에는 응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동안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온 편법 상속을 인정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지난 21일 “삼성 이부진, 재산분할 피하려 ‘편법상속’ 스스로 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혼 소송 과정에서 이부진 씨가 재산분할요구를 피하기 위해 그동안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온 ‘편법상속’을 고스란히 인정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뉴스타파가 파악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재산 내역. 사진=뉴스타파 홈페이지
▲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지난 21일 “삼성 이부진, 재산분할 피하려 ‘편법상속’ 스스로 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혼 소송 과정에서 이부진 씨가 재산분할요구를 피하기 위해 그동안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온 ‘편법상속’을 고스란히 인정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뉴스타파가 파악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재산 내역. 사진=뉴스타파 홈페이지
뉴스타파는 이 사장이 법원에 제출한 준비 서면을 확보해 이 사장이 재산분할을 피하기 위해 편법 상속을 인정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실제 이 사장의 준비 서면에는 “원고(이부진)의 부(이건희)는 자녀들의 수입이 거의 없던 시점에 자녀들에게 다액의 돈을 증여해 삼성물산 주식 및 삼성 SDS 주식을 취득하도록 했고 위와 같이 취득한 주식은 부친의 뜻에 따라 회사에서 실무적인 부분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피고(임우재)가 원고(이부진) 재산의 유지 관리에 관여할 여지 자체가 없었다” 등 ‘편법 상속’을 인정한 대목이 있어 논란이었다.

▲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중앙일보 22일자 기사는 불과 5분 만에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구글, 중앙일보 온라인.
▲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중앙일보 22일자 기사는 불과 5분 만에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구글, 중앙일보 온라인.
중앙일보는 이 보도를 “‘재산 2조 이부진, 재산분할 피하려 편법상속 인정’”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2일 오후 1시41분 보도했으나 현재 삭제된 상태다. 관련 기사를 구글을 통해 들어가보면 “요청하신 기사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문구가 뜬 뒤 중앙일보 홈페이지로 이동된다.

다만 구글에 저장된 페이지를 통해 관련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보도는 추인영 중앙일보 기자가 작성한 것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남편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편법 상속을 인정했다고 뉴스타파가 21일 보도했다”고 쓰여 있다.

이어 중앙일보는 “뉴스타파는 ‘이 사장의 재산 형성 과정에 기여했다’며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임 전 고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사장이 재판부에 제출한 준비 서면을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며 “보도에 따르면, 이 사장은 준비 서면에서 ‘(이건희 회장이) 자녀들의 수입이 거의 없던 시점에 자녀들에게 다액의 돈을 증여해 삼성물산 주식 및 삼성 SDS 주식을 취득하도록 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 22일 삭제된 중앙일보 기사 “‘재산 2조 이부진, 재산분할 피하려 편법상속 인정’”. 사진=구글 이미지
▲ 22일 삭제된 중앙일보 기사 “‘재산 2조 이부진, 재산분할 피하려 편법상속 인정’”. 사진=구글 이미지
중앙일보 관계자는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2일 오후 1시43분에 기사가 나왔고 5분 뒤 내려갔다”며 “해당 기사는 온라인 속보 담당 팀에서 작성한 것으로 (중앙일보 기사) 제목 자체가 뉴스타파가 의미 부여한 내용이라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건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취재한 사안은 아니었다. 뉴스타파가 법원에 제출된 문서를 확보하고 해석한 내용을 제목으로 작성해 과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팀 내부에서 이처럼 판단해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취재를 해서 팩트를 우리가 파악했다면 기사를 내릴 이유는 없다”며 “속보를 처리하다보면 간혹 이런 일이 빚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타파 보도 이후 ‘놀랍게도’ 중앙일보가 뉴스타파를 인용해 보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보니 기사가 삭제됐다”며 “그 이후 뉴스타파 기사는 만 하루 넘게 다른 매체에선 전혀 인용이 되지 않고 소셜미디어에서만 큰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오늘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뉴스타파 보도 내용과 거의 같은 보도 자료를 내자 박 의원을 인용한 기사가 하나둘씩 보인다”고 말했다.

▲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의 23일자 페이스북 화면.
▲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의 23일자 페이스북 화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그룹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자신의 이혼 소송과정에서 재산분할을 피하려고 스스로 편법상속을 인정했다”며 “불법이익환수법, 일명 ‘이재용법’이 통과되면 이부진 사장이 불법행위로 벌어들인 3천억 원 가량의 재산에 대한 환수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SBS, 연합뉴스, 세계일보, 뉴시스 등 다수의 언론이 박 의원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지만 이와 관련한 중앙일보 기사(포털 기준)는 오후 7시까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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