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고 나서 스무 개 정도 언론사에 제보했어요. 어제도 일곱 개 언론사에 메일을 보냈어요. 보냈던 곳에 또 보내고…인터뷰를 한 언론사도 있었는데 기사는 나오지 않았어요. 잘 모르겠지만 삼성 광고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배진영(36)씨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남편 이창헌(40)씨는 지난달 17일 오전 12시50분께 거제시 한 15층 아파트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삼성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안전화를 신은 채였다. 직급은 과장. 당시 고인에게는 갓 두 달 된 딸이 있었다. 딸은 지난 10일 100일을 맞았다.

그는 6년 전 삼성중공업 연구직으로 입사했다. 카이스트에서 학사를, 일본 동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천상 ‘연구직’이었다. 지난해 조선업계에 불황이 닥치자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연구직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고인은 연구부서가 아닌 관리부서로 옮기게 된다.

▲ 고 이창헌씨의 배우자 배진영씨가 지난 17일 서울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 고 이창헌씨의 배우자 배진영씨가 지난 17일 서울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부서만 옮기면 구조조정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옮긴 부서에서는 지난 1년간 16명 중 4명이 퇴사했다. 고인과 함께 일하다 퇴사한 한 동료는 “정리해고를 적극적으로 하는 부서였다”며 “특히 이 과장은 찍혀있었다. 적극적으로 나가란 말은 안 했으나 압박을 수시로 줬다”고 말했다.

고인의 정신과 면담기록을 보면 업무 스트레스를 자주 호소했다. 배씨는 사고 얼마 전부터 남편이 이상했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이 한 행동을 자꾸만 잊었다. 배씨가 병원을 권했지만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자살 산재판단기준에 따르면 “판단능력이 없어야 한다.” 간호사였던 배씨는 남편이 산재라고 믿는다.

삼성중공업은 “사내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재해가 안 된다”고 유족에게 말했고 언론에도 “고인이 3개월 동안 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한 날은 11일에 불과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배씨 주장은 다르다. 근무 시간뿐 아니라 노동 강도, 노동 환경도 두루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수차례 언론에 제보했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외에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 8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이후에는 언론사로부터 '기사가치' 가 떨어진다는 뉘앙스의 답을 받았다. 17일 배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아래는 일문일답이다.

▲ SBS 그것이알고싶다 7월8일 방송화면 갈무리
▲ SBS 그것이알고싶다 7월8일 방송화면 갈무리
- 어렵겠지만 당시 상황을 알려 달라.

“사고 며칠 전부터 남편이 이상했다. 수요일 밤 12시가 다 돼도 집에 오지 않기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목요일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들어왔다. 어디 들렀다 왔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요일 오전에 ‘우울증이 온 것 같고 도망가고 싶고 회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 어떤 식으로 이상했다는 건가.

“단기적으로 기억을 잃더라. 제가 주중에 혼자 아이를 보니까 주말 중에 하루는 남편이 아이를 봤다. 우유를 먹여 놓고도 ‘내가 우유를 먹였나?’라고 되묻는가 하면 ‘저녁에 누군가와 연락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쉬어줘야 하는데 쉬지 못하니까 그런 것 같았다.”

- 그게 마지막이었나?

“그렇게 목요일 하루를 쉬고 금요일 오전 3시에 나갔다. 원래 하루를 쉬고 나면 그 다음날은 일찍 출근한다. 보통 출근시간은 오전 5시에서 6시 사이다. 그리고는 토요일 오전 2시 즈음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작업복을 입은 채로 발견이 됐는데 부인 번호가 있어서 연락을 드린다고. 그 소식을 듣고 다리가 풀렸다.”

- 평소에 고인이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호소했나?

“자기한테 일이 많이 몰리는 것 같다고 하면서 희망퇴직 대상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가 6월9일 인사과에 자신이 희망퇴직 대상자인지 직접적으로 문의를 했는데 희망퇴직 대상자가 아니라며 좋아했다. 버티겠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이 순진하다. 인사과에서 누가 그걸 곧이곧대로 말해주겠나.”

고인의 정신과 면담기록지에도 업무 스트레스는 그대로 드러난다. 고인은 지난 4월29일 정신과를 찾아서 “작년부터 회사에서 구조조정도 있고 그러니까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고 말했고 5월20일 면담에서는 “사람들을 대할 때 피하게 된다”며 “작년에 희망퇴직 말이 나오면서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6월10일 면담에서도 “우울감이 계속 있는 것 같다”며 “작년 이맘 때 희망퇴직 이야기가 처음 나오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3일 전인 6월14일에는 “지금 심적으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최근 1~2주 사이에 심하게 우울하다”고 말했다.

▲ 고인의 정신과 면담기록지. 사진=유가족 제공
▲ 고인의 정신과 면담기록지. 사진=유가족 제공
- 고인의 업무 스트레스에 대해 주변 동료들은 뭐라고 하나?

“지금 삼성중공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말해줄 수가 없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남편과 같이 일하다가 몇 달 전 그만둔 분이 당시 상황을 말해줬다. 그 분 말에 따르면 파트장이 남편에게 ‘너는 하는 일이 뭐야. 니는 뭐하는 사람이야’ 라고 말하자 남편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동료 분 말에 따르면 남편은 압박을 받고 나면 밥도 먹지 않고 일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고인은 휴대전화에 “파트장의 태도 불쾌함. 왜 나를 무시하는가. 내가 그를 무시하는가. 내가 잘 못하나” “이상하다 주변의 공기” “팀장의 태도, 불편하다” “파트장들이 무섭다. 파트장들과 친해지고 싶다. 팀장님도 무섭다. 왜 무서운가? 왜 주눅드는가” 등의 기록을 남겼다.

- 고인이 딱히 업무를 잘못한 것은 아닌가?

“동료들에 따르면 관리부서에 고학력자는 남편밖에 없다고 들었다. 고학력자라서 기대도 높았던 것 같다. 동료 말에 따르면 상사가 ‘카이스트 나왔는데 영어를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이 체격이 작다. 키가 155에 몸무게가 48키로다. 건장한 체격이 아니니 사람들이 만만하게 대했을 것 같다.”

- 장례식에 회사 사람도 왔을 텐데 회사 측 입장은 뭐였나?

“어떻게 해주실 거냐고 했더니 아무 말도 안 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 하고 회피만 했다. 가족이 산재신청을 할 테니 회사에서 협조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협조를 해줄 수 없으면 ‘NO’에 체크를 하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어디에도 체크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샜다.”

- 그래서 어떻게 됐나?

“아침이 됐는데 장례식장에 경찰이 왔다. 삼성중공업에서 업무방해로 우리를 신고했다고 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압박을 준 게 전혀 없는데 이해가 안 됐다. 산재 신청에 협조를 못하면 NO에 체크를 하고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삼성중공업 사람들과는 만나지 못했다. 삼성 측의 회유 같은 건 없었다.”

▲ 고 이창헌씨와 배진영씨. 사진=유가족 제공
▲ 고 이창헌씨와 배진영씨. 사진=유가족 제공
- 언론 보도를 보니 삼성중공업은 고인이 최근 3개월 동안 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한 건 11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과로로 인한 자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을 수 없다. 삼성중공업에 출퇴근 기록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보여줄 의무가 없다며 주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생활을 보면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했다. 보통 오전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출근을 했다. 남편 휴대전화 기록을 보니 오전 7시30분부터 8시까지 청소를 했더라. 그리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였다. 거기에 업무 강도가 높았다. 남편보다 직급이 높은 직원 두 명이 육아휴직을 간 상황이었는데 인력 보충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 그 이후는 유족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6월26일부터 6월28일까지 가족들이 3일 동안 삼성중공업 정문, 남북, 북문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가족들 모두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여서 더 이어가지 못 했다. 저희 친정 아버지는 혼자서라도 계속 1인 시위를 하겠다고 했는데 친정 아버지가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다.”

- 언론사에 제보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스무 곳 이상 언론사에 제보를 했다. 어제도 일곱 곳에 제보를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송되기 전에는 경향신문, 와이뉴스,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에 보도된 게 전부였다. 한 종합일간지는 지난 6월 인터뷰를 길게 해갔다. 하지만 보도되지 않았다. 보도 전문 채널에서도 1인 시위하는 장면 등을 촬영해갔다. 취재 기자가 ‘보도하고 싶은데 위에서 아직 결정이 안 났다’고 말했다. 아마 광고 때문인 것 같다.”

- 그래도 ‘그것이 알고 싶다’ 에 방영된 이후에는 보도가 많이 나가지 않았나?

“대부분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보도였고 심도 있게 다룬 기사는 없었다. 한 지상파 방송사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이 나갔기 때문에 보도할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인데 공익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익을 챙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를 여러 가지 입장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깝다.”

▲ 고 이창헌씨 유가족이 거제도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유가족 제공
▲ 고 이창헌씨 유가족이 거제도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유가족 제공
- 그렇게 언론에 제보를 하고 지금도 알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알고 보니 과로사라는 게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더라. 시간적인 문제만 과로사 원인이 되는 게 아니다. 업무량도 부담이고 희망퇴직이나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도 과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왜 유가족인 우리가 다 증명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에 남편 유품을 찾아 가려고 했지만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아마 삼성에서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다 없애버렸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이 증명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 사고 당시에 아이가 두 달이라고 들었다. 지금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

“제가 아이를 돌 볼 정신이 아니다. 친정 부모님이 거제도로 내려가셔서 시어머니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저 같은 경우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리가 풀리는 와중에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힘든 일이 생기면서 겪는 감정의 단계가 있고 그 과정에서 나를 어루만져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못했다. 지금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삼성중공업에서는 이번 일이 산재처리가 되는 전례를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모두 다 보상해줘야 하니까. 오히려 그래서 산재 처리가 되게 하는 걸 우선으로 두고 있다. 처음에는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를 할까 생각도 했다. 남편 관을 들고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싫어하던 회사로 관을 들고 간다는 게 고인에게 미안해서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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