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직업병 보도와 관련해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에 악의적인 기사를 ‘모욕죄’로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4단독 류종명 판사는 지난 13일 반올림이 인터넷매체 ‘디지털데일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반올림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반올림에 1000만원을 물어주게 됐다.

반올림이 문제 삼은 기사는 총 11건으로 해당 기사에는 “단체 존립을 위해 가족들을 볼모로 잡고 있다” “상식 밖의 행동” “단체 존속을 위해 온갖 근거 없는 주장과 거짓말” “지난 8년간 쓰고 있었던 거짓 정의 가면” “삼성과 싸워 이겼다는 훈장” 등의 표현이 나온다.

재판부는 “디지털데일리가 언론기관으로서 가질 수 있는 비판적 시각에서 기사를 작성했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 취지나 표현의 정도가 지나치게 경멸적”이라며 “이는 반올림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모욕행위로 인격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 반올림이 문제를 제기한 디지털데일리 기사 제목. 디자인=이우림 기자
▲ 반올림이 문제를 제기한 디지털데일리 기사 제목. 디자인=이우림 기자
재판부는 “반도체 공장 직업병 관련 논란이 조속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오로지 반올림에게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디지털데일리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그 책임이 오직 반올림에 있는 것처럼 7개월 동안 11회에 걸쳐 지나치게 경멸적인 표현으로 비난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반도체 공장 직업병 논란이라는 공공의 이해에 관해 조속한 문제 해결을 통한 국내 반도체 사업의 발전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등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손해배상’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기사의 주된 취지가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반올림이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원회가 찬성한 보상위원회에 따른 보상절차를 거부하고 농성에 돌입한 것에 대한 비판적 의견 표명”이라고 봤다.

이에 대해 반올림 권영은 활동가는 “허위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기사 자체가 ‘사실’에 관한 기사가 아니라 ‘의견’ 기사라고 본 것”이라며 “이 부분을 두고 삼성 등에서 해당 기사가 ‘진실’이라고 주장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권 활동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나친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모욕죄를 인정 받은 것이 다행”이라며 “당시 삼성의 언론플레이로 인해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쏟아져 교섭을 기다리고 있던 피해자들이 혼란을 느끼고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권 활동가는 판결문 앞부분의 ‘인정사실’ 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보도 배경’에서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의 입장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삼성 자체 보상위원회의 발족 과정을 담았다. 반올림이 노숙농성에 들어가게 된 배경이다.

권 활동가는 “그 동안 언론이 반올림의 농성에 대해 제대로 된 사실 관계도 알지 못한 채 악의적인 기사를 써서 답답했는데 이번 판결에서 그 과정이 제대로 정리된 느낌”이라며 “일련의 과정이 기록으로 남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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