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직장인일까. 언론인을 희망하는 이들의 가장 큰 착각은 “기자는 다른 직장인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기업을 비판하고, 사회를 고발하고,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판 대상에는 자신의 회사(언론사)도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많은 기자들이 정권에, 회사에, 사주에, 광고주에 눌린다. ‘그들’을 비판하는 기사는 ‘그들’이 원하는 기사로 수정되기 일쑤다. 회사(언론사)에 저항하면 부당징계를 받거나 업무와 관련 없는 부서로 배치되기도 한다. 

해직언론인인 최승호 감독의 ‘공범자들’은 이런 언론 환경에서 저항했던 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불신이 극심해졌지만 여전히 권력에 ‘개기는’ 기자, PD들이 있다고 말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기자나 PD를 희망했던, 혹은 학생시절, 신입기자 시절 선배에게 배운 ‘저널리즘’에 반하지 않는 언론인 생활이다. 이들이 낙하산 사장이 출근할 때 피켓을 들고 “사장 물러가라”고 외친 이유다.

최승호의 ‘공범자들’은 그저 말 잘 듣는, 저항하지 않는 직장인으로 살아온 언론인들에게 다시 한 번 ‘저널리즘 원칙’을 환기시킨다. 사실 기자나 PD는 이른바 ‘저널리즘 뽕’이라는 각성제가 없으면 견디기 힘든 직업이기도 하다. ‘공범자들’에서 김민식 MBC PD는 “PD라는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 돼’라는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회사는 끊임없이 ‘네가 없어도 돼. 할 사람 많아’라는 식으로 구성원들을 짓눌렀다”고 말했다. ‘저널리즘 뽕’은 언론인 자존심의 또 다른 이름이다. 

▲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는 기자들에 대한 선망을 ‘공범자들’에 기대했다면 조금은 낭패감을 느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개기는’ 언론인들이 변방으로 어떻게 밀려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MBC ‘PD수첩’을 연출했던 PD들은 손에 포승줄이 묶인 채 검찰로 들어간다. 제작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지난 2014년 10월 MBC 교양제작국 해체와 조직개편 과정에서 PD 6명과 기자 3명은 스케이트장 관리 등에 투입되기도 했다. 영화는 이들이 스케이트장을 청소하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는 마지막 멘트를 뒤로 앵커 자리에서 물러난다. KBS ‘미디어포커스’가 폐지된 자리에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코너가 생기고 MB가 인사를 한다. 씁쓸한 장면 투성이다.

씁쓸한 건, 지난한 싸움에도 정권이 바뀌었어도 MBC와 KBS의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KBS MBC 경영진도 그대로다.  2012년 노조 파업을 이끌었던 정영하 전 MBC 노조 본부장은 ‘공범자들’ 상영회에서 “우리가 그때 ‘멋있게 싸웠었지’ 이런 느낌이 아니라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라며 “우리가 너무 눌려있고 말이 안 되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아직 정리를 못했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에는 제작자들 이름보다 먼저 나오는 명단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징계, 해고 등을 당한 기자와 PD들이다. 명단은 꽤 오래 동안 화면을 채운다.

‘공범자들’에 출연한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투쟁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지난한 세월에 침묵하지 않았다는 거, 그걸 보여주려고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침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 그들의 투쟁이 승리하는 장면을 보고 싶기도 하다. 언제까지 ‘저널리즘’을 하고 싶은 기자와 PD들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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