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문건 공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민연금 의결권을 통해 삼성 경영권 승계를 지원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전격 공개됐다.

청와대가 14일 공개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에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과 관련된 내용들이 담겨 있어 현재 진행 중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청와대 문건이 생산된 시기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청와대 근무 기간과 일부 겹치고 문건에 민정수석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우 전 수석에 대한 재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열어 “민정비서관실 공간을 재배치하던 중 7월3일 한 캐비닛에서 이전 정부 민정비서관실에서 생산한 문건을 발견했다”며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한국일보] 우병우의 ‘판도라 상자’ 열렸다_종합 01면_20170715.jpg
청와대에 따르면 발견된 자료는 모두 300여종으로 △2014년 6월11일부터 2015년 6월24일까지의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장관 후보자 등 인사 자료 △국민연금 의결권 등 각종 현안 검토 자료 △지방선거 판세 전망 등이 포함됐다. 수석비서관회의 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문건들은 2013년 3월부터 2015년 6월 사이에 작성됐다.

특히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라는 문건에 포함된 자필 메모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 → 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등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밝혀졌다.

또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하다”며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를 예로 들었다.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삼성물산 주총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에 찬성표를 던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향신문은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 등이 이 과정에 국민연금 측에 외압을 행사했을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었다”며 “‘삼성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방안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문건이 작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인 2015년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막대한 지원금을 냈고,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독일산 말을 구매해줬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_삼성 경영권 승계 기회로 활용, 도와줄 것은 도와줘야__종합 03면_20170715.jpg
‘판도라 상자’ 열린 우병우 재수사 불가피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실이 삼성 현안 해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그간 국정농단 개입을 부인해온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모르쇠’로 일관하다 자신과 관련된 부분이 드러나면 ‘민정수석실의 정당한 업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문건을 보면 당시 민정수석실이 업무 범위를 넘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 등에 직접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충분히 살 수 있다.

한겨레는 “문건에 등장하는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등의 메모는 민정수석실의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대목들”이라며 “민정수석실이 ‘박근혜-이재용’ 사이의 거래를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외에도 문건에는 민정수석실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내용이 상대 수 공개됐다.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 정비’ ‘건전 보수권을 국정 우군으로 적극 활용’ 등의 문구와 작성 시점 등을 비교해보면 ‘국정농단’의 한 축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출발점이 민정수석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진술과도 어긋난다.

[한겨레] 우병우 재수사 불가피…이번에도 빠져나갈까_종합 05면_20170715.jpg
‘세월호 유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의 철저 수사를 다그치라’는 등의 내용 등도 정상적 계통을 거치지 않은 ‘월권’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한겨레에 “재수사는 결국 범죄 구성요건을 따져봐야 한다”면서 “가령 세월호 유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지시나 전화를 했다면 곧바로 직권남용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에는 ‘대리기사-남부고발-철저수사 지휘 다그치도록’ 등 세월호 사건의 한 유가족이 대리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은 사건과 관련해 당시 서울남부지검에 철저히 수사 지휘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전교조 국사교과서 조직적 추진-교육부 외 애국단체 우익단체 연합적으로 전사들을 조직, 반대선언 공표’ 메모는 우익단체 관제 데모를 청와대가 독려했음을 보여준다. 문건에는 이 밖에도 ‘전경련 부회장 오찬 관련’ ‘경제입법 독소조항 개선 방안’ ‘6월 지방선거 초반 판세 및 전망’ 등이 있다.

대통령 기록물법 위반 논란 제기한 보수언론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 내용 일부를 공개하고 사본을 검찰에 넘긴 것을 두고 보수언론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논란을 제기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지정 기록물 목록까지 비공개로 분류하면서 이번에 발견된 자료가 대통령 지정 기록물인지 판단조차 할 수 없었다”며 “대통령 기록물인 것은 맞지만 자료의 비밀 표기를 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원칙적으로 비밀 또는 지정기록물은 검찰로 그냥 넘길 수가 없는데 청와대는 분류 자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검찰에 넘겼다는 것”이라며 “청와대는 이런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전임 청와대 측에 문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추후 정당한 자료 처리였느냐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어 “청와대가 자료를 검토하면서 이미 문건 내용을 다 알아 버렸기 때문에, 사실상 대통령기록물이 공개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民情문건 공개하고 사본은 검찰에… 대통령 기록물법 위반 논란_종합 05면_20170715.jpg
중앙일보도 “결국 지정기록물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발견한 자료를 열람하고 이를 언론에까지 공개했다는 뜻”이라며 “만약 청와대가 대통령기록물을 불법적으로 공개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이는 문재인 정부에 후폭풍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중앙일보는 “검찰이 이 문건을 재판부에 추가 증거로 제출해도 피고인들이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증거로 채택될지 여부와 얼마나 결정적 증거로 평가될지는 재판부가 누가, 왜 작성했는지 등 문건 작성 경위를 파악해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청와대 발표를 보면 공소유지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증거 제출 여부는 충분히 검토한 뒤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의 특검팀 관계자도 “추가 수사가 이뤄질 경우 우 전 수석 또는 민정수석실이 국정 농단사건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밝힐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