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정치인의 예능·교양프로그램 출연이 눈에 띄고 있다. 이른바 ‘폴리테이너’의 시대다. ‘썰전’, ‘강적들’, ‘외부자들’, ‘판도라’ 등 시사예능프로그램의 증가에 따른 결과로 보이지만 시사와 관련 없는 일반 예능·교양 프로그램에 정치인들이 출연해 사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대중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달부터 SBS ‘동상이몽2_너는 내운명’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tvN ‘둥지탈출’에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정출연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각각 배우자, 자녀와 함께 출연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 SBS '동상이몽2'에 출연한 이재명 성남시장.
▲ SBS '동상이몽2'에 출연한 이재명 성남시장.
▲ KBS '냄비받침'에 출연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 KBS '냄비받침'에 출연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는 최근 KBS ‘냄비받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독립출판을 구상하는 출연자들이 책 집필을 위해 취재를 다닌다는 콘셉트의 예능으로 조만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출연도 확정됐다.

국민의당 제보조작 파문으로 자숙을 선언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제외하고는 지난 대선에서 낙마한 주요 후보들을 이 방송에서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대선 2주 뒤 ‘SBS스페셜’에 출연해 대선 준비 과정과 가족과의 에피소드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게스트로 출연하는 정치인들은 점점 눈에 띄고 있다. 고정출연을 제외하고 대선 이후 가장 많이 방송에 출연한 정치인으로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를 꼽을 수 있다. 표창원 의원은 JTBC 추리예능 ‘크라임씬3’과 시사토크쇼 ‘썰전’, TV조선 ‘강적들’에 2회 출연했다. 이혜훈 대표는 MBN ‘아궁이’, ‘판도라’, 채널A ‘외부자들’에 출연했다.

정치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2개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며 정치전문가 역할을 맡고 있는 유시민 작가의 영역 확장도 눈에 띈다. 그는 대선 이후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하며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 JTBC '썰전'의 한 장면.
▲ JTBC '썰전'의 한 장면.
대선 이후 ‘여당 출연 쏠림’ 현상은 없었다. 미디어오늘이 대선 이후 예능·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정치인들을 꼽아본 결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8명이 13회 방송에 출연했고 뒤를 이어 바른정당 의원 5명이 7회, 정의당 의원 3명이 5회, 자유한국당 의원 3명이 3회 출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비율로 보면 여당이 13회, 야당이 15회다.

예능·교양 프로그램에 가장 많은 정치인이 출연한 방송사는 MBN으로 대선 이후 11명의 정치인이 ‘판도라’, ‘아궁이’, ‘속풀이쇼 동치미’ 등 3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정치계에선 국민과 가까워지는 방법으로 방송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시장은 지난 2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출연 제의를 오래전부터 받았는데 경선 일정과 참모진의 반대 등으로 망설였다”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동상이몽’ 서혜진 PD는 “이재명 시장이 정치인이 예능에 등장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해 고민해 여러 차례 출연을 고사했지만 정치인과 국민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자녀와의 예능 고정출연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예능 출연이 조심스러웠지만, 국민께 다양한 방식으로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창구가 있다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중의 반응은 엇갈린다. 아이디 min***은 “정치인 예능 출연 찬성이다. 예능으로 친숙해지는 것도 정치가 국민 속으로 들어와 섞이는 한 방법이다”, 아이디 pmg**은 “정치 예능 덕에 국민들의 평균 정치의식이 많이 오르고 토론 논쟁 사안을 대하는 태도도 날카로워졌다”고 평가했다.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아이디 so***은 “여야 정치인 누구든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반대. 이미지 세탁용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으며 아이디 OJ***은 “소름끼친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건 무조건적으로 좋은 장면들뿐인데 그걸로 이미지 얻어 무얼 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정치토양을 해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대선 이후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이 정치의 재미를 알고 정치인의 방송 출연을 수용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정치는 유독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블루오션’이었지만 국민들이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대선정국까지 이어졌다”며 “그 과정에서 국민들도 정치가 어렵지 않고, 재미가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대중들의 ‘정치인 예능 출연 반대’ 여론과 관련해 “결국 대중이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을 허용하고 보고 싶어 했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며 “(국민과의 소통 외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정치인은 자연스럽게 걸러질 것”이라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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