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PD들이 방송국을 떠나고 있다. 지상파에서 종편·케이블로 옮기던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PD들은 지금 엔터테인먼트사로 건너가고 있다. KBS에서 ‘안녕하세요’·‘우리 동네 예체능’ 등을 연출한 이예지PD는 SM의 자회사 SM C&C로, MBC에서 ‘무한도전’을 연출한 제영재PD, ‘진짜 사나이’를 연출한 김민종PD, ‘라디오스타’를 연출한 조서윤PD는 YG로 이적했다.

JTBC 예능국장이었던 여운혁 PD 또한 지난 2월부터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와 한솥밥을 먹기로 했다. 여운혁 PD는 MBC에서 ‘일밤’, ‘느낌표’ 등을 거쳐 ‘무한도전’과 ‘황금어장’을 만들어 낸 ‘예능계 대부’다. 2011년 JTBC로 이적한 후엔 ‘썰전’, ‘비정상회담’, ‘마녀사냥’, ‘아는 형님’ 등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런 그가 엔터테인먼트사로 자리를 옮겨 지금은 콘텐츠제작사업부 사장직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윤종신씨와의 관계가 작용했다고 한다. 

여운혁 PD는 지난 달 SM 이예지 PD와 ‘눈덩이 프로젝트’라는 웹 예능을 선보였다. 양사 아티스트들이 만나 음악적 교류를 하고 콜라보레이션 음원을 발표한다는 콘셉트의 음악예능이다. 지난 3월 SM이 미스틱 지분 28%를 취득하며 최대주주가 된 이후 양사는 모바일 영상 콘텐츠 부분에서 시너지를 낼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눈덩이 프로젝트’는 지난 6월28일 네이버TV 등을 통해 첫 방송 된 이후 지난 2일 Mnet에 편성됐으며 11일 기준 12회까지 영상분의 네이버TV 전체 조회 수가 200만 뷰를 돌파하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 눈덩이 프로젝트’의 출연진과 제작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NCT 마크, 이예지 PD, 윤종신, 여운혁 PD, 박재정. 출처=눈덩이 프로젝트
▲ 눈덩이 프로젝트’의 출연진과 제작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NCT 마크, 이예지 PD, 윤종신, 여운혁 PD, 박재정. 출처=눈덩이 프로젝트
업계가 변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사와 IT기업은 온라인 플랫폼의 콘텐츠 파급력에 주목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3월 YG에 1000억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 카카오도 비슷한 시기 로엔 엔터를 1조8700억에 인수했다. 인수 배경으로 로엔 엔터의 K팝 콘텐츠 채널 ‘원더케이(1theK)’가 유튜브·페이스북 구독자 1000만 명가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 거론되기도 했다. 업계는 어떻게 변하는 걸까. 12일 여운혁PD를 만나 물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흔히들 2011~2012년을 전환점이라고 한다. 여운혁PD를 비롯해 지상파PD들이 tvN, JTBC 등으로 거취를 옮긴 때가 이때다. 그리고 2017년 MCN이란 플랫폼이 강세를 보이며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등장한 모양새다. MCN에서 가능성을 봤나.

“나는 머리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MCN은 가능성은 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MCN을 하려면 제작자인 내가 직접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난 그런 재능은 없다. MCN하려고 나온 건 아니다. 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게 꼭 지상파나 케이블방송에서만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회사(연예기획사)에서도 만들 수 있고, 또 그걸 가지고 잘 하면 돈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예기획사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흐름은 기존 레거시미디어의 영향력이 떨어진 결과인가, 아님 연예기획사가 성장한 결과인가.

“권력이 나눠진 것은 맞다. 채널이 지상파3사만 있을 때와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유튜브라는 플랫폼도 강력해졌다. 돌이켜보면 나도 지상파 출신이지만 지상파3사만 있을 때의 권력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몇 명이 쥐고 권력을 쓴 거니까…. 지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면, 출연자들이 앞으론 더 이상 채널을 따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대신 콘텐츠의 가치를 따질 것이다. 출연자들에게는 어느 방송국의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냐보다 내가 콘텐츠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최근의 MCN 흐름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누구나 방송국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방송의 본질은 광고와 뉴스다. 새로운 정보를 파는 뉴스와, 새로운 상품을 파는 광고. 이 두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MCN도 결국은 광고로 수입을 잡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MCN 제작자들 또한 결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MCN 콘텐츠를 만드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은 몇 억을 벌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조차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서 오래 살아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 여운혁 PD.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 여운혁 PD.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 달라지면 예능의 문법도 달라진다고 보나.

“웃기는 방법은 매체와 플랫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똑같은 말을 해도 미디어가 바뀌면 메시지도 바뀐다. 내가 ‘무릎팍 도사’할 때 기자들한테 전화가 많이 왔다. 스타들이 기자들한테는 말 안하던 것을 우리 프로그램 나와선 다 말한다고 하더라. 난 스타들이 같은 말을 해도 글로 쓰이는 순간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으리라 본다. 영상은 글과 다르다. 스타들이 한숨만 쉬어도 시청자들은 그게 가식인지 연기인지 진심인지 다 알아챈다. 그래서 더 솔직해진 것이다. MCN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튜브 영상 제작자들이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해서 재밌게 놀려고 하는 건지, 자본이 투여돼서 장삿속으로 하는 건지 본능적으로 대중들은 안다. 플랫폼이 달라졌다면 자연스럽게 웃기는 방법도 달라질 거다.”

-예능의 다음 트렌드가 궁금해진다. 지난 몇 년 ‘육아’, ‘쿡방’, ‘먹방’, ‘오디션 프로그램’ 등이 유행했는데 지겹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영석 PD가 새로 만든 ‘알쓸신잡’이나 여PD의 ‘썰전’, ‘비정상회담’처럼 ‘지적 전문성’을 내세우는 프로그램이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다음 트렌드는 모르겠다. 트렌드를 생각하면 새 프로그램을 못 만든다. 유행하는 걸 뒤따라 가다가 존재감이 없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알쓸신잡’은 정말 잘 풀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PD가 만든 것 중에 제일 재미있다. ‘썰전’이 잘됐다고 하는데, ‘썰전’은 사회가 도와줬다. 이슈가 계속 생기는 나라니까 앞으로도 ‘썰전’은 잘될 것 같다. 사실 난 업계의 흐름이나 이런 데에 관심이 없다. 흐름을 예측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고 예측하기도 어렵다. 운 좋게 내가 좋아했던 게 흐름하고도 맞았다. 내가 트렌드를 만들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음 프로그램은 뭘 만들 건가.

“안 그래도 밖에 나오니까 뭘 만들지가 고민이다. 머리가 복잡하다. 뭔가 진행 중이긴 하다.”

- MBC 후배PD들이 엔터테인먼트사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후배들은 도전적으로 살고 싶다던가, 조직 내에서 갈등이 있다던가 하는 이유들이 있었을 거다. (잠깐 생각한 뒤) 유독 우리나라에서 PD라는 직업이 특이한 구조에 놓여있다. 특정 채널에 속해서 만드는 구조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만 이런데, 해외에선 자기 월급은 자기가 벌지 방송국에 속해서 월급을 받고 그러지 않는다. 이 구조 자체가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2013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당시 ‘썰전’의 흥행가능성을 언급하며 “언젠가 유재석과 강호동이 JTBC에 출연하게 될 것”이라 예언했고 예언은 현실이 됐다. 지상파나 케이블에 출연하지 않아도 엔터테인먼트사의 맞춤형 콘텐츠로 팬덤을 모으고 수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번에도 “막연한 촉을 가지고 나왔다”는 여운혁 PD의 ‘감’은 들어맞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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