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서 성공의 정의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긍정적인 무언가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거나 좋은 제도, 좋은 정책, 바람직한 조직 등을 통해 세상에 흔적이 남기를 바랍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자신의 성공론에 대해 밝힌 내용이다.

안 전 대표가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계은퇴를 언급하지 않고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다. 모든 짐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될까.

과거 발언을 통해서 볼 때 안 전 대표는 자신의 명예가 심각히 실추됐다고 판단하면 정계은퇴와 같은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전 대표에게 성공한 삶의 흔적은 ‘새정치’를 내건 국민의당이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총선에서 3당을 만든 것이다. 그가 제보조작 사건 기자회견에서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을 통해 3당 체제를 만들었다. 국민들께서 역사적인 다당제를 실현해 줬다”고 강조하면서 “실망과 분노는 저 안철수에게 쏟아내시고 힘겹게 만든 다당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국민의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말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공한 삶의 흔적인 국민의당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안 전 대표 부인 김미경 교수는 “국민의당은 남편 안철수와 결혼해 만든 네 번째 아이”라는 표현까지 쓴 적이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09년부터 수차례 걸친 청춘콘서트에서의 발언과 언론 인터뷰를 네트워크 분석 전문기업 ‘트리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안 전 대표는 강한 인정 욕구가 있는데 권력의지와는 다른 명예욕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명예를 중시하는 안 전 대표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제보조작 사건으로 삶은 흔적인 국민의당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고 자신을 대표하는 새정치라는 가치마저도 오염되는 상황을 끝내 지켜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타이밍 늦었다’라는 비판이 뻔히 예상됨에도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구속될 즈음에 기자회견을 연 것 역시 안 전 대표 성격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이 불거졌을 때 안 전 대표는 오히려 재빠르게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빠른 결정이었다.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강수를 둬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시장직 출마를 양보할 때도 자신보다 지지율이 낮았지만 결단을 내렸다.

이번 제보조작에서도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사과를 했다면 소나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안 전 대표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사과 타이밍을 놓친 상황에서, 윗선까지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사건 개요가 정확히 파악될 때 입장을 밝힐 수 있었지만 그는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구속되고 난 후 하루 만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 전 대표는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저는 제 밥그릇과 연결된 얘기,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저 자신의 이해타산과 무관할 때, 혹은 제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에서 발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결국 이해득실을 따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고 자신의 명예가 심각히 실추될 때 사회적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구속되는 것을 보고 비난 여론이 최고조에 이른 것으로 판단해 기자회견에 나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대선에서 안 전 대표가 득표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MB 아바타’ 얘기를 꺼낼 때도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안 전 대표는 TV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고 끈질기게 물으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토론회가 끝나고 오히려 ‘안철수=MB 아바타’라는 등식이 강화되는 현상을 낳았다.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사진=민중의소리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사진=민중의소리

안 전 대표가 정계은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앞으로 제보조작 사건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실관계가 나오고, 국민의당이 회복불능의 상태가 됐다고 판단하면 ‘새정치’의 실패를 인정하고 물러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다.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은 K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안 전 대표의 기자회견문과 관련해 “오랫동안 국민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자숙의 시간을 갖고 그래도 국민들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실망과 분노는 저 안철수에게 쏟아내시고 힘겹게 만든 다당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국민의당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것으로 호소한다”고 한 대목에 대해서도 최 의원은 “다시 도전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고 하는 문제는 이제 고민의 범위를 떠났다 …(중략)…사실 자신이 정치를 해온 어떤 의미를, 다당제를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다당제가 유지되는 것에 자기 정치를 가치에 뒀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의 욕심 같은 거는 없다. 이제는 이룰 것은 이뤘다고 하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 책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 김태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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