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로부터 ‘1인 승마 지원’ 특혜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정유라씨가 “안드레아스(독일 승마 코치)가 ‘삼성이 줘야 할 돈이 안 들어온다’며 짜증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삼성으로부터 고가의 명마를 ‘구입’한 당사자의 발언으로는 모순되는 말로, “정상적으로 말을 팔았다”는 삼성 측 주장과 배치되는 정황이다.

정씨는 1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38회 공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영장심사를 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영장심사를 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정씨는 특검이 “2016년 10월 말 경 안드레아스가 증인에게 ’삼성에서 내게 줘야 할 돈이 안 들어온다‘ 말하면서 짜증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듯이 “있다”라 답하면서 “영어로 ’삼성 니즈 투 페이 미 어쩌고 저쩌고‘ 말한 기억이 정확히 난다“고 증언했다. 안드레아스는 마장 ’헬그스트란스 드레사지‘를 소유한 말 중개상이자 정씨의 독일·덴마크 생활 동안 정씨 훈련을 도운 승마코치다.

정씨는 이를 자신이 독일에서 타던 말 ‘비타나V’ 및 ‘살시도’와 안드레아스 소유의 명마 ‘블라디미르’ 및 ‘스타샤’와의 교환에 따른 문제라 생각했다. 말 교환은 삼성이 정씨에게 명마를 구입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2016년 10월 이뤄졌다.

정씨는 “내가 알기로는 당시 안드레아스가 삼성에서 받을 돈은 말 교환금 밖에 없었고 ‘삼성이 돈 안 준다’고 짜증을 내니 저로선 당연히 말 교환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검찰에 진술한 바 있다.

특검은 실제 말 교환 및 차액 대금 지급은 최씨와 안드레아스 간 이뤄졌고 이에 삼성은 최씨에게 넘겨진 말 소유권을 세탁하기 위해 안드레아스과 '허위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고 있다. 특검은 삼성이 계약서 상 비타나V와 살시도 구입자인 안드레아스에게 구입대금을 우회 지원하기 위해 안드레아스 측근과 용역계약을 맺었다고 보고 있다. 이 용역대금이 안드레아스가 언급한 '받아야 할 대금'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정씨는 “삼성 측이 말 교환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씨는 “말을 바꿀 때 엄마(최순실씨)로부터 ‘삼성에서 말을 바꾸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지”라면서 “그 시기에 안드레아스와 삼성은 계속 접촉을 하고 있었다. 안드레아스가 말을 임의로 바꾸었다면 말을 했을 것”이라 말했다.

정씨는 안드레아스의 부하 직원으로부터 안드레아스가 ‘써니황’으로부터 ‘전화가 되게 자주 온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전화를 이렇게 하느냐’ 등의 불평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써니황’은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를 지칭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측 피고인들은 최순실씨가 독단적으로 말을 교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말을 교환한 이유에 대해서도 삼성이 요구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정씨는 어머니 최씨가 교환 전 ‘삼성에서 관련 내용이 보도돼 시끄러워질 것 같다고 말을 바꾸라고 해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정유라 “독일가기 전부터 승마선수 은퇴 생각해”

정씨는 이날 법정에서 “승마선수 은퇴를 생각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라며 “말을 다시 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감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일 시민권 취득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 정씨는 “일찍 돌아올 생각을 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전 남자친구가 군대 미필이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애초 독일로 떠난 경위에 대해서도 “박원오(전 승마협회 전무)가 아이 낳은 사실이 밖에 나가면(알려지면) 엄마가 창피하다고 해 12월까지만 피해있으라고 해서 나간 것”이라면서 “엄마와 박원오 전무에게 ‘말을 타게 되더라도 12월까지만 타고 그만두겠다. 애기 키우는 데만 집중하고 살고 싶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정씨의 출석 여부를 이날 오전 9시30분이 돼서야 알게 됐다고 밝혔다. 정씨의 법률대리인은 지난 11일 정씨의 증인 신문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정씨는 “만류가 있었던 게 사실이고 나오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래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이다. 검사가 신청했고 판사가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라 말했다.

변호인 측은 정씨 증언에 대해 “정유라는 각종 계약서, 서류 등을 본 적도 없고 각종 계약 체결이나 협상에 관여한 사실도 전혀 없다”면서 “정씨의 증언은 전문법칙상 원진술자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이어 “현재 증인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3차 구속영장 청구 문제도 있다”며 “이를 모면하기 위해 특검이 원하는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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