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상생의 대한민국, 정의당이 앞장서 열어가겠습니다.”

“사회가 정의로울 때 우리는 안전합니다. 모든 진실을 규명하고 더 이상의 아픔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지난 11일 정의당 4기 당 대표로 당선된 이정미 의원이 12일 취임 첫날 서울 국립현충원과 경기 안산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이정미 신임 대표는 오랫동안 노동운동에 헌신했고 지난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 초창기부터 최고위원과 대변인 등을 역임하며 진보정당 활동에 매진해 왔다.

이후 통합진보당에서도 최고위원을 지냈지만 2012년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 이후 천호선 전 대표와 심상정·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탈당 후 ‘진보정의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 대표의 이날 국립현충원과 세월호 합동분향소 방명록 글은 지난 두 보수정권에서 경색·대치 국면으로 치달은 남북관계를 평화 조성 분위기로 전환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취임 첫 일정으로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내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며 “청년들의 노동 문제를 누구보다 앞서서 해결해 나가는 정의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는 “이곳에는 전태일 열사가 묻혀있다. 47년 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온몸을 불살랐지만 아직까지도 부당노동행위 천국인 대한민국”이라며 “그때 작업복은 아르바이트생들의 알바복으로 바뀌어있고 또 IT 노동자들의 삶으로 바뀌어 있지만 여전히 청년 전태일의 삶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이 시대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 이정미 신임 정의당 대표가 12일 취임 첫날 경기 안산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방명록에 남길 글. 사진=정의당
▲ 이정미 신임 정의당 대표가 12일 취임 첫날 경기 안산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방명록에 남길 글. 사진=정의당
안산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선 “이제 곧 세월호 선체조사위가 활동을 개시하는데 사건의 구체적인 진실에 다가가기 바라고 정의당도 최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못 돌아온 미수습자 다섯 분이 하루빨리 돌아오시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도 만났다. 정의당은 진보진영뿐 아니라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과 함께 창당한 만큼 ‘노무현 정신’ 역시 정의당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점을 표방한 것으로 보인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오늘 이정미 대표의 첫 행보는 정의당의 뿌리를 되새기고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질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며 “이후에도 시급한 민생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아 보듬는 행보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당선 소감에서도 “국회에서는 ‘진짜야당 정의당’, 국민 속에서는 ‘민생 제1당 정의당’의 대표로 혼신을 다해 뛰겠다”며 “대선 시기 우리 곁을 찾아온 여성·비정규직·청년·농민·성소수자 등 정치 바깥으로 밀려난 분들을 우리 당의 주역, 한국 정치의 주역으로 교체해 내자”고 말했다.

이정미 신임 정의당 대표가 12일 취임 후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사진=정의당
이정미 신임 정의당 대표가 12일 취임 후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사진=정의당
이 대표는 이번 당직 선거에서 7171표(56.05%)를 받아 5624표(43.95%)를 얻은 박원석 전 의원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박 전 의원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2016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여성)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후 환경노동위원회 등 의정활동에서 보여준 여러 가시적 성과가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으로 영국을 방문해 옥시 본사의 사과를 받아내고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치약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 국감 이슈를 만들어 냈다. 또 이랜드그룹 애슐리의 ‘열정 페이’ 문제를 제기해 310억 원의 체불 임금을 청년들에게 돌려주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최근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청년들의 노동 현실을 대변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월화수목금금금’ ‘오징어잡이 배’ ‘구로의 등대’와 같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난 19대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주된 선거 구호가 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심상정 캠프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선거를 지휘했다.

정의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그동안 의정활동을 성실히 해 성과를 내고 지난 17년간 진보정치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한 활동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며 “신입 당원들에게도 무한도전이나 이랜드 문제 등 언론보도를 통해 인지도가 높았던 것도 상대적으로 유리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정의당 전국동시당직선거가 대선 이후 진보정당으로선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도 진보적 의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아 국민의 관심이 저조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심상정·노회찬 의원과 같은 ‘대표 선수’들이 빠진 탓이기도 했지만 이정미·박원석 후보가 각각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상징성을 띠고도 그다지 차별점이 뚜렷하지 않았고 새로운 리더십에 걸맞은 새로운 쟁점과 가치가 떠오르진 못했다는 관점이다. 

또 다른 정의당 관계자는 “이정미 정의당 체제가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선 문재인 정부와 협력할 땐 협력하더라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선 등 각을 세울 땐 확실히 각을 세우는 게 좋을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박원석 후보가 평당원들에게 예상보다 많은 지지를 받은 만큼 이 대표가 본인의 조직 기반에만 매몰되지 말고 당원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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