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씨는 하야를 요구하는 다수 국민들의 요구를 거부하다 파면 당했다. 헌정 사상 현직 대통령의 첫 파면이었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는 현재 각종 국정농단과 관련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파면’은 현직 대통령이라 해도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민에 의해 언제든 탄핵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런데 이런 ‘국민적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공영방송 경영진이다. KBS MBC 두 방송사 사장은 ‘촛불혁명’ 이후 정권교체로 새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과거 정권에서의 잘못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블랙리스트 논란이 다시 불거진 KBS가 대표적이다.
KBS는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출연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논란이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블랙리스트 방송인’이라고 언급했던 김미화 씨 방송출연 금지 논란도 KBS에서 벌어진 일이다. 김미화씨 뿐인가. 방송인 김제동, 가수 윤도현 출연 논란 역시 KBS에서 발생했다.
이런 부정적 평가는 KBS 구성원들도 비슷하게 내리고 있다. KBS 양대 노조와 사내 10개 직능협회가 지난 5월31일부터 6월5일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3292명 가운데 88%가 고대영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280여명의 KBS기자들은 총파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KBS 구성원들이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단순히 ‘고대영’ 개인의 퇴진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지난 9년 동안 KBS가 정권에 예속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KBS 안팎의 경영진 사퇴 요구 맥락과 배경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고대영 사장은 여전히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MBC 구성원들의 김장겸 사장 퇴진 요구도 ‘개인’의 퇴진을 의미하진 않는다. 김재철 전 사장 이후 무너진 MBC의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 시키고, 보도·프로그램 공정성 회복을 위한 첫 단추를 꿰는 작업일 뿐이다. 무엇보다 MBC 불공정 보도 논란 중심에 정치부장과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사장에까지 오른 김장겸 사장이 있다는 건 MBC 구성원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일각에선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공영방송 사장 임기를 보장해주는 게 방송독립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한다. ‘촛불혁명’으로 일궈낸 정권교체라 하더라도 임기가 보장된 방송사 경영진을 맘대로 바꿀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퇴진 요구’가 청와대 등 정치권력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영방송사 사장의 임기보장은 정치권력 등 외압으로부터 부당한 교체 요구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지 내부 구성원들의 사퇴 요구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고대영 김장겸 사장은 지금이라도 빨리 물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