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10일 오전 보건의료노조 적십자 본부지부는 대한적십자사 본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헌혈의집 노동자들의 무리한 연장 근무를 단축시키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헌혈의집 노동자들은 혈액 재고의 적정량(5일치 여유)을 맞추기 위해 연장근무와 주말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근무 인력도 부족해 노동 강도와 부담도 큰 편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대한적십자사는 혈액의 원활한 수급을 위한 헌혈 장려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11일 남대우 서울동부혈액원 간호1팀 과장을 만났다. 남대우 과장은 “국가 혈액사업이 국민의 안전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효율성보다는 안전성을 중시해야 한다”며 “현재 헌혈의집 근무 여건처럼 최소 인력으로 최대한 많은 헌혈을 하는 것이 정부 측에선 효율적이겠지만 그만큼 노동자들의 부담이 가중돼 언젠가는 안전 문제나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남 과장과 나눈 인터뷰 주요 일문일답이다.

- 헌혈의집 노동자들의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이는데 현재 노동자들의 근무 실태가 얼마나 열악한가?

“헌혈의집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주로 여성이라 집에서 엄마 역할이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인력이 부족해 근무지가 일정하지 않은 순환 근무를 하고 있어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늦은 밤이 돼 아이들을 전혀 돌볼 수가 없다. 또한 우리나라는 헌혈 수급에 있어 군부대·학교 등 단체 헌혈의 비중이 커 차량을 운행해 간호사들이 파견 근무를 나간다. 군부대 같은 먼 곳을 이동하려면 간호사들은 이른 아침에 출근해야 하니 실제 근무시간이 12시간을 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파견 근무에 배정되는 인력도 부족해 현재 차량 1대 당 2명의 간호사가 나가고 있는데 헌혈해야 할 인원은 6·70명 가까이 돼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일을 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는 직장인들이 평일에 헌혈할 여건이 안 돼 주말에도 헌혈을 받기 위해 간호사들이 근무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평일에 파견을 나간 인원은 주말이라도 휴일을 줘서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근무 인력이 부족해 모두 휴일을 주게 되면 주말 근무에 지장이 간다. 때문에 휴일을 반납하고 서로서로 희생해 반강제적인 근무가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거의 휴일이 없다.”

- 그렇게 되면 열악한 근무실태에 노출된 간호사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휴일이 거의 없고 근무 강도도 세다 보니 병가자도 많이 발생하고 근무에 대한 불만으로 퇴사하는 사람이 많다. 동부혈액원 기준으로만 봤을 때도 1년에 평균 12명 정도 허리나 손목 같은 근골격계에 디스크가 오게 돼 병가가 생기고 있는 현실이고, 근무강도가 강하고 잘 쉬지도 못하니 다른 근무지 간호사들도 병가가 많다. 퇴사자들에게 퇴사 이유를 물어보면 연장 근무에 대한 대체휴일이 없고 주말근무도 너무 많아 힘들어서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매년 퇴사자가 많은 것이 우려돼 퇴사자 의견을 반영해 대한적십자사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 측도 인력 부족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기획재정부의 허락을 맡아야 인력 확충 문제를 논의할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실정이다.”

- 간호사들의 인력 확충도 시급한 문제지만 연장 근무를 단축시키기 위해서라도 혈액의 원활한 수급을 위한 정부의 헌혈 장려정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헌혈을 하면 휴가를 주는 제도가 공공기관에 한해 시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모든 공공기관이 확실히 휴가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간부들의 자율에 따라 운영되고 있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에 정부가 사기업까지는 무리더라도 공공기관에 확실한 헌혈 장려 정책을 마련해줘야 원활한 혈액 수급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국가의 혈액 사업은 국민에게도 매우 중요하므로 적십자사 측에 너무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정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나라 혈액 수급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군대나 학교 같은 단체 헌혈이고 개인헌혈자 특히 중·장년층의 관심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도 정부의 협조가 많이 필요하다.”

▲ 헌혈의집 노동자들은 혈액 재고의 적정량을 맞추기 위해 연장근무는 물론 주말근무까지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  ⓒ 연합뉴스
▲ 헌혈의집 노동자들은 혈액 재고의 적정량을 맞추기 위해 연장근무는 물론 주말근무까지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 ⓒ 연합뉴스

- 근무시간 단축문제와 더불어 비정규직 철폐 문제도 이야기했다. 간호사들의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편인가.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정규직으로 근무 적정 인원충당이 안 돼 일시적으로 시간계약을 맺는 간호사들이 많다. 하지만 시간계약은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 있고 지속적으로 일하는 인력이 아니다 보니 사실 문제가 많다. 전문화된 인력도 아니다보니 안전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헌혈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신입 간호사를 뽑을 때 느끼지만 평소 헌혈의집으로 근무하겠다는 지원자들은 많은 편이다. 지원자가 없어서 인력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리한 근무 여건으로 퇴사자가 많아 시간계약직을 채용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결론은 정부가 인원 확충 요구를 수락한다면 시간계약직들도 정규직화해 전문성이 올라가고 근무 여건 불만으로 인한 퇴사 인원이 없어 혈액 사업 운영이 더욱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헌혈의집은 전국에 약 120여 곳이 있다. 헌혈의집 크기에 따라 4명에서 8명의 간호사가 근무한다. 인원이 돌아가며 순환 근무를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간호사들이 휴가를 쓰게 되면 대체 근무를 할 예비 인력 없이 최소한의 근무 인력을 헌혈의집에 배정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헌혈의집 노동자 측은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인력을 배치할 때 헌혈의집에 투입하는 간호사 인원 배정에 예비 인력까지 포함해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