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인권친화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계획을 전국 일선 경찰서에 하달하고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새정부가 출범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수사권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경찰이 인권친화적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주문한 뒤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고 인권위의 권고사항을 무시해왔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경찰 입장에선 정권 초기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수사권 독립 보장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인권친화적인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25일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방지를 강조했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인권친화적 조직으로 거듭나야할 대상으로 경찰을 꼽았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필수적 전제로서 인권친화적 경찰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경찰 자체적으로 구체적이고 실행가능한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수사권 독립을 보장받고 싶으면 인권친화적 조직이 되기 위한 방안을 만들어 제출하고 이를 실천하라는 압박이다.

문재인 정부는 수사권 독립을 검찰 권한을 분산시키는 방안으로 꼽고 있지만 경찰이 수사권을 남발해 오히려 인권을 침해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백남기 농민사건에서 보여준 무책임한 경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여론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라도 인권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지난달 16일 백남기 농민 유족에 사과하며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경찰의 인권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들이 피해 보는 일은 이제 다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이 일선 경찰서에 지시하고 보고 받은 문건을 분석한 결과 경찰은 인권친화적 수사 방침과 인권친화 조직 홍보 활동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인권친화적인 경찰상 확립을 위한 수사 적법절차 준수 등 형사활동강화계획’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은 내부 논의를 위한 문건으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범죄수사와 불심검문, 시위진압 등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권침해 문제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1년 11월부터 2005년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인권침해 진정사건 접수 현황에 따르면 경찰을 대상으로 한 사례가 2436건에 달한 것으로 나왔다. 사유별로 보면 강압적 불심검문, 불법/부당 감청, 불법/부당 압수수색, 과잉진압, 피의자 권리 미고지, 인격권 침해 등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참여정부 때부터 현재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인권침해 진정사건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경찰(20.0%)은 구금시설(30.2%) 다음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 문건에는 이 같은 인권침해 내용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책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일선 경찰서는 ‘인권 친화적 경찰 구현을 위한 수사관 워크숍’을 개최해 보고하고, ‘인권친화적 경찰상 확립을 위한 유치장 개선 및 점검’에도 들어갔다. 유치장은 과거 정부 때부터 인권의 사각지대로 인식돼 왔다. 그동안 인권위 진정절차 및 방법에 대한 고지를 명문화하고 여성 및 장애인의 유치를 배려해 신체검사용 차단막을 설치해 시행하는 등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시행단계에서 여전히 인권침해요소가 있다고 판단해 적법절차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인권 친화적 경찰 구현을 위한 헌법과 인권 교육 실시 계획’도 세운 상태다. 내부 인권강사를 활용한 교육계획도 포함돼 있다.

인권 경찰을 강조하기 위한 홍보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지역 경찰 일선서에 ‘폴리폰’ 운용 계획을 하달했다. 업무 때 쓰는 공용 휴대전화기인 ‘폴리폰’의 바탕화면에 인권침해 취약요소를 적시해 수사적법절차를 지키라는 내용이다. 경남지방청 산하 경찰관들의 폴리폰과 개인 휴대폰 바탕화면에는 전자충격기 사용시 제한사유 및 유의사항, 미란다원칙 고지내용, 수배자 소재 발견시 조치사항 등을 띄우게끔 돼 있다.

일례로 형집행장을 미소지했을 때 벌금수배자를 발견하면 구인 전 형집행장이 발부된 사실, 죄명과 형명, 구인이유, 변호사선임권 등을 고지해야 한다고 공지돼 있다. 전자충격기 제한 사유로 임산부와 노약자, 14세 미만을 들었고, 계단과 난간 등 높은 곳과 물가에서는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지난 6월 테이저건(전자충격기)을 맞고 사망한 첫 사례가 나와 안전성 논란과 함께 과잉진압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이 같은 사건이 다시 나왔을 경우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 주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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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를 맞이하는 경찰 인권영화제 공모작을 받기 위한 홍보활동도 활발하다. 경기도 부천 지역의 한 경찰서는 인근 지역 대학과 역사에 홍보포스터를 부착하고 유인물을 배포했다. 경남도지방청 한 경찰서는 경찰이미지 제고를 위해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경찰서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 인권을 강조하는 내용의 공익방송이 흘러나오는 식이다.

경찰은 인권친화적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수사권 독립을 보장받았을 때 이를 견제할 수단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이름 뿐인 경찰위원회가 견제 감독기관으로서 자리매김 해야지만 수사권 독립도 수월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26일 표창원 민주당 의원과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가 공동개최한 ‘경찰권의 바람직한 통제방안’ 토론회에서 진교훈 경찰청 경찰개혁 데스크포스 단장은 “일본처럼 경찰관의 권한남용이나 인권침해 사건, 부당한 수사지휘, 주요 비위사건 등에 대해 경찰위에 감찰조사 요구권을 부여하고 경찰청이 감찰결과를 위원회에 보고토록 의무화해야 한다. 주요 사건에서 필요한 경우 재수사를 요구하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위원회는 지난 1991년 경찰 조직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민주적이고 공정한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행정자치부 산하에 설치됐지만 단순 자문 수준의 역할에 그치면서 법적 정비를 통해 위상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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