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라디오 국장이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현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의 라디오 출연과 관련해 “이 전 판사는 쓰레기”라며 막말을 퍼부은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당사자인 이 전 판사는 KBS 간부 언행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원 전 KBS 라디오프로덕션1담당(국장급)이 KBS 라디오 부문에서 보인 전횡을 폭로했다. 

라디오 방송 출연진 명단을 작성해 사전에 보고하도록 하거나 극우 성향 패널 섭외를 지시하는 등 그가 출연진의 정치 성향을 분류해 배제하는, 이른바 ‘KBS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 전 판사가 지난달 10일 방송된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에 출연한 것에 대해 이제원 전 국장이 “이정렬 전 판사는 쓰레기다”, “(이 전 판사 출연은) 심각한 방송사고다”, “법은 인문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취지의 막말을 제작진에 퍼부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이정렬 전 판사가 지난해 10월 한겨레TV의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하고 있다. 사진=한겨레TV
▲ 이정렬 전 판사가 지난해 10월 한겨레TV의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하고 있다. 사진=한겨레TV
이날 이 전 판사는 라디오 프로그램 속 코너 ‘인문의 숲을 거닐다’에 나와 헌법을 인문학 관점에서 진단하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헌법 전문과 제1조가 개정된 과정과 내용, 당시 정치·시대적 상황이 헌법 전문 및 제1조에 녹아든 모습 등을 해설했다.

해당 방송은 KBS 사내 심의 기구인 심의실 심의를 문제없이 통과했고 사후 심의평도 방송 내용이 충실했다고 했으나 이 전 국장은 편향적이라고 문제를 삼았다.

이 전 판사는 10일 오후 미디어오늘에 문자를 보내 “당시 다행히 청취자의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장기 방송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며  “그후 아무 연락이 없었던 것을 보니 아마도 관련 사건(블랙리스트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었나 싶다”고 밝혔다. 

이 전 판사는 또 “오늘 보도된 KBS 관련 기사들을 보니 내가 KBS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취지로 보여진다”며 “솔직한 심정은 저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판사는 “예전에 블랙리스트 사건이 나왔을 때 제 이름이 없어서 무척 서운했었다”면서 “판사 블랙리스트에는 제 이름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 믿고 있는데,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조사 결과가 나와서 아쉬워하던 차였다”고 말했다.

이 전 판사는 그러면서도 이 전 국장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KBS 간부의 행동은 지난 황교익 선생에 대한 출연 봉쇄 조치처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행위”라며 “게다가 저의 경우(이제원 전 국장이 이 전 판사를 ‘쓰레기’라고 칭한 부분)는 별도로 모욕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 KBS 경영진이 촛불시민들이 지적하셨던 ‘적폐세력’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판사는 “어떠한 대응을 할지는 좀 더 심사숙고한 후에 결정할 생각”이라며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앞서 이 전 국장은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81)의 라디오 출연을 취소해 논란을 불렀다. 

지난 5일 예정된 녹화 방송에서 한 교수는 지난 5월 펴낸 회고록(‘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을 두고 대담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이 전 국장이 “현 대통령을 옹호하는 회고록으로 정치적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취지로 불가 입장을 밝혀 출연이 취소됐다.

한 교수는 10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KBS 출연 취소에 대해 “내 80년의 삶을 구겨 버렸다”며 강하게 분노했다.

이 전 국장은 박근혜 탄핵 직후인 지난 3월 자신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20대 국회’, ‘헌법재판소’라고 쓰인 근조 리본으로 교체하는 등 탄핵에 반대하는 뜻을 표현해왔던 인사다. ‘5·18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페이스북에 게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편, KBS 측은 10일 오후 6시께 “KBS에는 블랙리스트가 없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KBS는 “이번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산책’ 프로그램의 한완상 전 부총리 출연 취소는 프로그램 PD와 담당 국장간의 협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제작진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라며 “KBS 라디오센터는 담당 국장이 출연자 결정 과정에서 주관적인 잣대를 적용했다고 판단해, 한완상 전 부총리에게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했으며 향후 KBS 라디오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또 “KBS는 해당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라디오프로덕션1담당 이제원 국장을 오늘자로 직위해제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로 이 전 국장은 전략기획실 방송문화연구소 방송문화연구부로 전보 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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