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전시나 다름없는 위기상황이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던 때라서, 특히 언론매체들은 G20 정상회의에 관해 사실을 바탕으로 공정한 보도와 논평을 내보냈어야 마땅하다. 많은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매체들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극우보수언론,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이라는 이름을 함께 쓰고 있는 조선일보와 TV조선은 문재인의 정상외교에 재를 뿌리는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일보와 달리 다른 주요 신문들은 트럼프의 그런 발언이 나온 바로 그날 문재인이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발표한 ‘신베를린선언’을 1면 머리에 대서특필했다. 그 선언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북한체제의 붕괴를 전제로 활개를 치던 ‘흡수통일론’이나 ‘통일대박론’ 같은 허황한 구호들을 일거에 날려버리면서 남북의 평화공존과 다방면 교류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문재인은 ‘상호 존중에 바탕을 둔 평화와 협력의 과정’을 통해 통일을 이룬 독일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북핵 문제’라고 단언한 뒤 이렇게 밝혔다. “최근 한미 양국은, 제재는 외교적 수단이며 평화적인 방식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큰 방향에 합의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천명했습니다.” 이것은 문재인이 지난 6월 말 워싱턴에서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갖고 합의한 사항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트럼프가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해 ‘혹독한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 말이 ‘적대시 정책’의 표현이라는 듯이, 또는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해석될 수 있는 말이라는 듯이, 1면 머리에 올린 것이다.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과 논설·해설위원들은 기사나 논평을 내보내는 시점에 어떤 뉴스가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지난 7월 7일자 매체들에서 문재인의 ‘신베를린선언’이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혹독한 조치 고려’를 압도한 것은 바로 그런 판단의 결과였음이 분명하다.
이 글 제목의 주어를 ‘조선’으로 한 것은 ‘형과 아우’ 사이나 마찬가지인 조선일보와 TV조선을 아우르기 위해서이다. G20 정상회의를 소재로 한 보도와 논평을 자세히 보면, ‘문재인 정상외교에 대한 재 뿌리기’에서 아우인 TV조선이 형인 조선일보보다 훨씬 지독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앵커 전원책은 TV조선 7월7일자 기사(‘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까지’)를 소개하면서 “미국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며 미국에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 이후,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장관 제임스 노먼 매티스는 7월6일(미국 시각),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전쟁을 촉발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 바 있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남한과 북한이 공멸하고 미국과 중국, 일본조차 심각한 타격을 받으리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TV조선은 당사국들이 모두 부인하고 있는 전쟁 가능성을 명백한 근거도 없이 유포하고 있을까?
문재인은 독일에서 4박6일 동안 세계 주요 국가들의 정상이나 국제기구의 수장 13명과 개별적으로 회담을 가졌다. 그들 가운데서도 특히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지난 5일(현지 시각) 문재인과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7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 비공개회의에서는 문재인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우리는 모두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새로운 위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번 위반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한을 제재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데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헤스는 8일 문재인과의 양자 회동에서 “유엔은 북한의 비핵화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 대한 공약이 확고함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며 “이 지역에서의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고 했다.
문재인은 이번 G20 정상회의라는 국제외교 무대에서, 취임한 지 만 두 달도 되지 않은 ‘초년병 대통령’으로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확고한 정치철학과 한반도문제에 관한 평화적 해결책이 그 원동력이겠지만, 그가 누누이 강조한 대로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촛불혁명의 소산’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많은 정상들의 외경심을 일으켰을 것이다. 10일 서울로 돌아오는 그의 앞에는 청산해야 할 적폐와 개혁의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인사청문회와 추경예산 심의를 거부하고 있어서 국회는 겨울잠에 빠져버렸다. 그가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한 평화공존을 위해 미국·중국·러시아·일본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면서 어떻게 국정을 쇄신할 것인지를 많은 주권자들이 걱정스럽게 지켜볼 것이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