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속한 시대를 축복하는 데 인색하다. 과거는 빛나게 추억하고, 미래는 암흑으로 묘사하기 쉽다. 이런 회고와 전망이 특별한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채 단순한 감상의 반복으로 끝날 때도 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 이르면 어둡고 암울한 진단이 우리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2017년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청년의 음울한 오늘을 알려주는 징후는 차고 넘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 달성했다는 자긍심은 과거의 무용담으로 전락했고, 일상적 경기 부진을 동반한 삶의 질 저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개인의 노력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사라지고, 정치와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국일보가 소개한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10-2013년 기준으로 자산 상위 1%는 전체 자산의 25.9%를, 자산 상위 10%는 전체 자산의 66.0%를 점하고 있다. 반면 하위 50%의 전체 자산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인구 절반이 전체 부의 2%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이 같은 불평등 구조가 굳어진 현실에서 10%에 속하지 못한 대다수 청년들의 삶이 고단할 것은 자명하다.

청년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2007년 출판한 <88만원 세대>를 통해 한국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의해 억압당할 20대의 암울한 미래를 진단한 바 있다. 현재의 20대가 사회진출 초기부터 비정규직 노동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첫 세대이며, 이런 노동과 일상이 20대의 삶을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88만원 세대> 이후 다양한 세대담론이 쏟아졌다. 담론의 대부분은 피폐한 삶에 근거한 부정적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의미의 <3포 세대>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포기의 영역이 점점 증가하면서 3포는 N포로 변화했다.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기른다. 이제까지 당연했던 삶의 패턴이 더는 평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결혼 연령은 높아지고 출산율은 떨어졌다. 2016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5.8세, 여성 32.7세이다.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도 2.4세가 오른 수치이다. 또한 한국 여성의 1인당 출산율은 1.3명으로 세계적으로도 하위 그룹에 속한다. 전 세계 평균 수치는 2.5명이다.

<헬조선>과 <수저론> 역시 간단히 넘기기 힘든 말들이다. 2015년 무렵 퍼지기 시작한 <헬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영단어 헬과 조선의 합성어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 곧 지옥이라는 섬뜩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거부감 없이 사용된다. 수저론은 자신이 태어난 가정 즉 부모의 지위와 소득이 개인의 노력보다 중요하며, 진로와 삶의 양식을 결정한다는 인식을 표현한다.

기득권 혹은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이룬 성취를 내밀며, 열정과 노력으로 한계를 뛰어 넘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지옥을 천당으로 변화시키거나 흙으로 금을 빚을 비법은 없다. 한국의 청년들은 그런 배움을 받은 적이 없다. 그것은 개인의 열정과 노력을 초월한 영역이다. 청년들은 헬조선과 수저론 그리고 꼰대 비판, '노오오력' 부정을 통해 현실에 무감한 기득권과 기성세대를 야유한다.

이 같은 청년 현실은, 새로운 문제인식을 갖춘 사회운동과 제도 정치의 변화를 불러왔다. 세대별 노동조합을 표방한 <청년유니온>이나 청년의 열악한 주거현실에 주목한 <민달팽이유니온>이 출범해 활동 중이며, 대표적 시민사회운동 단체인 <참여연대> 역시 <청년참여연대>를 조직해, 청년 문제와 시민운동의 접목을 고민하고 있다.

제도 정치의 변화는 유동적이며 임의적이다. 제도 정치는 선거 승리를 1차 과제로 삼아 움직이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도약과 한계의 양면으로 나타난다. 청년의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포착해 변화를 주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선거에 도움이 되는 범위에서만 활동하거나 정쟁의 주제로 변질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의 <청년정책 기본계획>이다. 기본계획은 청년의 설자리, 일자리, 살자리, 놀자리 등 4개 분야의 핵심전략 사업 5개, 일반 사업 15개 등 총 20개 사업으로 짜여져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논란이 된 것은 최대 3,000명의 미취업 청년에게 최장 6개월 동안 50만원을 지급하는 일명 <청년수당>이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수당>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고, 신규 복지사업을 무분별하게 양산하며, 지역 편차를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불수용 방침을 세웠다. 서울시가 이에 반발하자 신규 복지 사업을 추진하며 보건복지부와 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시정명령을 내렸고, 끝내 사업 취소를 통보했다.

서울시 <청년정책 기본계획>은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 청년 당사자와 함께 구성한 거버넌스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서울시 행정의 변화가 불러온 기회였고, 이에 조응해, 논의를 주도할 수 있는 청년 당사자 그룹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정책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대립각을 세운 중앙정부의 행정조치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신규 복지사업을 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강경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정책적' 고려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이었을까. 대통령과 같은 정당이고, 우호적 관계의 정치인이 서울시장이었어도, 같은 조치가 내려졌을까. 분명한 점은, 정부의 청년수당 반대 과정에서, 청년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문제인식과 대안이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청년 당사자 의견과 중립적 토론은 간 곳 없이, 오직 서울시의 정책을 막기 위한 방법만이 강구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서울시 청년정책을 표류시킨 시점이 2016년 8월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0월부터 불거진 '국정농단' 파문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아버지 박정희의 복권과 추앙 외에 뚜렷한 국정 비전을 보인 적 없는 무능한 대통령의 부정은 국민적 분노를 확대했고, 정치 쇄신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열망을 확산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주모자인 최순실은 국가 예산으로 사적 이익을 도모했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딸 정유라의 대학 입학과 학사 관리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정유라의 입학과 학교생활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밝혀진 것이다.

최순실이 주도한 정유라 입시 비리는,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과 김경숙 학장, 남궁곤 입학처장 등 주요 보직자들의 협조와 방조 아래 진행됐다. 이화여대 입학처장은 면접위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를 뽑으라"고 강조했고, 정유라는 면접고사 지침과 달리 금메달을 반입해 면접을 치루었다. 일부 면접위원은 정유라보다 서류평가가 높은 응시생에게 면접 점수를 낮게 줄 것을 유도했다. 비리로 시작한 정유라의 학교 생활은 또 다른 특혜를 양산했다. 정유라는 승마 훈련을 이유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지만, 담당 교수는 정유라 레포트를 수정해주고, 학점을 주었다. 정유라에게 제적을 경고한 지도 교수는, 최순실의 폭언과 항의를 감당해야 했고, 다른 교수로 교체되었다.

이 같은 비리와 부정이 알려지자, 이화여대 학생들은 총장 퇴진을 주장하며 교내 시위에 돌입했다.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을 좌지우지한 최순실이 자기 딸을 위해 대학을 흔든 것에 분노했다. 그 수준의 저열함과 조악함에 경악했다. 분노한 민심은 인사전횡, 미르재단, 연설문 수정, 정유라 문제 등을 거치며 폭발했다. 매주 광장을 채운 촛불은 박근혜 퇴진을 주장했고, 국회는 234명 의원의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켜 헌법재판소에 송부했다. 92일의 탄핵 정국 끝에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번 ‘촛불탄핵’은 의회권력을 장악한 기득권 정치의 독단에서 일어난 2004년 탄핵 정국과도 달랐고, 제도 정치 역학의 열세 속에서 광장에서 외롭게 투쟁했던 2008년 촛불 저항과도 달랐다. 광장과 의회라는 현대 민주정의 두 기둥이 충돌과 타협을 거듭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이정표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청년의 도전과 실천은 이번만이 아니다. 부정선거를 자행한 이승만 정권을 끌어내린 것도,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한 것도 청년이었다. 청년들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 행동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이상을 제시했다. 물론 1980년대와 같이 학생운동 그룹이 사회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보듯, 이화여대 학생들과 광장의 청년, 청소년 행동은 변화를 확산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2016년 연말을 강타한 대통령 탄핵 정국은, 우리에게 정치의 목표와 기능을 다시 환기했다. 이번 일로 우리가 정치불능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정치 불신의 골은 깊어졌다. 그러나 불능과 불신의 고리를 끊고, 정치를 쇄신하자는 청년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바닥을 찍은 청년 세대의 투표율은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2016년 총선의 2030세대의 투표율은 2012년 총선에 비해 20대는 약 13%, 30대는 약 6% 증가했다. 탄핵 정국 이후 실시될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열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19-29세 80.7%, 30대 76.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력한 참여 동기가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높은 투표율과 광범위한 정치 참여가 성공적인 개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 정치를 주도하는 핵심 인력은 여전히 기성세대로 구성되었고, 이들의 손에 새로운 대한민국이 달린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혁신과 쇄신의 기운이 바로 설 수 있을까.

물론 기성세대와 제도 정치 한편에도 청년의 어렵고 절박한 사정을 고려해 정책을 입안하고, 청년의 정치사회적 지위 향상을 돕겠다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청년의 사회경제적 현실이 고단하고 열악하기 때문에, 또는 청년이 힘들고 불쌍하기 때문에, 청년이 정치에 나서는 당위와 명분이 서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 주거, 출산, 보육, 노후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는 청년의 현실적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할 수 있는 ‘한시적’ 문제일까? 누구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추세를 볼 때, 현 세대 청년의 문제들은 청년들이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청년이 마주한 현실이 일시적인 지체 요인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고착화된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분출된 것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이런 판단은 한국 경제의 장기 전망에 관한 분석으로 뒷받침된다.

국가경제의 전망과 분석에는 다양한 지표가 활용되는데, 자주 언급되는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잠재성장률, 고융률, 국민소득 등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2년차인 2014년을 맞아 이 세 가지 지표의 성장을 촉진하겠다는‘474 비전’을 발표했다. 잠재성장률은 4%로 끌어올리고, 고용률은 70%를 달성하며,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를 도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했다.

이 중‘잠재성장률은’은 인플레이션 등 경기와 관련한 어떤 부작용도 없다는 가정 아래, 국가의 모든 생산 요소를 투입해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하는 것으로써, 거시경제 운용을 위한 기초 수치이자, 국가경제의 중장기 안정성을 판별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된다.

2017년 3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지표로 보는 이슈>를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 5%대를 유지하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7년 현재 3.1%로 전망되며, 2020년 이후에는 1%대로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지난 10년 경제를 운영했던 정권과 정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두 정권은, 한국을 뛰어넘어 동아시아와 세계사적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도 불구하고, 당파적 이익을 앞세운 채 일방적 국정 운영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최후에는 자신들이 밀어올린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파국을 맞이했다. 한국 사회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지난 두 정권의 무능과 부패가 더해지면서, 어떤 처방도 완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가지 과제의 완결을 의미한다.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거나 민주화가 완성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체제로는 두 과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새로운 사명을 조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어떤 국가든 가장 강력한 변화 욕구를 갖고 있고, 그것을 실행할 유인이 분명한 집단과 세력이 나설 때, 제대로 된 변화가 가능하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현실에 갇혀 있으며, 동시에 그 현실을 돌파할 힘을 갖춘 집단은 청년세대 외에는 없다. 더욱이 앞선 세대가 주조한 정치 현실은 대통령 탄핵과 최악의 경기 침체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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