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다시 거부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법적 해석이 나와 주목된다.

지난달 15일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강원도 양양군의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문화재 현상변경안을 거부한 문화재청의 결정을 뒤집고 케이블카 설치 불허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중앙행심위의 이 같은 인용재결에도 문화재청이 지난해와 동일한 사유의 처분이 아닌 다른 사유로 거부처분을 내리는 것은 가능하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재홍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장은 5일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행심위의 인용재결과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는 문화재청이 행심위 결정에 따라 현상변경 허가를 해야한다는 비법리적 주장을 가감 없이 보도하는 등 독립기관인 문화재청의 고유 판단 권한을 침해하는 기사를 내보냈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행심위가 인용재결을 할 경우 문화재청은 반복 금지 의무를 고려해 동일한 사유로 동일 처분을 하지 못할 뿐, 다른 사유로 거부 처분을 다시 내릴 수 있다.

최 변호사는 “행심위가 문화재청 처분이 부당하다고 했다고 해서 재심의 절차를 이행하지 않거나 형식적 재심의 절차를 통해 거부처분을 취소한다면 이는 전문적이고 고유한 재량심사 권한을 포기한 것일 뿐만 아니라 행정의 적법성에 반하는 반헌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 설악산 소공원과 권금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사위인 고 한병기씨에게 외설악의 정상인 권금성으로 왕복하는 삭도(케이블카)를 내주고 독점 운영하게 했다. ⓒ연합뉴스
▲ 설악산 소공원과 권금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사위인 고 한병기씨에게 외설악의 정상인 권금성으로 왕복하는 삭도(케이블카)를 내주고 독점 운영하게 했다. ⓒ연합뉴스
아울러 최 변호사는 행심위가 양양군 측의 손을 들어준 핵심적 이유로 내세운 ‘문화재 향유권’에 대해서도 헌법적으로 문화재 개발을 정당화할 수 없는 권리라고 꼬집었다.

오색케이블카가 설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약자나 장애인들은 이미 설치돼 운영되고 있는 권금성 케이블카를 통해 충분히 문화재로서 설악산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이용약자들이 등산로를 오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설악산의 우수한 자연경관과 환경을 향유할 수 있는 포장된 탐방로를 따라 설악산을 향유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 있다”며 “설악산 국립공원에는 문화재 향유를 위한 동종 시설로서 권금성 케이블카가 마련돼 있고 휠체어 등이 구비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문화재 향유권의 보장보다 현상 유지를 통한 공익이 월등히 크다”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또 행심위가 문화재 훼손 가능성과 문화재 활용 가능성에 대해 불일치한 기준으로 모순된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행심위는 문화재 훼손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오색케이블카 사업 구간만을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설악산 국립공원 전체를 고려 대상으로 판단했다. 북한산 등 설악산 이외 국립공원 등을 포함해 오색 케이블카가 설치된다 하더라도 훼손되는 문화재 면적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충분히 환경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양양군 측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최 변호사는 “행심위의 논의 구조가 일관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문화재 활용 측면에서도 사업 구간만이 아닌 설악산 국립공원 전체를 고려하거나 케이블가 설치된 전국의 명소들의 문화재 활용 측면을 언급해야 했다”며 “그러나 행심위는 오색케이이블카 사업 구간만을 고려해 문화재 활용 측면을 판단하고 설악산 국립공원에 이미 설치된 케이블카 이외에 추가로 설치하면서까지 문화재 활용 방안을 제고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없다”고 비판했다.

▲ 설악산 생물권보전지역 용도구역 지정현황(현 케이블카 예정지는 인간의 간섭이 배제돼야 하는 핵심지역에 위치하고 있음). 최재홍 변호사, 자료UNESCO MAB 한국위원회 인용 자료.
▲ 설악산 생물권보전지역 용도구역 지정현황(현 케이블카 예정지는 인간의 간섭이 배제돼야 하는 핵심지역에 위치하고 있음). 최재홍 변호사, 자료UNESCO MAB 한국위원회 인용 자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현재 설악산의 향유 정도를 미국 최초 국립공원인 엘로우스톤국립공원과 비교하며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면적은 설악산국립공원 22배가 넘는데 연평균 관광객 수는 약 350만 명으로 설악산과 거의 유사하다”며 “우리가 ‘향유권’을 주장하며 연간 60만 명의 관광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케이블카 건설을 추진하는 반면, 엘로우스톤은 설악산의 20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향유권이 과도하다고 판단해 최근 입장료를 한화 3만4000원으로 올렸다”고 밝혔다.

이어 홍 교수는 “행심위의 재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제시하는 보호지역 체계 Ia 엄정자연보전지(Strict nature reserve)의 기본 개념과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통한 보전 프로그램’(MAB)에서 제시하는 생물권보전 ‘핵심지역’의 관리 개념에 심각히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Ia 지역은 전체 IUCN 카테고리 유형 중 가장 엄격하게 관리돼야 하는 지역으로 ‘인간의 방문과 이용, 영향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제한하는 지역’, ‘과학적 연구조사와 모니터링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지역’으로 정의돼 있다.

홍 교수는 “이미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은 문화재청과 국가의 이름으로 국격을 높이기 위해 등록한 보호 유형의 기준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초월해 남용하고 있다”면서 “행심위 결정은 설악산 전체가 지니는 조화를 살펴보지 않은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로, 약 50년 간 전세계 자연보전 전문가들이 관련 연구를 집대성해 만든 MAB 역시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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