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문화재청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불허 처분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재결서를 보내면서 문화재위원들을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단체와 무리하게 연관짓고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나왔다.

국민권익위는 지난달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거부처분 취소청구 사건에 대해 확정된 재결서를 문화재청과 강원도 양양군에 28일 각각 송달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재결 내용과 관련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의결이 절차적으로 매우 적절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문화재위에 참석한 위원 2명은 이 사업을 반대하는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의 참가단체(대구경북녹색연합, 생명의숲)에서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권익위는 재결서 요약서에서도 “10명의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 위원 중 2명은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소속 주요 간부임에도 의결에 참여했다”며 “문화재위 의결은 거수 또는 기명투표 방식을 취하게 돼 있으나 의결 시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 속기록에 기재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설악산 소공원과 권금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사위인 고 한병기씨에게 외설악의 정상인 권금성으로 왕복하는 삭도(케이블카)를 내주고 독점 운영하게 했다. ⓒ연합뉴스
설악산 소공원과 권금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사위인 고 한병기씨에게 외설악의 정상인 권금성으로 왕복하는 삭도(케이블카)를 내주고 독점 운영하게 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중앙행심위 재결서 원문을 보면 양양군 측에서 문제 삼은 문화재위원 2명에 대해 “이들은 ‘문화재위원회 규정’에 따른 제척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고, 위원들이 문회재위 심의·의결 과정에서 위법하게 부결을 주도했다고 인정할 자료도 부족하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문화재청 처분의 ‘절차적 하자 여부’에 대한 중앙행심위의 최종 판단은 ‘적절하지 않은 결의가 위법의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인정할 수 없어 처분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화재위원 중 한 명이 소속돼 있다는 시민단체 ‘생명의숲’이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의 참가단체라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미디어오늘이 생명의숲과 국민행동 측에 확인한 결과 생명의숲은 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전영우 문화재위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의결 당시 이미 생명의숲 이사장에서 물러난 후였다.

대구경북녹색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돈관스님도 지난해 12월 문화재위가 양양군의 문화재 현상변경안을 심의해 만장일치로 부결했을 당시 ‘주요 간부’가 아닌 명예직 이사장에 불과했다. 돈관스님은 대구경북녹색연합에 있을 때도 중앙 녹색연합 회의체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녹색연합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 측은 중앙행심위에도 “양양군은 일부 위원에게 제척사유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나 이들은 이 사건 허가 신청 관련 당사자, 당사자와 공동권리의무자 또는 당사자와 친족관계에 있지 않다”며 “이 사건 허가 신청과 관련한 용역을 수행한 적도 없으며 당사자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제척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소명했다.

▲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의 행정심판이 인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생태보존을 우선으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의 행정심판이 인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생태보존을 우선으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권익위에서 문화재위 의결이 거수나 기명투표로 진행됐음이 속기록에 기재돼 있지 않다고 보도자료를 낸 것에 대해서도 문화재청 측은 “속기록에 모두 기재하진 않았지만 기명 투표로 의결했다”고 해명했다. 문화재청은 중앙행심위 구술심리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소명했지만 최종 재결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권익위는 보도자료에서 문화재청 의결이 ‘절차상으로 매우 적절하지 않았다’는 중앙행심위의 일부 표현만 강조했고, 재결서 요약서에서도 “문화재위의 심의·의결 절차가 위법의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는 없으나 매우 적절하지 않았다”고 결정 취지도 왜곡했다. ‘합법적’ 의결보다 ‘부적절’한 절차에 방점을 둔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행심위가 ‘국민의 문화향유권이라는 공익이 문화재 보호라는 공익보다 적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최종 심판을 내림에 따라 문화재청은 재결의 취지에 따라 다시 처분해야 한다. 사실상 문화재청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만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과 관련해 ‘생태보존이 우선’이라고 밝힌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환경부 차원에서 다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생겼다.

김 장관은 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환경부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승인을 4대강 사업과 함께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대표 사례로 꼽으며 “행정심판이 인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생태보존을 우선으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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