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으로부터 징역 7년 중형을 구형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77·구속)이 마지막까지 재판부에 결백을 호소했다. 변호인단은 ‘여론 재판’, ‘논리 조작’ 등 날 선 비난을 제기하며 특검 측 주장을 모두 반박했다.

김 전 실장은 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에서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정부 지원 배제 명단)’ 사건 재판 결심 공판 마지막 피고인 발언에서 “명단(블랙리스트)을 작성하라고 지시한 일도 없고, 명단을 본 일도 없다”며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 지난 6월28일 호송차량에서 내린 김기춘 전 비서실장. ⓒ연합뉴스
▲ 지난 6월28일 호송차량에서 내린 김기춘 전 비서실장. ⓒ연합뉴스

김 전 실장은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3인에 사직을 강요한 직권남용에 대해서도 “1급 공무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한 사실 없다”며 “당사자에게 강요한 일도 없고 문체부 장관에게 사표를 받으라고 협박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한 위증 혐의에 대해서도 “청문회에서 제 기억을 거짓으로 증언한 바 없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특검이 적용한 혐의와 관련 사실관계를 전면 부인하는 입장이다.

이날 김 전 실장 변호인 변론은 1시간 30여 분에 달했다. 변호인들은 변론에서 ‘여론 재판’, ‘정치 특검’, ‘논리 조작’, ‘억지 수사’, ‘무효 공소’ 등을 언급하며 특검 기소의 정당성에 대해 여과없는 비난을 가했다.

김경종 변호사는 “우리 국민들은 사실과 의견 구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의견이 많이 모여 여론이 만들어지면 진실인줄 알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혐의 등이 사실이 아닌 ‘여론’에 따랐다는 주장이다.

공판 초기부터 제기해 온 ‘정치 특검’ 주장도 반복됐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야당이 추천해서 임명된 특검이 탄핵 소추한 정치적 사건”이라면서 “소위 정의 실현이 아닌, 통상적인 형사사법 절차가 아니라 대통령 탄핵을 성사시키기 위해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고리로 해 박 대통령을 엮은 정치적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특검의 공소제기는 무효”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특검이 다룰 사안이 전혀 아니다. 최서원과의 공모관계가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억지로 수사해 기소한 것으로 특검의 공소제기는 무효일 뿐 아니라 자의적 공소제기다. 공소 기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특검이 입수한 블랙리스트 문건마다 관련 지시·보고 체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한 것에 대해서 김 변호사는 “논리적 조작”이라고 말했다. “공모신청부터 배제가 하나의 연속된 의사결정인데 그 중 일부만 떼어 내 범죄 결과라고 하는 건 도저히 수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이어 오히려 특검이 문화다양성을 해쳤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특검의 주장이 “좌편향 단체에 대해 지원 배제를 해선 안된다”는 “무조건적 인식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다. 김 변호사는 “지원배제는 재량적 행위다. 그와 다른 기준을 설명해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특검 주장이 획일적으로 문화다양성을 벗어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지난 4개월 여 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체부 예술정책과 등의 다수 공무원이 블랙리스트 업무에 대해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김 변호사는 “(특검 공소장은) 피해자가 마치 개인 아니라 각 부서인 것처럼 이해된다”며 “피해자가 누군지 특정이 안됐다”고 주장했다.

하염없이 흐느낀 조윤선… ‘민심’ 언급한 특검보

공범으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은 마지막 피고인 신문에서 수차례 울음을 터뜨리며 결백을 호소했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국정농단이 터졌고 각종 의혹으로부터 문체부 입장을 대변하고 뒷처리를 하느라 급급했을 뿐이었다”면서 “탄핵당한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거친 책임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 견뎌왔지만 제가 블랙리스트 주범이라면서 책임지라는 특검의 주장은 참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18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문화계 블랙리스트'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18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조 전 장관은 “앞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자연인 조윤선으로서의 희망만은 꼭 이어가고 싶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조 전 장관은 지난 공판 동안 담담한 태도를 유지해왔으나 남편인 박성엽 변호사의 최후 변론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특검은 김 전 실장에게 징역 7년, 조 전 장관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김상률 전 교문수석은 징역 6년을,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은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강한 어조로 형량을 밝힌 이용복 특검보는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놓으려 한 것”이라 밝혔다.

이 특검보는 “피고인들은 대통령 참모로서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내치고 국민의 입을 막는데 앞장섰다”며 “피고인들은 우리 헌법이 수호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네편 내편을 갈라 나라를 분열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특검보는 구형을 내리기 전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이었던 관중의 발언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 듯 순리에 맞는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바로 민심에 따르는 것으로 실천하기 쉽다”를 인용했다. 김 전 실장의 혐의가 ‘민심에 반하는’ 명령이었다는 은유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죄의 법정 최고형은 5년이다. 위증죄의 최고형은 10년이다. 여러 혐의를 동시에 받고 있으면 형량은 최고형의 50%까지 가중될 수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에게 선고될 수 있는 최고 형량은 15년 형이다. ‘블랙리스트 재판’ 선고 공판은 오는 27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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