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산업 용어 중에 ‘홀드백’이라는 단어가 있다. 홀드백은 영화가 소비되는 각 창구마다 지켜지는 일종의 공개 순서다. 인터넷 등 IT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철저하게 지켜졌던 시장의 규율이었다. 하지만 최근 영화의 유통 순서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해 개별 영화의 전략에 따라 무시되는 경우도 잦다.

국내 스크린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3대 멀티플렉스는 바로 이 홀드백을 문제 삼아 자사 극장에서의 ‘옥자’ 상영을 불허했다. 문제는 이 결정이 영화를 정확히 ‘상품’ 이라는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한 결과라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는 경제적 효용만큼이나 사회 문화적 가치가 중요한 ‘문화 상품’이다. 

물론 옥자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프랑스 극장협회는 상영을 반대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상황과는 다르다. 프랑스는 “극장에서 틀지 않는 영상을 영화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즉, 영화 정의를 둘러싼 논쟁에 가까웠다. 

한국의 이런 상황 때문에 대다수 국내 관객들은 집 근처의 극장들을 가는 대신에 굳이 상영관을 검색하고 혹시라도 매진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예매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게 됐다. 국내 관객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갑질’로 느껴질 만도 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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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소위 갑질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투자·제작·배급 상영을 통합한 이른바 ‘수직계열화’된 거대 미디어그룹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영화 제작자들은 자본의 논리에 따른 억압에 시달리며 관객들은 영화의 선택권과 문화 향유권을 박탈 당한다.

봉준호 감독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연출자이며 칸국제영화제에 초청 받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이런 감독의 작품조차 개봉관을 잡지 못하는 현실은 다른 대다수 한국 영화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이미 1940년대 메이저영화사의 수직계열화가 불법이라는 ‘파라마운트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 인해 할리우드 영화의 문화적 토양이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록 근래에는 전체 수익 중 극장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미치지 못해 제재가 비교적 느슨해졌지만 ‘반독점’이라는 판결 취지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영화 수익 중 극장 수입이 70%가 넘는 실정이다.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투자배급사들의 독과점이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 미자는 자신의 친구 옥자와 한 새끼돼지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돼지들을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옥자와 한 새끼 돼지만 살아남은 셈이다. 동물과 자연에 대한 미란도 그룹의 횡포가 그 뒤에 어떻게 더 벌어질지 관객들은 알지 못한다.

'옥자'는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의 10배가 넘는 금액을 넷플렉스로부터 투자받아 만들어졌다. 게다가 손익분기점에 대한 부담조차 없다. 실제 봉준호 감독은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에 대한 부담이 없다. 해방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아닌 다른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배급과 극장을 손에 쥐고 있는 투자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영화 제작 환경에서 주로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보여지게 되는지, 조폭 코미디 그리고 비슷비슷하게 쏟아졌던 스릴러 영화에 지친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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