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균의 메이저리그 데뷔전 홈런은 모처럼 국민에게 시원한 청량제처럼 다가왔다. 무모해보였던 그의 메이저 리그 도전과 인내, 극적으로 주어진 한번의 기회를 살려낸 그의 투지, 스타성은 야구지망생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감동이 된다.

도전정신과 철저한 준비성. KBO리그 롯데에서 뛰었던 황재균이 지난 2015년 MLB에 도전 의사를 밝히자 대부분 의아해했고 심지어 냉소까지 보였다. 그해 말 포스팅(비공개 입찰)을 통해 MLB에 도전했지만 30개 구단 가운데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구단은 한 곳도 없었다.

이런 좌절에 황재균은 “내가 부족했다. 더 준비해서 다시 도전하겠다”며 좌절하지않고 오히려 더 결기를 세웠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힘을 키웠고,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스윙의 크기를 줄였다. 가만히 있어도 수십억의 연봉이 보장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목표가 구체적이고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롭게 도전했지만 메이저리그는 역시 벽이 높았다. 황재균에게는 굴욕적이라할 수 있는 불리한 계약이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제시한 1년짜리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소속에 따라 연봉에 차이를 두는 조건)을 받아들인 황재균은 초청선수로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출전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타율 0.297·4홈런·10타점으로 맹활약했다.

▲ 황재균 선수. 사진=노컷뉴스
▲ 황재균 선수. 사진=노컷뉴스
하지만 또 다시 좌절했다. 그는 시범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음에도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기약없이 마이너리그에서 헤매다 그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최근 옵트아웃(잔여 연봉을 포기하고 FA를 선언)을 행사해 팀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한국으로 복귀설이 나오던 시점에서야 샌프란시스코는 그에게 기회를 줬다. 그는 6월29일 빅리그 첫 경기에서 울분을 씻는 축포 같은 홈런을 쏘아올렸다.

브루스 보치(52)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황재균은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미국에 왔다. 그리고 꿈을 이뤘다. 이런 특별한 순간을 지켜보게 돼 기쁘다”며 “주전 3루수 에두아르두 누네스가 햄스트링 부상에서 돌아와도 황재균을 3루수로 쓸 수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그의 도전정신과 야망은 그를 더 큰 선수로 키워줄 것으로 믿는다.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는 전세계 야구선수중 톱 0.06% 정도만이 뛸 수 있는 야구천재들의 경연장이다. 특혜와 고액연봉, 평생연금 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국의 야구천재 강정호는 미국의 빅리그로 돌아가지 못하고 연금상태에 놓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음주 운전을 하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달아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으나 기각돼 원심 판결이 확정됐다. 그는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지 못해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은 물론 계약 마지막 해인 내년 복귀도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다.

세 번의 음주운전과 성폭행 의혹 등 자기관리에 실패한 그의 모습은 화려한 야구실력과 대비되며 많은 팬들의 한숨과 실망을 가져왔다.

피츠버그 지역신문은 “내야수 강정호는 여전히 한국에 갇혀 있다. 한국에서 세 번째 음주 운전을 저질러 미국 비자를 못 받았다”고 전하며 “바보(The Stupid)”라고 언급했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젊은이들에게는 좀 더 너그러워야 한다. 그러나 상습적인 잘못은 이미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몰아넣는다. 자신이 자기를 구제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구해줄 수 없다. 야구천재라 하더라도 그라운드가 주어지지 않으면 평범한 술주정뱅이로 전락한다. 인간은 자신의 귀한 것을 잃어봐야 그 진가를 알게되는 법이다.

재능을 잘 가꾸면 남도 즐겁게 하고 자신도 그 특혜를 받는 법이다. 황재균이 그렇고 강정호도 한 때는 그랬다. 김기춘 전 대통령실장도 타고난 재능으로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국회의원, 대통령실장 등을 두루 거쳤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 직책을 시대를 넘나들며 기막한 처세술과 줄타기로 요직을 섭렵하며 온갖 특혜를 누리다가 뒤늦게 ‘사약을 내려달라’면서 ‘옥사는 면하게 해달라’는 요상한 소리를 내고 있다.

파면된 대통령과 함께 국정농단의 핵심인물로 의심받고 있는 김 전실장으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음을 그는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다. ‘11·22 사건’이라 불리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들은 모진 고문에 시달리며 자백을 했다고 증언했다. 최근에야 재심을 통해 무죄가 입증됐다. 이런 일을 진두지휘했던 김 전 실장.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서도 그는 책임자였지만 모른다고 부인하고 있다. 멀쩡한 사람에게 유서를 대필했다면서 죄를 뒤집어씌우고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진실이 밝혀져 그의 누명은 벗겨졌지만 그는 현재 암의 고통속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블랙리스트 지시와 언론장악 등 국정전반을 쥐락펴락 하던 권력실세가 이제와서 ‘고령’운운 하며 병보석을 해달라고 한다.

▲ 지난 1월20일 영장실질심사 후 서울구치소를 향하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1월20일 영장실질심사 후 서울구치소를 향하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민중의소리
20대 유명대 법대를 나와 초년부터 출세가도를 달렸던 유신정권의 ‘똘똘이’가 80을 눈앞에 둔 시점까지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으니 하늘은 그에게 너무 많은 권력과 특혜를 오랬동안 줬다. 그의 절제되지못한 과욕이 노탐인 줄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도전정신도 좌절도 젊은이에게는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탐욕일 뿐이다. 그의 마지막 소원 ‘사약’은 줄 수 없으나 감옥에는 좀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자신이 죄의식도 책임의식도 없이 절망의 세월로 몰아넣은 무고한 젊은이들의 좌절과 고통을 체험해보는 마지막 기회이자 법의 선물이기도 하다.

황재균의 도전정신에는 박수를, 강정호의 바보같은 잘못에는 질책을, 권력만 탐하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국정파탄자에게는 법의 응징이 필요하다. 동시에 나를 성찰하며 나이들수록 헛된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위태로운 인생길을 가는 자의 처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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