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로 맞은 87년 6‧29선언 30주년과 관련해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가 당시 계엄을 선택하지 않고 평화적 정부이양이라는 결단을 한 전두환의 역할을 폄훼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해 6월항쟁 참가자 등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조선일보 30일자 ‘최보식칼럼 ‘문재인의 ‘6·10 항쟁’과 전두환의 ‘6·29 선언’’에서 6월 항쟁 30주년은 국가적으로 기념하면서도 전두환의 6‧29선언은 그냥 지나쳤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내놨다.

최 선임기자는 당시 87년 6월 항쟁에 대해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5공 체제의 위기를 맞았지만, 통치자에게는 이를 강제 진압할 수단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잊고 있다”며 “만약 전두환이 계엄(戒嚴)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면 그 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를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선임기자는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부 이양과 단임(單任) 실천은 물 건너갔을 것”이라며 “지금 문 대통령이 6월 항쟁에 헌사한 ‘승리의 역사’도 결코 없었을지 모른다”고 가정했다.

그러면서 최 선임기자는 “이 때문에 당시 전두환의 결단과 역할을 애써 폄하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모든 현상에는 양과 음, 보이는 면과 숨겨진 면이 있다. 둘을 함께 봐야 그나마 전체적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특히 1987년 6월29일 아침 9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국민 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 선언’(6‧29선언)에 △대통령 직선제 △김대중 사면·복권 △자유 언론 등 8개 항을 담아 발표하자 술집과 커피숍 중에는 ‘오늘은 기쁜 날’이라며 돈을 받지 않은 곳도 있었고, 외신은 “한국 국민은 위대한 국민”, 김영삼은 “정치적 기적”, 김대중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평가했다고 최 선임기자는 전했다. 최 선임기자는 “이런 ‘6·29 선언’은 잊히고 ‘6·10 항쟁’만 정부 차원에서 부각되는 장면을 봤다”며 “과연 역사는 ‘현재 권력 쥔 자들’의 기록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선임기자는 전두환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립된 약자”라며 “그만큼 일방적으로 공격받고, 그에 반해 한 줌 변호를 받지 못하는 인물도 드물 것”이라고 썼다. 그는 “하지만 5공은 세계 1위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다”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국민소득은 그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고 물가는 안정됐다. 한국이 인터넷과 전자 산업의 강국이 된 것은 당시 광대역 통신망 설치 등에서 출발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도 그때 준비됐다. 무엇보다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 못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이런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사회적으로 뭇매를 맞는 분위기가 됐다.”

▲ 조선일보 2017년 6월30일자 34면 최보식 칼럼
▲ 조선일보 2017년 6월30일자 34면 최보식 칼럼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광주 항쟁 학살의 주범이자 쿠데타, 내란 살인죄 등으로 기소됐던 자에게 공정한 평가를 내리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1984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했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저런 논리대로라면 3‧1 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통치로 결단했다고 ‘공정하게’ 칭찬해야 한다는 것인가”라며 “내란목적의 살인죄로 기소됐던 사람에게 저런 평가는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두환이 계엄령을 선포했다면 헌정 최초 평화적 정부이양은 물건너가게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승리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라는 최 선임기자의 가정에 대해 송 의원은 “이미 당시 6월 상황은 계엄을 도저히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으며, 강행했다면 전씨를 비롯한 관련자는 모두 전부 사형선고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며 “반대로 국민들이 더 들고 일어나 근본적인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반론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송 의원은 “국민들의 피를 흘리지 않게 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마치 기념해야 할 일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며 “3.1운동 후 일제가 문화통치했다고 우리가 문화통치를 기념하지 않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30일 오후 신문 비평에서 “이는 집에 침입해 가족을 살해한 강도가, 남은 가족들의 저항에 못 이겨 ‘그렇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죽이지 않고 떠났다는 이유로 강도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민언련은 “애초 6·10 항쟁은 전두환 정권이 ‘학살·고문·폭행·은폐조작·타락·독직·용공조작 등 비민주적 행태’를 자행했기에 촉발된 것으로, 6·29 선언은 이 같은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대한 당시 정권의 ‘정치적 굴복’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라며 “선언 그 자체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정치적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평가할 수 있으나 이 선언을 이끌어낸 주역을 ‘전두환 씨’라 명명하는 것은 인과관계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역설했다.

민언련은 전두환의 5공 경제발전론을 전한 최 선임기자의 주장에 대해 “‘경제발전’을 빌미로 자국민에 대한 학살과 용공조작을 일삼았던 인물에 면죄부를 부여해보자는 천박한 주장”이라며 “조선일보나 최 선임기자는 전두환 씨를 ‘애국자’라 칭송하며 그의 지휘아래 내려오던 보도지침을 ‘준수’하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리운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송영길 블로그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송영길 블로그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