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언제가 됐든 옥사하지 않고 밖에 나가서 죽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김 전 실장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정부 지원 배제 명단’ 사건 공판 피고인 신문에 임하며 “언제 이것(심장)이 정지할 지 모르는 그런 불안감 속에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피고인이 재판으로 인해 심리적 불안, 육체적 과로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변호인단 측 말에 대한 답이었다.

김 전 실장 변호인단은 변호인 반대신문이 끝나기 직전, 김 전 실장의 지병인 관상동맥질환 악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3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3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 전 실장은 변호인이 ‘1997년부터 4회에 걸쳐 관상동맥 중재 수술을 받아 현재 8개 관상동맥에 스탠트가 삽입돼 있다’고 지적하자 “심장은 주먹만 하다. 여러가지 집안 (가족력) 문제 등이 있어서 58세이던 1997년인데 협심증, 고혈압이 발병했다”면서 “매일 저녁 자기 전에 오늘 하루 살아있게 해주셔서 …(울먹임)… 감사합니다(라고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지병을 우려하는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며 수차례 울먹였다. 그는 “보통은 운동할 때 협심증이 오지만 나는 편하게 쉴 때 오는 변이성 협심증”이라며 “늘 조마조마하게 지낸다. 하늘의 뜻에 맡기자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의 ‘대통령을 잘못 보필했다는 책임을 느끼고 구금 생활을 해왔느냐’는 물음에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통령을 잘 보좌하지 못해서 오늘과 같은 참담한 사태가 생겼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런 점에서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법정 방청석 3~5번째 줄을 차지한 중년·노년 방청객 30여 명 사이에서도 훌쩍거리는 소리와 한숨소리가 수차례 나왔다. 방청객 대여섯명은 손수건과 휴지를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기도 했다.

신문에선 “블랙리스트 본 적 없고 알지도 못해” 모르쇠 일관

재판부 선처를 호소하면서도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재판을 “정치적인 사건을 형법 틀에 넣은 것”이라고 항변했다. 특검의 기소를 ‘정치적인 형사소추’로 본 것으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다.

반대신문이 끝난 후 이용복 특검보는 김 전 실장을 향해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뭘 어떻게 잘못하셨느냐”고 물었다.

김 전 실장은 “과거 왕조시대 같으면 망한 정권의 도승지는 사약을 받지 않느냐.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며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무너진 정권의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재판할 것도 없이 사약을 받아라고 한다면 깨끗이 마시고 이걸로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이어 “정치적인 사건을 형법 틀에 넣으려고 하니 수많은 증인이 나오고 재판관에게도 큰 폐를 끼치고 특검에도 수고를 끼친다”며 “그런 점에서 무너진 정부의 비서실장 했다는 것 자체가 책임을 통감할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특검보가 이에 “이 사건에 대해 피고인은 전혀 잘못한 바가 없고 단지 비서실장으로 재임했기 때문에 잘못했다는 취지냐”고 묻자 김 전 실장은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고 답했다.

김 전 실장은 “저 밑으로 내려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실무자들이) 명단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해서 배제된 분이 있다”며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집행 관여를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끝으로 “어차피 정부 보조금 예산 한정돼 있는데 신청자는 많으니 누군가는 배제되거나 보조금이 삭감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냐”며 “말단 직원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삭감한 게 과연 범죄냐는 의문이 있다. 이렇게 이뤄지는 상황을 내가 몰랐다는 것도 책임을 통감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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