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연세대에서 진행된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연구회 세미나는 보통의 학회 세미나와 달리 격렬했다. ‘변화의 시기, 언론과 공중의 역할과 관계의 성찰 : 한·경·오 논란을 계기로’. 주제부터 논쟁적이었다. 세미나 도중 “손모가지를 걸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현 상황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날카로웠고 그만큼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진보언론혐오 논란을 둘러싼 세 가지 시선을 정리했다.

1. 구태의연한 언론이 문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소위 ‘문빠對한·경·오’ 프레임이 일부 좌파들의 전유물이라고 지적했다. ‘문빠對한·경·오’란 대결 프레임의 본질은 공중의 진화와 구태의연한 언론간의 간극이라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최근 논란을 두고 “주류언론의 담론적 권위가 떨어지자 ‘권위의 근거를 보여라’라고 공중이 요구하는 것”이라며 현 상황은 “언론의 공정성 위기”라고 강조했다.

“공중의 자기전개가 (한국사회) 민주화의 중심이었다. 스스로 실천하는 능력이다. 이게 최근 사태의 배경이다. 공중은 지난 20년 동안 자기전개를 하고 있는데, 언론은 구태의연했다. 언론이 진영논리에 매몰되는 사이 ‘트럼프 격노’ 보도에 대한 반증을 시도하는 식으로 공중은 진화했다. (진보) 언론은 진영론에 빠져 이들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전혀 자신들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 디자인=안혜나 기자.
▲ 디자인=안혜나 기자.
공중은 구글과 페이스북, 팟캐스트와 포털사이트라는 ‘장비’를 장착하고 진화하며 비평하거나 뉴스를 만들며 스스로가 미디어로 진화했다. 하지만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출입처와 일부 취재원들에게 둘러싸인 언론계는 좁은 시야와 진영논리의 격화 속에 공중의 진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이를 자신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 이 교수는 이와 관련 “지식인의 의무는 자신의 편견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진보언론은 똑똑해진 뉴스수용자에게 빈틈을 보였다. 바이라인 없는 온라인뉴스팀·디지털뉴스팀을 만들어 실시간검색어 어뷰징을 했고, 방향성이 맞다고 생각하면 검증 없이 그냥 받아썼고, 가능한 자극적으로 썼다. 누구보다 대기업 광고와 페이지뷰에 의존했다. 보수언론과 마찬가지로 기자단이라는 카르텔에 안주했고 보도자료를 받아썼다.

기자들은 엉성하고 대체로 불안한 기사의 생산과정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는 영업 비밀처럼 가려왔다. 이제는 독자와 시청자들이 기자들에게 어떻게 기사를 쓰고 있는지 묻고 있다. 이들을 모두 ‘문빠’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구태’를 합리화하기 위한 편의적 발상이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민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 언론의 실패를 보여주는 현상”일 수 있다. 부실한 취재를 정치적 선명성으로 대체하는 현실에서 기자들이 전문적인 권위를 유지하거나 인정받기는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2. 좌-우가 아닌 제3의 진영이 나타났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좌-우 언론진영으로서의 한경오-조중동이 아니라 제3의 진영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에 한경오 논란이 자리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들 세력은 팟캐스트,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 네트워크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새 언론진영을 만듦으로써 좌-우-제3지대라는 삼각진영을 완성하려는 것”이라 내다봤다.

흔히 탈근대사회에서 뉴스수용자는 디지털미디어를 통해 본인들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사적인 관계를 조직한다고 말한다. 채영길 교수는 오늘날 미디어 이용자들이 스스로 대안적 미디어 활동에 새로운 사회문화적 실천의 의미 및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채 교수에 따르면 이는 기존 언론의 권위에 대한 반감, 가르치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기반으로 한 ‘해체의 내러티브’를 넘어 직접 언론이 되는 ‘창조적 개발과정’에 이르게 한다.

채 교수는 또한 “진보언론과 극우언론이 소위 문빠에 대해 전체주의적이라는 비판의 지점에서 유사함을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주의 깊게 볼 대목이다. 채 교수는 이 같은 공유지점이 제3의 정치진영이 출현한 것에 대한 1(좌), 2(우) 진영의 공격으로 읽힐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채 교수는 “오늘날 시민사회는 새로운 분화의 과정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존 언론-공중의 관계는 해체되고 새롭게 재구성 된다”고 밝혔다.

혹자가 말하는 ‘구좌파-신좌파’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날 좌우 진영언론의 상징적 존재인 조선일보와 한겨레 양쪽 모두를 거부하는 새로운 정치집합체가 출현했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3. 언론탄압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요즘 기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관련 기사 또는 문재인 정부 비판 기사를 쓸 때 고민에 빠진다. 이것은 자기검열일까, 자기혁신일까.

▲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미지. 진보언론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제도권 언론을 문재인 대통령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묘사했다.
▲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미지. 진보언론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제도권 언론을 문재인 대통령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묘사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정의당 지지자들에 대한 비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에 나섰던 정치적 팬덤이 언론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은) 대통령을 통해 모든 권력이 다 바뀔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 한 명의 인격과 정치적 결단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기대와 열망을 받는 정치인이 위험에 처하면 구조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누구 때문이라며 책임을 돌리게 된다. 그 대상은 민주노총이 될 수 있고 기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게 김동원 정책국장의 지적이다.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과도하게 정치·언론의 장에 개입하려는 사람들의 존재가 어렵게 얻은 정권을 보호하려고 한다. 열정으로만 볼 수 없는 반지성주의가 있다”고 우려했다. 반지성주의자들에게 조간기사와 저녁종합뉴스는 그저 자신들의 신념을 확인하기 위한 소재로 쓰일 뿐이다.

최근 ‘미디어시민의 탄생’을 펴낸 작가 한윤형씨는 “한국에선 극단적 중도가 처음부터 있었다. 한국엔 극우 극좌 극중도가 있다”고 설명하며 “공중들이 서로 적대하고 기득권을 비판하며 이중잣대를 체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미디어시민도 (여론의) 영향력을 갖게 됐다”며 “본인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한 책임의식, 자신에게도 그 윤리잣대가 적용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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