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호법의 입법취지상 보존·관리 외에도 활용까지 고려하도록 돼 있는바 문화재청이 이 사건 처분을 함에 있어 보존과 관리 측면에 치중한 점이 있고, 문화향유권 등의 활용적 측면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으며, 삭도(케이블카)사업으로 인한 환경훼손이 크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중략)”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이하 중앙행심위)가 지난 15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거부처분 취소청구 사건에 대해 문화재청의 거부처분이 부당하다고 결론 내며 내놓은 설명이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466번지와 끝청봉 하단을 연결하는 3.5㎞의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계획으로,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이미 두 차례나 무산된 바 있다.

그러다 지난 박근혜 정부가 2014년 8월12일 이 사업을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관광·콘텐츠 분야 정책과제에 포함하면서 재추진 움직임이 일었다. 이후 8월28일 국립공원위원회가 조건부로 사업을 승인했다. 양양군에 멸종위기종 보호 대책 수립과 시설 안전 대책 등 7가지 부분을 보완할 것을 전제로 사업안을 가결·승인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8일 문화재청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관련 문화재 현상변경안을 심의해 만장일치로 부결했다.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은 동물·식물·지질·경관 등 4개 분야별 소위원회를 구성해 현지 조사를 진행하고 각종 조사를 분석한 결과 케이블카 건설 공사와 운행이 문화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문화재청이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오색과 끝청에서 56마리의 산양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양은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산양의 서식지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 사진=강성원 기자
▲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 사진=강성원 기자
1992년부터 설악산 밑자락에 터 잡고 살면서 1995년부터 강원도 양양군이 추진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반대 운동을 펼쳐온 박그림(69) 녹색연합 공동대표는 중앙행심위의 문화재청 거부처분 부당 결정이 나오자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팻말을 다시 꺼내 들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등이 설악산케이블카 반대 집중 캠페인에 돌입한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만난 박그림 대표는 중앙행심위 결정에 대해 “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존이 원칙인데도 이를 부당하다고 한 것은 너무도 잘못된 결정”이라며 “박사학위 논문을 초등학생이 검토해 사업을 하면 안 된다고 한 것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문화재위원회 전문가들 동물·식물·지질·경관 등 6개월에 걸쳐 조사하고 판단해서 만장일치로 작년에 사업 부결 결정을 내렸다.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중앙행심위가 현장 한 번 가보고 문화재청 사업 당사자인 양양군 의견을 듣고 결정한 것 중 어느 쪽이 정확한 결정이고 어느 쪽이 잘못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행심위가 사업 허가 논리로 ‘문화향유권’ 등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한다는데 그럼 거기 살고 있는 생명들의 생명권은 지켜지지 않아도 되느냐”며 “생명은 사람 말고도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을 비롯해 10종이 넘는 멸종위기종이 케이블카 설치 예정 노선에 산다. 거기 사는 모든 생명에 대한 생명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면 어디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행심위 결정 이후 문화재위원들의 집단 사퇴서 제출 등 반발하고 있는 문화재위 8개 분과 위원장들도 지난 26일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고 “중앙행심위의 결정은 문화재 보존·관리와 활용은 원형 유지라는 문화재보호법의 기본원칙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며 “문화재 보존을 통한 활용보다는 개발을 통한 활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설악산 오색삭도 설치 사업에 대한 심의는 그동안 문화재위 천연기념물분과에서 수차례의 현장조사와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문화재보호법의 기본원칙에 부합되는 심의였다”고 밝혔다.

▲ 설악산 소공원과 권금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사위인 고 한병기씨에게 외설악의 정상인 권금성으로 왕복하는 삭도(케이블카)를 내주고 독점 운영하게 했다. ⓒ연합뉴스
▲ 설악산 소공원과 권금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사위인 고 한병기씨에게 외설악의 정상인 권금성으로 왕복하는 삭도(케이블카)를 내주고 독점 운영하게 했다. ⓒ연합뉴스
박그림 대표 역시 “설악산은 개발하지 않고도 청정 자연만으로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곳임에도 오로지 개발을 하자는 것은 자본의 폭력이자 자본과 결탁”이라고 꼬집었다.

박 대표는 “설악산은 이미 수용 인원을 넘는 사람들이 오는데 이들이 어떻게 머물고 만족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며 “이미 오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며 지역에 경제적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데도 너무 쉽게 경제적 잣대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번 중앙행심위 결정을 아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추진 중단에 대해 ‘보류’ 입장을 밝히면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강원도와 양양군에 힘을 실어줬다는 지적이다.

박 대표는 “문 대통령 당선 후에도 케이블카 사업에 틀림없이 어떤 상황이 다시 벌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내부적으로 경계도 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 법적 대응을 비롯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통해 케이블카 사업 취소를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도 현재 환경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국립공원계획 변경처분 무효확인소송을 제가한 상황이다.

최재홍 민변 환경보건위원장은 “문화재 현상변경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진행하는 소송은 설악산을 포함해 22개 국립공원을 보호해야 하는 환경부 장관이 자신의 월권을 발휘해 자본이 지령에 따라 만든 케이블카 계획을 취소하라는 것”이라며 “중앙행심위 결정은 무소불위의 결정이 아니다. 비전문가들이 내린 그 결정에 대해 문화재위 전문가들이 전문가적 양심과 소신으로 다시 결정을 내리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그림 대표는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집중 캠페인 기간 동안 서울 광화문에서 ‘박그림과 설악산 이야기’도 진행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설악산을 지키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내 삶이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시대는 환경의 시대고 국민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의식도 바뀌고 있어 그게 가장 큰 힘이라고 봐요. 국민이 원하면 누가 막겠어요. 케이블카 반대 운동은 환경운동가들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운동이고 미래 세대를 위한 운동이에요. 후세대에 되돌려줘야 할 자연 유산이잖아요.”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