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 재판과 관련해 동아일보와 머니투데이 등 일부 언론이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두둔하고 나섰다. 합병안이 무산됐다면 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해를 국민연금에 끼쳤을 것이라는 가정법까지 썼다.

그러나 이 같은 기사들에는 이 합병이 이재용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일련의 과정이며, 삼성물산에는 불리하고 제일모직에는 유리한 합병이었다는 최근 법원 판결의 주요 근거들은 담겨있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경영권 승계에 동원했다는 본질적인 혐의를 외면한 채 이재용 일가와 국민연금 편들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는 26일자 10면 기사 ‘금융계 “국민연금, 합병 반대했다면 1조 이상 손실 봤을 것”’에서 “금융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져 삼성물산 합병이 무산됐다면 오히려 국민연금 자산가치가 더 크게 하락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옛 삼성물산의 주가가 지난 2015년 5월26일 합병 발표 직전일인 5월22일 5만5300원에서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의 찬성 결정 직전일인 7월9일 6만3600원으로 올랐고, 같은 시기 제일모직 주가도 16만3500원에서 17만4500원으로 상승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두 회사 지분을 모두 보유한 국민연금의 지분 가치는 총 2조370억 원에서 2조2540억 원으로 2170억 원(10.7%) 늘었다는 것.

또한 동아는 △당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가 합병무산시 삼성물산 주가가 22% 하락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고 △추후 삼성물산에서 약 3조 원 규모의 추가 부실이 드러난 점 등까지 고려하면 국민연금은 합병에 반대했을 경우 1조 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머니투데이도 26일자 3면 기사 ‘“합병 찬반 결정서 제일 신경쓴 건 수익률”’에서 “양사 합병 무산시 주가 급락은 불 보듯 뻔했다”며 “국민연금은 당시 2조원 가량 보유중이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 뿐 아니라 23조원 가량 보유중이던 삼성그룹주 전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쳐 전체 수익률을 끌어내리는 것이 우려됐다는 설명”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뉴스1도 23일 출고한 ‘삼성물산 합병 실패했다면 국민연금 최소 1조원 손실 추정’에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1조원의 손실을 봤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동일한 내용을 보도했다.

▲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31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31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도 23일자 16면 기사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으로 손해보지 않았다”’에서 합병발표 직전 삼성물산 주가와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개최 전날 주가를 비교한 내용을 실었다. 또한 이 신문은 특검이 ‘불공정 합병 비율로 손해가 명백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투자위를 통해 합병 찬성 결정을 강행했다’는 주장도 주가 산정을 잘못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계산한 기간(2015년 5월22일~7월9일) 이후인 7월17일 주총에서 합병이 확정된 직후부터 삼성물산의 주가는 오히려 계속 떨어졌다. 제일모직 주가는 등락을 거듭했다. 삼성물산 주가는 그해 7월23일부터 5만원대로 떨어지기 시작해 8월17일엔 5만원대도 무너졌다. 합병법인이 상장되기 전날인 9월14일엔 4만8100원이었다. 그런데도 이들 언론은 특정 시기만 딱 떼어서 ‘주가가 올랐으니 합병은 잘한 결정’이라 주장한 것이다.

이총희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을 갖고 있다 주가가 올랐을 때 내다 팔 것이 아니라면 이런 단기적 과열현상으로 합병 결정의 타당성을 따질 수 없다”며 “주총에서 합병이 결정된 이후엔 오히려 삼성물산 주가가 떨어졌는데, 그럼 합병결정이 주주와 투자자에 손해를 끼친 것인가라는 반론도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합병으로 인한 이익 산정은 장기적인 내재가치로 따져야 한다”며 “법정에서 증인의 주장을 보도할 수는 있으나 그에 대한 반박이나 이견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불확실한 가정을 근거로 본질을 호도하는 보도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구창우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연금행동 사무국장은 지난 26일 인터뷰에서 “당시에도 ‘~하지 않으면 손실을 볼 것’이라는 식의 불확실한 가정에 의해 합병안에 찬성해서는 안된다는 전문위원의 목소리도 있었다”며 “합병 사건의 본질은 의결권행사 자문위원회도 거치지 않았고, 합병비율이 적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병비율이 잘못 산정됐다는 언론의 주장에 대해서도 구 국장은 “0.35(삼성물산) 대 1(제일모직)이라는 합병비율로 삼성물산의 자산가치가 저평가돼 있었다는 것은 이미 지난해 서울고법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의 합병 발표 전 이 회사 주식을 순매도한 이유가 “유가하락에 따른 글로벌 건설 프로젝트 발주 둔화, 전반적 상품가격 하락으로 상사부문 마진 약화 등”이라는 머니투데이 주장도 법원의 판단과 배치된다. 일성신약 등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매수가격 결정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민사35부(재판장 윤종구 부장판사)는 지난해 6월 판결문에서 국민연금과 삼성물산이 의도적인 주가하락에 나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구 삼성물산(주) 주가가 낮게 형성될수록 이건희 등의 이익이 커지고 △이건희 이재용 등이 구 삼성물산(주)의 경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는 점 등까지 감안할 때 “구 삼성물산(주)의 실적 부진이 이건희 등의 이익을 위하여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도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 동아일보 6월26일자 10면 머리기사
▲ 동아일보 6월26일자 10면 머리기사
▲ 머니투데이 2017년 6월26일자 3면
▲ 머니투데이 2017년 6월26일자 3면
특히 재판부는 국민연금이 그해 3월26일부터 5월22일까지 삼성물산 주식 290만여 주를 팔아치웠다가 합병결의일(5월26일)부터는 사들인 점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사회 결의일(합병 발표) 후의 투자 행태”와 주주총회서 합병에 찬성하는 쪽으로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등을 감안할 때 “국민연금공단의 주식 매도가 정당한 투자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은 지난 8일 문형표‧홍완선 판결문에도 일부 인용돼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조의연 부장판사)는 “2013년 12월 옛 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 사업부 인수에서 삼성물산 지주회사화 계획으로 이어지는 이재용 부회장 등의 삼성 지배권 확립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런 내용이 기사에 실리지는 않았다.

구창우 연금행동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이 손해를 입고, 이재용 일가가 이득을 본 것은 분명한데도, 언론이 삼성과 변호인 쪽 입장을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에 어긋난다”며 “국민의 노후자금이 재벌에 의해 부당하게 손해를 본 본질을 호도하는 보도”라고 지적했다.

이상희 녹색당 정책기획팀장도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재용 처벌의 프레임을 바꾸기 위한 장난”이라며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을 통해 이재용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려고 했다는 본질을 특정 시점의 손실여부로 접근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비판했다. 이 팀장은 “더구나 ~안했다면 손실을 봤을 것이라는 식의 가정법을 근거로 한 주장한다는 것자체가 어이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며 “국민의 관심이 떨어졌다고 본질을 희석하려는 것에 대해 더욱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는 답변하지 않았으며, 머니투데이와 파이낸셜뉴스 기자에게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 이메일 질의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6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6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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