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출신’ 두 자매는 88일 만에 배 전문가가 됐다. 국내의 노후한 개조 선박의 문제점을 줄줄이 읊었고 전 세계 해양 관련 회사들이 보유한 각종 수색 장비 리스트도 정부에 만들어 제공하며, 해류 흐름에 따른 구명벌의 예상 위치를 분석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렇게 해야만 지난 3월31일부터 88일 째 남태평양 어디선가 구명벌에 의지해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부도, 선사도 믿을 수가 없어 직접 배 전문가가 되어 자료를 찾아나선 자매는 스텔라 데이지호에 탑승했던 2등 항해사 허재용(34)씨의 누나인 허영주(40)씨와 허경주(38)씨다. 낮에는 청와대 인근과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밤에는 자료를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점점 더워지고 있는 날씨에 지칠 법도 했지만, 수색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구조의 골든타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두 자매에게는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광장 4.16연대의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허영주씨와 허경주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실종자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하는, 아직 찾지 못한 구명벌과 같은 주황색의 리본이 가득했다.

▲ 스텔라 데이지호의 2등 항해사 허재용씨의 누나인 허경주씨. 사진=이치열 기자.
▲ 스텔라 데이지호의 2등 항해사 허재용씨의 누나인 허경주씨. 사진=이치열 기자.
-현재 스텔라 데이지호는 어떤 식의 수색을 하고 있나.

“예를 들어 침몰 지역이 여기라고 하면(허경주씨가 종이에 그림을 그려 손가락으로 ‘엑스’자를 그렸다) 사고 초기 집중 수색은 해류가 북쪽으로 올라가는 흐름이라며 바로 위쪽을 수색했다. 지난 5월19일부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취재를 하던 도중 ‘왜 아무데나 수색하지’라는 의문을 가졌다. 민간 해류 분석 전문가와 실제로 분석해보니 해류가 흐르는 방향은 정작 다른 방향이더라. 속된 말로 그동안의 수색은 ‘삽질’한 거였다. 하나 남은 구명벌은 해류 흐름에 따라 갔을 텐데, 해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수색을 하기 시작한 건 겨우 지난 16일부터다.”

(편집자주: 현재는 지난 16일부터 스텔라 데이지호의 선사인 폴라리스 쉬핑에서 투입한 배 한 척이 도착해 집중 수색을 벌이고 있다. 24일부터는 정부가 투입한 배도 함께 집중 수색을 벌이고 있다. 집중 수색은 침몰 이후부터 진행되다가 5월10일 통항수색으로 전환되면서 사실상 중단되기도 했다.)

-수색 상황은 어떻게 전달받고 있나. 실제로 현장에 가보지도 못했다고 하던데.

“5월5일부터는 선사가 만든 상황실에서 쫓겨났고, 이후부터는 해수부에서 사람이 나와 하루에 한번씩 설명해주고 있다. 그나마 어제(22일)부터는 테블릿PC를 들고 침몰 지점이 어디고 현재 선박이 어디를 지나고 있다는 등의 궤적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 전까지는 손바닥 만한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한 3분 정도 겨우 보여줬다. 선사의 개인 정보라며 자료는 전달해 주지도 않고 보여만 주는데, 어머니들 눈도 안 좋은데 그게 보이겠나. 최소한 A4용지에 인쇄해서 보여주는 성의라도 보여달라고 했는데 지켜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지난 4월17일에 가족들이 국무총리공관에 가서 끌려나온 이후 해수부 보고 문서에 가족 동향보고란이 생겼고, 그때부터 해수부에서 직원이 파견나와 이것저것 설명도 한다. 그렇지만 해수부에서 단 하나의 자료도 가족들에게 건네준 적은 없다. 침몰 이후 해수부가 어떤 내용도 보여준 적 없다가 가족들이 난리치니까 4월26일에서야 처음 항적도를 보여줬다.”

▲ 광화문광장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가족이 머무는 컨테이너 박스에 찾아온 해수부 직원이 오늘 수색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광화문광장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가족이 머무는 컨테이너 박스에 찾아온 해수부 직원이 오늘 수색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편집자주: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해수부에서 나온 관계자가 스텔라 데이지호 가족들이 모여 있는 4.16연대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왔다. 허영주씨는 해수부 관계자가 보여주는 자료에 수색했던 구역과 확률분석에 따라 해경이 지정한 수색 구역이 제대로 표시가 안 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고, 위성분석에 따른 결과치도 한꺼번에 자료에서 다 볼 수 있도록 일일이 요청했다. 허영주씨는 “어제부터 새로 오신 분인데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수색에 대한 정부 태도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새 정부 초기 청와대는 수색 재개에 의지가 좀 있었던 것 같다. 근데 해수부나 외교부 쪽에서는 계속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안된다며 가족들이 우기는 거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다.

사실 그렇지도 않다. 정부가 제대로 한 것도 없고 수색 구역을 제대로 설정했던 것도 아니다. 심해수색장비 투입 검토 왜 안하시냐, 국가 소유 선박이 근처를 지나갔는데 왜 수색에 투입이 안됐냐, 선사 소유의 선박도 왜 수색에 투입이 안되냐고 계속 따져 물었다. 구조선이 지금 투입된 것도 저희가 먼저 외국의 수색선들을 검색해서, 선사의 선박으로 수색이 안되면 돈받고 수색해주는 이런 배라도 투입하라고 제안한 뒤로 투입된거다. 정부는 우리에게 수색 로드맵을 단 한 번도 제시한 적 없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구명벌이 배와 함께 심해로 끌려들어갔을 가능성이 있고, 자동으로 열리지 않고 배에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선사에선 주장했다. 선사는 사고 발생 4일 후부터 이미 사망보험금 합의를 꺼내들고 나섰다.

그러면 실제로 그 구명벌이 가라 앉은 배에 남아있는 게 맞는지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해수부에도 심해수색장비라도 넣어달라고 했더니 해수면 수색과 심해수색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더라. 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가. 가족들은 둘 다 원한다고 했더니 해저 수색은 구난(救難)까지만 책임지는 정부의 역할이 아니고 민간의 역할이라고 하더라. ‘수색 배 한 척 넣어줄 게 받을래, 아니면 아무 것도 안하겠다’는 식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해수면 수색이라도 받은거다.

국방부에서는 심해수색이 불가능하다고 하길래 2009년에도 우리나라에서 심해수색한 적이 있다고, 2009년에도 했는데 왜 2017년에는 못하냐고 국방부에 얘기했다. 그제서야 국방부 자산 중엔 없고 해수부 자산 중엔 있다고 하더라. 해수부 자산으로 있는 심해수색장비도 그나마 연구 목적이라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호주, 브라질 등에 있는 심해수색장비를 가진 업체 리스트를 찾아서 정부에 알려줬다. 배에 대한 심해수색을 해야 사고 원인도 규명할 수 있다. 이걸 밝혀야 나머지 노후한 배들도 계속 운항할 지를 결정할 것 아닌가.”

-정부가 최근에는 수색 범위를 그나마도 축소하겠다고 했는데.

“전에는 해류가 점점 넓게 퍼져가니까 수색 구역을 더 넓혀야겠다고 말해놓고, 갑자기 수색구역 중 아랫부분은 수색 안해도 된다고 말하더라. 이제는 (투입할 수 있는) 가용자원이 부족하니까 수색하겠다고 했던 구역 중 밑부분은 빼고 수색하자는 거다.”

-일각에서는 세월호와 달리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침몰한 배라 수색이 쉽지 않아서 어려운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한다.

“정부가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했다. 군함이나 비행기를 보낼 수도 없고 근처 나라에 부탁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했다. 정부가 이렇게 나오니까 선사도 발빼는 상황이다.

저희는 4월 첫째주부터 국방부에 요청했다. 실종 선원 중 두 명이 선원으로 탑승해 대체복무를 하다가 실종된 것이니까 군함을 보내 수색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국방부는 군함을 보내더라도 26일이 걸리는데, 그러면 벌써 4월말이 된다며 실효성이 없다고 보내지 못한다고 했다. 만약 그때 보냈으면 적어도 4월말부터는 외국 자원도 투입이 안되는 상황에서 수색 자원이 없다며 수색을 못하는 상태를 국가 자원으로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난 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내용에 따르면 스텔라 데이지호 말고도 폴라리스 쉬핑 소속 배들이 특히 물이 새는 등 많이 위험한 상태라는 정황들이 있는 것 같다. 동생도 그런 말을 평소에 한 적 있나.

“동생은 평소에 한 마디도 안했다. 세월호 참사 나기 전부터 배에 탔는데 참사 이후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다. 동생은 ‘세월호도 가라앉는데 두시간 반 걸렸는데 이런 배는 가라앉으려면 삼일 걸린다’고 했다. 실제로 동생이 탔던 배는 63빌딩보다 70m 가량 더 긴 배였다. 우리는 그냥 그 배가 엄청 크고, 동생이 문제가 없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했다.

폴라리스 쉬핑 소속 선박에 탄 선원들로부터 받은 제보는 ‘폴라리스 쉬핑’, ‘해양대’ 이런 키워드를 넣어 페이스북으로 일일이 검색해서 사람들을 찾아내서 연락한 결과다. 페이스북에 혹시 폴라리스 쉬핑 선박을 타는 선원 있으시면 연락달라, 스텔라 데이지호처럼 당신들도 위험할 수 있다고 글을 올렸더니 천 번 정도 공유가 되더니 몇몇 분들이 댓글을 달더라. 그 댓글을 보고 일일이 메시지를 보내 연락했다.

몇몇 분들은 메일도 보내고 내부 제보도 해주셨다. 폴라리스 쉬핑의 다른 배인 스텔라 퀸 갑판에서 물이 치솟는 사진도 받았다. 다만 ‘이 바닥이 폐쇄적이어서 바로 찍힌다’며 신원 밝히는 것은 다들 극도로 꺼렸고 한번 여기서 찍히면 다른 곳으로 이직도 어렵다는 말도 했다. 어떤 분은 저희에게 ‘상황이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나설 수가 없다. 이 바닥이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연락이 되던 폴라리스 쉬핑 소속의 선원분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폴라리스 쉬핑에서 배에 탄 선원들의 인터넷 연결을 차단시켰다고 했다. 하도 선원들이 제보를 하니까 연결을 끊어버린 것 같다. 선원들이 (폴라리스 쉬핑 소속) 배들의 문제점을 실시간으로 알려줬는데 지금은 본인들도 겁나서 연락을 안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얼마나 불안하겠나. 사고가 난다고 해서 (문제를) 제대로 밝히는 회사도 아니지 않나.”

-개조한 노후선박도 굉장히 위험한 상태로 운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1993년에 건조된) 스텔라 데이지호도 일본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만들었던 것을 개조해서 쓴거다. 일반적으로 중고 자동차도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기록이 남는데, 선박은 국가 단위를 넘어 거래가 오고 가기 때문에 사고 이력이나 수리 이력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서 팔 수 있다고 한다. 중고 선박을 샀는데, 개조까지 됐던 배인데도 어디가 어떤 문제가 있는 배였는지 자체를 알 수가 없다.

폴라리스 쉬핑 소속 배 중에 스텔라 데이지호와 쌍둥이 선박이 네 척이 더 있다. 건조된 연도가 비슷하고 같은 조선소에서 건조됐고 중국 조선소에서 개조됐다는 점이 유사하다. 톤수도 비슷하다. 그 배들이 지금 스텔라 데이지호와 비슷한 상태일 수 있다. 실제로 쌍둥이 선박들이나 스텔라 유니콘호와 스텔라 퀸호처럼 문제가 발생했던 배는 최소한 정밀검사해야 한다.

들어보니 한진해운에는 이 배처럼 초대형 선박이 없다더라. 스텔라 데이지호의 선장과 항해사가 한진해운 출신인데 이 정도의 초대형 선박을 운용해본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선사에서는 선원 과실로 몰고 있지만, 이런 ‘똥배’로 이런 식의 인사를 운영했던 선사 문제도 있다고 본다. 한진해운처럼 큰 회사는 이런 식으로 개조한 배를 굴리지 않는다고 한다.”

▲ 스텔라 데이지호 선원의 어머니 휴대폰. 휴대폰에는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색과 아직 찾지 못한 스텔라 데이지호의 구명벌 색인 주황색이 섞인 리본이 달려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스텔라 데이지호 선원의 어머니 휴대폰. 휴대폰에는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색과 아직 찾지 못한 스텔라 데이지호의 구명벌 색인 주황색이 섞인 리본이 달려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 많은 자료를 모두 두 분이서 조사하신 건가. 가족분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많은 데이터들은 거의 우리 둘이 다 찾았다. (스텔라 데이지호 가족들은) 인원이 적어 수색만 제대로 되야 한다는 것만 갖고도 (정부와 선사 등과) 석 달을 싸우고 있다. (동생 허경주씨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출근도 안하고 아예 직원들에게 운영을 넘기고 있는 상태다. 망하기 직전이다. 언니(허영주씨)는 직장 휴직을 신청한 상태고, 어머니는 요양보호사였는데 잘렸다. 영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다른 여동생도 이 사고로 한 달 동안 한국에 들어와있어야 한다니까 회사가 해고했다. 아버지도 자영업을 하셨는데 석달 째 문 닫고 있다. 거의 자비로 버티고 있다.

언니(허영주)가 자료를 보고 숨겨진 의도같은 걸 잘 찾아낸다. 정부가 하도 나중에 가서 말 바꾸는 경우가 많아 처음에 자료를 받아보면 어떤 의도가 담긴건지 최대한 우리 둘이 분석해내야 한다.“

-수색 골든타임이 어디까지라고 보시나.

“백일이라고 본다. 이제 20일도 남지 않았다. 백일 이후에는 이제 신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최소한 백일 정도는 제대로 수색을 했어야 했는데...수색 제대로 하고 원인 규명 제대로 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는 얘기를 수백번도 더한 것 같다.”

(편집자주: 두 자매는 기적적으로 438일 동안 바다에서 표류하며, 직접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먹으면서 살아남은 한 선원의 영상을 보여줬다. 스텔라 데이지호 선원들은 생존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이들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도 실종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동생 허재용씨는 어떤 분인지 듣고 싶다.

“리더십이 강하고 소위 ‘상남자’ 스타일이다. 대학 다닐때는 동아리에서 드러머로 활동했고 끼도 많았다. 후배들이 많이 따랐고, 의리 하나로 먹고 사는 애였다. 덩치도 크고 키가 184cm다. 법대 다닐 때도 학점이 4.5 만점일 정도로 똑똑했다. 주변 분들이 그런다. 걔는 어딘가 살아있을 것 같다고.

원래 항해사가 꿈은 아니었다. 같이 알바하며 만난 어떤 형이, 너는 공부도 잘했고 영어도 잘하고 법도 많이 아니까 항해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더라. 그래서 당시 국토해양부 산하 오션폴리텍에 입학해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동기가 한 200명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그 중 성적이 5등 안에는 항상 들었다. 동기들 중에서도 승진이 제일 빨랐다. 2등 항해사 됐으니까 1등 항해사가 되겠다며 시험 준비를 했다. ‘자기 인생의 마지막 공부’라고 하며 1등 항해사 시험 공부를 독서실까지 다니면서 하더니 결국 붙었다. 이번에 배 타면, 승선 기간을 채우면 1등 항해사가 되니까 탔다.

스텔라 데이지호는 갑자기 스케줄이 변경되면서, 회사에서 타라고 하니까 타게 됐다고 하더라. 스텔라 데이지는 폴라리스 쉬핑 선원들도 타기 싫어했던 배라고 들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동생도 ‘잔고장이 많아서 이 배 타기 싫다’고 했다고 하더라. 이제와서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시험을 못 붙었으면 동생은 과연 이 배를 탔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