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30일 세계 각국의 눈이 미국 하원에 쏠렸다. 이날 미 하원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미래세대에 대한 역사교육을 요구하는 ‘121결의안(House Resolution 121)’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는)일본 제국 군대를 위한 성노예를 주목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어린 여성들을 착취하는, 세상에 ‘위안부’로 알려진 제도를 운영했다. 그 잔인성과 규모에 있어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 군사 매춘으로서의 ‘위안부’ 제도는, 집단 강간과 강제 유산 그리고 모욕과 성적 폭력을 통해 신체적 불구와 죽음 그리고 이후의 자살들을 일으킴으로써,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사례 중의 하나”라고 규정했다.

위안부 결의안에 H. Res. 121이라는 번호가 배정된 2007년 2월1일부터 결의안이 통과된 7월30일까지, 마이크 혼다 의원을 통한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 개최와 뉴욕타임스, LA타임스, 워싱턴포스트의 사설 게재, 아시아 각국 커뮤니티의 활동, 외교분과위 상정 무산(5.23)후 통과(6.26), 일본의 막강한 로비를 피하기 위한 일요일 오후의 결의안 기습 상정 등 미국 하원을 중심으로 한인단체들의 정치력이 빛을 발했다.

▲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 후 기자회견을 하는 이용수 할머니. 사진출처='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 후 기자회견을 하는 이용수 할머니. 사진출처='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한인유권자센터를 비롯한 한인들은 ‘워싱턴 로비데이’를 정해 의원회관에서 의회로 가는 건널목을 지나는 의원들에게 유인물을 주고 결의안 지지를 호소하는 활동만으로 50명 이상의 지지 의원을 확보했다. 이는 ‘121 스트리트 로비’라는 명성을 얻었다.

위안부 결의안에 동의하는 의원 숫자가 70명을 넘어서자, 아베 신조 총리는 2007년 4월25일 워싱턴을 방문해 “미·일 관계의 악화는 미국에게 결정적인 불이익이 된다”며 결의안 반대를 종용하고 나섰다. 아베 신조가 관련된 일본 우익이 미국 언론에 첫 신문광고(2007년 6월14일자 워싱턴포스트)를 낸 것도 이 과정에서였다.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가장 막강한 로비가 펼쳐진 것도 바로 이 미국 하원이었다. 일본 정부는 하원 의원들과 접촉하고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및 딕 체니 부통령의 주변에 로비를 펼쳤다. 일본 정부는 로비스트 고용을 위해 공식적으로 반년간 45만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돼 있다.

위안부결의안 통과 당시 미주 한인들의 구심점이 됐던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소장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워싱턴을 다녀간 후에 뉴욕서 구체적인 방해공작이 시작되었다”면서 “가장 노골적으로 반대의 의견을 전해 온 곳은 일본계 기업들이었다. 알고 보니 ‘닛본’이란 운송회사는 태평양전쟁 시 일본 군인이나 강제위안부를 실어 날랐던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후일담을 내놓은 바 있다.

결국 이 결의안은 168명의 의원으로부터 사전 동의를 받았고 하원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정대협과 미주 한인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이 같은 성과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이효재 정대협 공동대표가 뉴욕을 방문한 1992년엔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워싱턴정대위의 활동으로 1997년엔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첫 결의안인 ‘126결의안’이 제출됐다. 2000년에도 레인 에번스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357결의안’이, 2001년과 2003년에도 결의안들이 제출됐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2006년에야 에번스 의원과 공화당의 크리스토퍼 스미스 의원이 공동으로 낸 ‘759결의안’이 국제외무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일본 정부의 막강한 로비에 막혀 의회 회기가 만료될 때까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첫 결의안 제출 11년만인 2007년 마이크 혼다 의원이 주도한 결의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된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2014, 한울)에서 미국 하원의 결의안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에 중요한 단계를 만들어주었다”며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하나의 ‘문서’에 불과하다는 회의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이러한 평가와는 달리 ‘일본군위안부 관련 결의안’의 파급 효과는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국을 시작으로 캐나다에서도 중국교포단체와 한인들(캐나다 정대협)을 중심으로 ‘캐나다 의회 결의안 채택을 위한 아시아연대’가 결성됐고 2007년 11월 캐나다 연방의회에서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정대협은 국제엠네스티와의 연대를 토대로 유럽 의회의 결의안 채택을 추진했고 2007년 12월 유럽의회에서도 결의안이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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