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기사가 되냐.”

메르스가 한창 창궐했던 2015년 6월 국민일보가 “‘살려야한다’ 박근혜 대통령 뒤편에 A4용지”(6월17일)기사를 낸 이후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들은 말이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 주요 종합일간지 1면에는 모두 보건복지부와 국민안전처, 문화체육관광부의 광고가 실렸지만 국민일보는 광고를 받지 못했다.

이 사례는 현재 언론이 정치권력의 압박과 함께 광고를 통한 자본권력의 압박도 함께 받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2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미디어오늘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6월항쟁 이후 30년, 한국 언론의 현재와 미래’ 토론에서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크게 △정치권력의 압박 △자본권력의 압박 △뉴미디어 플랫폼에의 종속을 꼽았다.

▲ 2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미디어오늘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6월 항쟁 이후 30년, 한국 언론의 현재와 미래' 토론이 열렸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사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미디어오늘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6월 항쟁 이후 30년, 한국 언론의 현재와 미래' 토론이 열렸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사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1987년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쟁취했음에도 왜 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까. 이는 여전히 언론사 간부를 정치권력이 결정하는 지배구조 때문이다. KBS의 지분은 100% 정부가 가지고 있고, MBC의 지분은 방송문화진흥회가 70%, 정수장학회가 30%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회가 30%, KBS가 27%, MBC가 22%를 가지고 있다. YTN은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전KDN이 21%, KT&G의 자회사 KGC인삼공사가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등 공기업 및 정부 관계회사 지분이 50%를 넘는다. 공영방송의 사장을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니 간부들도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청와대가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의 문제는 보수정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정환 대표는 “정연주 KBS 사장 역시 노무현 정권의 낙하산이라는 문제가 제기됐었다”며 “합리적이고 건전한 상식을 갖춘 사장을 선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MBC나 KBS의 사장을 정치권에서 선임을 하는 시스템 자체가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국민일보는 메르스가 창궐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살려야한다' A4용지를 보도했고, 다음날 주요 일간지 중 유일하게 보건복지부의 광고를 받지 못했다.
▲ 국민일보는 메르스가 창궐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살려야한다' A4용지를 보도했고, 다음날 주요 일간지 중 유일하게 보건복지부의 광고를 받지 못했다.
정치권 보다 언론사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자본권력이다. 2016년 7월 뉴스타파가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을 공개했을 때 상당수 언론사가 침묵하거나 이미 올렸던 기사를 삭제한 것도 광고주의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이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회장이 소유했던 중앙일보는 해당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삼성이 기사를 ‘마사지’하는 정황은 숱하게 발견된다. 2012년 7월 이건희 회장과 형 이맹희씨의 상속 재산 분할 소송에서 이맹희씨가 “도둑놈 심보”라고 말한 것을 보도한 기사가 무더기로 삭제된 일이 생겼다. 당시 삼성 측은 “일상적인 홍보 활동”이라고 해명했다. 이 외에도 2013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 성적 조작 기사 사건 등 자본권력이 언론사의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됐다.

이정환 대표는 “만약 언론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에 대해 좀 더 비판을 쏟아내고 그 배후를 추적했더라면 합병을 막을 수 있었거나,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를 좀 더 빨리 드러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2012년 7월 이건희 회장과 형 이맹희씨의 상속 재산 분할 소송에서 이맹희씨가 “도둑놈 심보”라고 말한 것을 보도한 기사가 무더기로 삭제된 일이 발생했다.
▲ 2012년 7월 이건희 회장과 형 이맹희씨의 상속 재산 분할 소송에서 이맹희씨가 “도둑놈 심보”라고 말한 것을 보도한 기사가 무더기로 삭제된 일이 발생했다.
정치와 자본의 압박이라는 전통적인 언론자유를 해치는 요인 외에 최근에는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뉴미디어 플랫폼과 트래픽에 대한 종속이라는 새로운 요인이 추가됐다. 언론사들은 뉴미디어 플랫폼의 독점을 비판하면서도 네이버 등에서 넘어오는 온라인 트래픽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됐다. 때문에 언론은 플랫폼을 공격하면서도 계약을 체결할 때는 전재료 인상에 목을 맨다.

이정환 대표는 “네이버와 다음, 페이스북 등 플랫폼과 트래픽에 대한 종속이 심해지면서 클릭수를 많이 받을수록 돈을 벌게 됐고, 온갖 쓰레기 기사들이 양산됐다”며 “언론 스스로 언론자유를 트래픽과 맞바꾸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정작 네이버와 다음은 플랫폼으로서 공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포털들은 편향성을 배제한다는 이유로 무색무취의, 아젠다를 뭉그러뜨리는 기사를 선택해 메인에 배치하며 결국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이정환 대표는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언론사의 출입처 문화 △언론사끼리의 소송전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이나 보도를 억압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블랙리스트언론사 관리 △정부 광고 편중의 문제 △신고만 있으면 무차별 삭제를 가능하게 하는 임시조치 제도 △중립을 넘어 중재를 강요하는 언론중재위원회 제도 등을 꼽았다.

이 대표는 언론 자유 위협 요인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언론사 내부의 수직적 권력 구조와 상당수 언론사가 자립적인 수익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공영방송과 국가기간통신사의 편집권과 편성권의 독립과 함께 건강한 내부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의 원칙과 사명에 대한 구성원들의 강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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