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화의 한 장면. 전남 순천으로 향하는 KTX에서 유희열이 묻는다. “KTX 승무원들 아직도 소송 중이에요?” 유시민이 답한다. “아직도 해결이 안 됐지.” 유시민 작가는 원래 이들이 코레일 자회사에 비정규직으로 고용됐다고 말한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언급된다. 대화는 비정규직 형태인 중간착취에서 유럽의 비정규직 대우로 흘러간다.
5분 남짓한 장면을 해고된 KTX 여승무원들이 SNS에 속속 공유했다. “알쓸신잡에서 우리 KTX 승무원 문제를 이야기하다니. 깜놀 그리고 감동. ㅜㅜ” “결국 패소했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까지 잘 설명해주셨을지….” 대한민국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던 KTX 여승무원 사건은 2015년 2월 대법원 파기환송, 11월 최종 패소 뒤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런 자신들 이야기가 인기 프로그램에 나왔으니 “자막까지 친절하게 넣어준” 제작진에게 감동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연한 반응에 가슴이 아려왔다.
최근 이들은 대법원 판결 이후 처음으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울역과 부산역에서 피켓 시위도 이어간다. 새 정부에서는 해결되리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이들의 1인시위를 기록해온 신선영 사진기자와 다음 스토리펀딩 'KTX 여승무원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에 참여하면서, 부끄럽게도 글로만 알던 싸움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4000일 넘는 시간을 견뎌온 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대법원이 면죄부를 준 덕분에, 코레일은 KTX 승무원이 구조상 할 수밖에 없는 안전업무를 ‘협조’라 부르며 간접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코레일 열차팀장과 자회사 승무원은 합동 훈련을 주기·의무적으로 하지 못한다. 자회사 승무원은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눈 가리고 아웅’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간접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코레일이 덜어낸 사용자 책임은 KTX를 타는 시민들이 매순간 위험이라는 형태로 감당한다.
코레일의 전신인 옛 철도청은 여승무원을 교육하며 ‘철도공사로 전환하면 공사 소속이 된다’고 했다. 이 사건은 국가와 공기업이 사회 초년생에게 행한 취업사기이기도 하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코레일 자회사로 복귀했다면 그녀들에게 오늘의 벼랑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이 버티고 싸우는 덕분에 우리는 한국사회가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하게 된다. 명찰은 녹슬고 유니폼 디자인도 변해버렸지만, 이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공동체가 확인하는 데서 변화는 시작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