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의 아나운서가 ‘그들은 안 된다’는 윗선의 지시로 방송에서 사라졌습니다. 또 다른 11명의 아나운서는 ‘방송이 하고 싶어’ MBC를 떠났습니다. … ‘온 에어’ 직전까지 내용을 확인하고, 문장을 바루어 또박또박 뉴스를 전하던 MBC아나운서는 사라졌습니다.”

지난 16일 MBC 아나운서 29명이 기명성명을 내고 김장겸 MBC사장과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사내에서 가장 성명을 내기 어려운 직군으로 분류되는 아나운서들까지 김 사장 퇴진투쟁을 선언한 장면은 현 경영진의 입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MBC아나운서들의 경영진 퇴진투쟁을 두고 한국아나운서연합회는 19일 “푸른색 수의를 입고 만면에 웃음을 띄던 손석희의 얼굴은 언론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며 “우리는 (아나운서들의) 정론직필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며 지지입장을 냈다.

MBC의 경우 사내에서 ‘김장겸 퇴진’ 샤우팅을 벌였다가 자택 대기발령을 받은 김민식PD로 인해 MBC 직원들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다. 임채원 MBC PD는 김PD를 응원하며 지난 19일 삭발 사진을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뒤 “김장겸 퇴진은 MBC구성원들에게 최고로 시급한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MBC직원들이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모습. ⓒMBC본부
▲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MBC직원들이 김장겸 사장 퇴진 및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모습. ⓒMBC본부
소위 ‘유배지’로 불리는 문화사업국, 신사업개발센터,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부당 전보자 33명은 19일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제 돌아가겠다. 우리의 자리를 되찾고 공정방송의 소임을 되찾겠다”고 선언한 뒤 “우리가 돌아가기 전에 그리고 해직자들이 돌아오기 전에 김장겸 사장부터 MBC를 떠나라”고 경고했다. 김 사장 퇴진 요구는 부산·여수·제주 등 지역MBC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 19일 KBS직원들은 고대영 KBS사장 퇴진을 위한 사내 피켓 시위에 돌입했다. 시위 첫날 고 사장은 평소보다 2시간 이른 새벽 6시30분 경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KBS 양대 노조와 10개 직능협회는 이날 낮 12시 KBS신관에서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 퇴진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발대식을 개최하고 투쟁 열기를 높였다. 이날 류지열 KBS PD협회장은 “지금 우리가 고대영을 내쫓느냐, 우리가 죽느냐는 기로에 서 있으니 시간을 길게 끌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자”고 말했다.

앞서 지난 14일 KBS구성원들은 ‘끝장투쟁’ 선포식을 가졌다. 이날 연대발언에 나섰던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암흑시대 9년을 이번 여름이 끝낼 것”이라고 말한 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공영방송 KBS와 MBC는 김장겸, 고대영 퇴진을 시작으로 뼈를 깎는 자성과 노력으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다시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 들어 언론적폐청산 요구에 따른 공영방송사 정상화 노력이 점차 동력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이명박정부 첫 언론장악사례였던 YTN의 경우 현재 사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김호성 총괄상무가 새 사장의 첫 과제를 해직자복직으로 내걸 만큼 해직자복직 여론은 새 정부 들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이 같은 YTN 상황은 MBC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MBC경영진은 ‘고립’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당장 MBC는 언론노조의 부역자명단 발표를 ‘블랙리스트’로 규정하며 자유한국당과의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은 20일 “전국언론노조가 문재인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에 사실상 동참하고 있다”고 주장한 뒤 “여당 의원들까지 가세해서 엄연히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사의 경영진을 사퇴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MBC의 경우 보도국 경력기자들의 ‘존재감’도 적폐청산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점이다. 2012년 파업 이후 경력채용 된 MBC의 한 기자는 “우리는 조직이 시키는 대로 가야 한다. 기회주의적 태도가 더 나쁘다. 끝까지 가야 한다. 그게 우리를 뽑은 사람들에 대한 도리다”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김장겸 사장은 절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언론계에선 서울중앙지검이 MBC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몇몇 이사와 관련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수사로 인해 여당 추천 이사들이 사퇴할 경우 이사회 구성이 현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바뀔 가능성도 있다. 최근 뉴스타파 보도로 불거진 2011년 KBS 도청 파문이 검찰수사로 이어져 고대영 사장의 거취에 영향을 줄지도 언론계의 관심사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도 방송정상화 흐름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여당 미방위원들은 방송 공정성, 해직언론인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20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간담회를 통해 공영방송 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일정을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4일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언론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 장악 진상규명 청문회’를 자유한국당에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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