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문 특보 발언에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로서 한미 동맹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동북아 외교 난맥상을 풀기 위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하며, 미국의 반응은 ‘한국 길들이기‘의 일환일 뿐 미국을 크게 우려하는 것은 과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문정인 특보의 발언에 대해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고 북한의 핵 능력은 고도화되고, 북미관계도 대결 구도로 가고 있는 답답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전문가로서 충분히 제시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문 교수가 맡았던 비상근 특보는 다른 대통령 자문위원회 소속 위원들 처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조언을 하는 역할 정도”라면서 문 특보의 발언으로 한미동맹에 악영향이 돌아왔다거나 우리의 외교 ‘속내’를 섣부르게 내비친 것이라는 식의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했다.

양 교수는 “외교 협상에서는 우리 측의 진정성을 담긴 안을 던질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것을 던져 반응을 볼 수도 있다. 비당국자가 안을 던질 수도 있고 물밑에서 안을 던질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이 있다. 이번에도 미국 반응을 탐색하는 것 정도의 전략이었는데 지나치게 한미 간에는 모든 것이 한 몸통이라고 바라보는 건 동맹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이) ‘한 국가’로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사진=노컷뉴스
▲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사진=노컷뉴스
미국에서 문정인 특보와 동행했던 김종대 정의당 의원도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내에선 ‘한미동맹에 균열을 초래한다’며 마녀사냥에 신이 났다”며 한미동맹에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국내 일각의 목소리에 개탄했다.

김 의원은 “정작 미국보다 국내에서 ‘미국 정책에 거스른다’며 온통 난리다.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말하면 소화가 안되는 분들”이라며 “문정인 선생 발언이 서울에서 논란이 되는 동안 정작 미국 친구들은 트럼프의 좌충우돌 성격 대문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피해가 갈까봐 걱정한다. 이게 미국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워싱턴이 서울에 싸늘하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하냐. 미국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맹세라도 할까”라고 꼬집었다.

홍현익 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문 특보의 발언은 한미관계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홍 연구위원은 “너무나 대미일변도로 가면 우리의 국익이 미국의 국익에 매몰된다”며 “한미관계 우호관계를 가지면서 중국과도 우호관계를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연구하고 있는데 그런 취지에서 나온 발언이고 행동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홍 연구위원은 “(문 특보가) 남북 대화 재개나 북한을 북핵 대화로 끌어들이고 해결방식 등을 얘기했는데 그걸 가지고 마치 한미 정상회담을 망치려는 행동이라는 듯이 얘기하는 것은 지나칠 뿐 아니라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민주평화국민연대도 20일 논평에서 “문정인 특보의 발언은 사드배치를 불러온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강경제재 일변도의 실패한 전략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한 해법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기초하면서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언론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에 진통이 예상된다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격노’ 반응을 보였다는 것에도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길들이기 위한 반응이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홍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화를 냈다고 하는 것은 왜 주한미군을 배치해서 한국을 도와주는데 한국에서는 왜 우리가 하는 정책들을 곧이곧대로 안 따르느냐 이래서 화를 낸 거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반은 한국을 무시하는 화”라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 역시 “미국이 언제부터 우리 측 특보 말을 그렇게 잘 들었냐”고 반박했다. 이어 “(미국 측) 당국자들은 주미대사관 등을 통해 핫라인으로 (한국 측 분위기를 이미) 얘기 듣지 않았겠냐.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한국 길들이기’식 반응이다. 그 길들이기에 우리 보수 우파는 너무 익숙해져있고, 이렇게 종속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히려 양 교수는 문 특보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진 이후 청와대의 반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양 교수는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얘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나온 의견 중 하나였고, 우리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므로 (문 특보의 제안을 포함해) 여러 안들을 함께 테이블에 올려 원칙과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수준에서 입장을 밝히면 된다. 굳이 공개적으로 (문 특보에게) 엄중 경고를 하는 것이 한미동맹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고 말했다.

양 교수는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가 현지시간 19일 기준 사망한 미국 대학생 웜비어씨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조전을 보내기로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례적이며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양 교수는 “(웜비어 사망사건은) 북한과 미국 모두 책임이 있는 사안”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억류자의 인권보호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고, 미국도 그동안 인도적 문제로 상당 기간 북한과 ‘물밑’ 접촉을 해왔는데 결국 자국민 보호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린 남북 간 대화를 풀어내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외교부 차원에서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답하는 수준이나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언급에 나서면 그에 대한 반응 정도 내놓는 것이 적절했던 조치가 아니었겠냐”고 밝혔다.

지난 16일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북한이 핵 미사일을 동결하면 한미의 전략무기와 한미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이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4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만약 북한이 핵 동결을 하고 핵 동결이 충분히 검증된다면 거기에 상응해서 한미간 군사훈련을 조정하고 축소한다든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던 것과 맥락이 같다.

이에 대해 국내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드 배치문제 등으로 대북 해법에 대해 미국과 온도차를 보여온 상황에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한미 간 관계가 더욱 냉각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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