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종류가 ‘외인사’로 바로 잡힌 날, 백남기투쟁본부(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투쟁본부)는 “사인 정정은 진상규명의 시작일 뿐”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고 백남기 농민의 유족은 20일 오전 10시 경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사망 종류가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된 사망진단서를 재발급받았다. 기존 병사 기재는 백씨가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직사살수로 사경을 헤매다 숨진 사실을 은폐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 사망종류가 외인사로 수정된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사망종류가 외인사로 수정된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백씨 유족이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백남기투쟁본부는 서울대병원장실이 있는 시계탑 앞에서 “진상규명의 첫 단추를 꿴 것”이라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나설 것임을 알렸다.

이날 기자회견 발언자 5명은 경찰의 양면적인 대응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백씨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세상 천지에 사과 받을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데 사과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저희는 경찰 사과 발표를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았다”면서 “사과를 하려면 이 사건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예의법도를 지켜달라.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막무가내로 사과하려는 건지, 이철성 경찰청장 개인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서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백씨는 “사과 내용이 더 가관이다. 박종철·이한열 열사를 언급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희생된 분이라 했는데, 경찰의 고문과 살인적인 시위진압 때문에 돌아간 사람”이라며 “(사과 내용에) 뭘 잘못했는지는 빠져있다. (아버지는) 살인적인 시위진압과 직사살수에 의해 돌아가셨다. 인정하고 참회하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경찰은 지난 16일 사과발표를 낸 것과 달리 백씨 유족이 청구한 민사소송 변론기일에서는 ‘살수차 운용지침’을 위반하지 않았고 백씨 사망 원인이 경찰의 직사살수 행위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찰은 내부 청문감사보고서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당일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은 살수차 현장지휘자, 운용자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해 청문감사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백씨 유족과 경찰 간 민사소송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 경찰에 청문감사보고서 제출을 명령했으나 경찰은 즉시 항고장을 제출하는 등 현재까지 명령에 불복하고 있다.

백남기투쟁본부에 따르면 경찰이 해명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지난해 9~10월 서울대병원을 법적 근거 없이 봉쇄하면서 부검을 시도했던, 강제부검 난동 경위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박 대표는 “당시 경찰은 영장 원본조차 공개하지 않았다”며 “왜 영장 원본을 공개하지 않았는지, 법원에 제출된 각종 문서들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검사는 무엇을 했는지, 경찰은 무엇을 했는지 그 진상이 낱낱이 조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20일 오전 백씨 유족이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백남기투쟁본부는 서울대병원장실이 있는 시계탑 앞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일 오전 백씨 유족이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백남기투쟁본부는 서울대병원장실이 있는 시계탑 앞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기자회견 사회를 본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고발된 신아무개, 최아무개, 한아무개 경찰들은 사건 후 다 승진했다.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은 퇴임 후 경찰공제회 상임이사로 갔다”면서 “강신명 전 경찰청장도 조만간 좋은 자리로 갈 텐데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 적폐 아닌가. 죄를 지어 처벌돼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승진하는 말도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서울대병원도 움직여라”

검찰 수사도 1년 7개월 여간 감감 무소식인 상태다. 백씨 유족은 사건 발생 4일 후인 2015년 11월18일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제4기동단 소속 단장, 경비계장, 중대장과 경찰관 2명 등 7명을 살인미수(예비적 죄명 업무상 과실치상) 및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의 공동정범으로 고소·고발했다.

백도라지씨는 “지난 3월 말 담당 검사는 면담자리에서 수사가 상당히 진척됐다고 말했지만 6월 중순이 지나가는 시점인데 아직도 기소가 안되고 있다”며 “사인이 정정된 마당에 더이상 미룰 필요가 없다. 살인범에 대한 기소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법률대리인단 소속 이정일 변호사는 “대리인단이 직사 살수 행위에 대한 동영상을 (검찰에) 제공하고, 민사소송을 통해 확보된 증거자료를 5차례 의견서를 통해 제공했고 검찰은 의무기록지를 압수해 갔음에도 명확히 판단을 하지 않은 채 600일을 허비했다”면서 “낱낱이, 철저히 조사해서 경찰 수뇌부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고 백남기 농민의 유족은 20일 오전 10시 경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사망 종류가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된 사망진단서를 재발급받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고 백남기 농민의 유족은 20일 오전 10시 경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사망 종류가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된 사망진단서를 재발급받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백씨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 대한 비판도 수차례 나왔다. 최상덕 서울대병원노조(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 분회장은 “병원을 둘러싼 의혹도 한두 개가 아니다. 당시 백남기 농민이 서울대 병원에 왔을 때 모든 의료진은 회생 가능성을 포기하고 수술을 포기했었다”며 “오병희 전 병원장은 무슨 일인지 혜화경찰서와 통화 후, 담당 교수도 아니고 전공의도 아닌 백선하 교수를 수술집도의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사망진단서 기재는 백 농민을 두 번 죽이게 하는 부검영장 시발점이 됐다”며 “배우는 학생들도 외인사라고 하는데 왜 병사라고 기재하게 됐는지, 서울대병원에서 조사해서 후속조치로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15일 서울대 ‘사망진단서 수정 발표’ 기자회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서창석 병원장은 20일 오전 유족과 김연수 진료부원장 간의 면담 자리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면담 자리엔 백씨 아내 박경숙씨, 백도라지씨를 비롯해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 법률대리인단 변호사 2인 등 5명이 있었다.

손 사무총장은 “유족 측이 ‘왜 사망진단서 수정 발표 때 나오시지 않았냐’ ‘사과하셔야 하지 않냐’고 말하자 서 병원장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자신은 처음부터 이 문제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해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면서 “이 얘기를 한 뒤 말없이 (면담자리에) 가만히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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