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청와대 인사 검증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의 경질을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가 지나친 면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인사 검증에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은 귀 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인사 검증 실패는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는 단초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사 참사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기준 교육부총리 후보자의 낙마다. 안 후보자 사퇴와도 여러모로 닮아 있다.

이 부총리는 임명 사흘 만에 사퇴했다. 이 부총리가 지명되자마자 그의 서울대 총장 시절 행적들이 도마에 올랐다. 그는 1998년 서울대 총장 시절 엘지화학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다 논란이 돼 2002년 총장직에서 사임한 바 있다.

이 같은 과거 행적들은 부총리로 지명되자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학내 문제로 총장실을 점거할 당시 2001년 한해만 판공비로 2억원 넘게 지출한 비밀문서가 공개됐고, 이 총장의 배우자는 총장 법인신용카드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나왔다. 여론은 악화됐다. 전교조와 교총 모두 이 부총리 사퇴를 요구했다. 교육부총리의 도덕성으로 볼 때 흠결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청와대는 “사람에게는 모두 흉이 있다. 단지 그게 결정적이냐의 문제이다. 병역문제나 이중국적 문제 등은 넓게 갈 필요가 있다”(정찬용 인사수석)고 해명했다. 서울대 총장 낙마 시 흠결에 대해서도 “혁신과 개혁을 하려다 힘들었던 것이지 다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논란은 이 부총리가 사퇴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 부총리의 개인적인 관계가 인사에 영향을 끼치면서 검증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기준 부총리는 비슷한 시기에 각각 연세대와 서울대 총장을 지내면서 친분을 유지한 것 뿐 아니라 학부생일 때 전국공과대학 화공과 학생연합회를 결성해 함께 활동해 40여 년 동안 우정을 이어온 것으로 나왔다.

청와대는 정상적인 검증 시스템을 통해 인사를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인사수석을 건네뛰고 비서실장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은 계속 제기됐다. 결국 청와대는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여론이 악화되자 인사추천위원들이 모두 사퇴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이번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 사퇴는 개인적인 사생활로 인한 도덕성 문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탓이 크다. 안경환 후보자는 국가인권위원장 시절 관련 문제를 소명했다고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이 같은 문제를 거르지 못하고 결국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서울대 사제지간이며 인권위원회에서 위원장과 위원으로 관계를 맺었던 조국 민정수석 책임론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부총리가 사퇴할 당시와 비슷하다.

다만, 안 후보자의 경우 개인 사생활 영역에 더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점, 혼인무효 소송 판결문이 공개된 경위가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보는 해석도 존재한다. 조국 수석 책임론도 과도한 정치 공세라는 반발도 거세다.

그럼에도 법무부 장관 자리가 문재인 정부 개혁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수십년 된 개인사까지 파악한 검증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은 유효하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언론 기고글에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검찰과 법무부 개혁을 비롯한 적폐청산에 대한 야당과 언론 카르텔의 저항이 불거진 것인가? 여권 안팎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좀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인식이 확산된다면 그게 바로 위기다. 위기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하기 마련”이라며 “‘좋은 사람을 낙마시킨 정도의 건이 아니다’ ‘본인이 말 안하는데 어떻게 알겠나’ ‘시스템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아니 백번을 양보해 밖으론 그렇게 말할 순 있을지 모르겠다만, 인식한다면 생각보다 위기가 빠르게 닥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