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정체불명의 남성 2명이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에서 한창 진행 중인 농업용수 송수관로 매설 공사 현장에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을 파주시민신문 기자라고 소개하고 다짜고짜 “공사 현장에 강판넬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해당 공사는 농어촌공사 파주지사가 H토건에 발주한 것이다. H토건 현장소장은 이들의 발언에 겁을 먹었다.

이들은 발주처인 농어촌공사 파주지사 사무실까지 찾아가 담당직원에게 자신을 신문기자라고 소개하면서 H토건이 판넬을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하고 있어 문제가 있으니 설계도면 등 관련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H토건 대표는 공사현장에 문제가 없었지만 공사현장과 발주처까지 찾아와 문제가 있다고 언론보도를 할 것처럼 하자 겁을 먹고 공사현장에 찾아왔던 파주시민의신문 L씨(발행인 겸 기자)를 만났다. H토건 대표는 할 수 없이 “더 이상 공사현장을 문제삼지 말아 달라. 광고비를 지급하면 되겠느냐”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L씨는 신문사 명의의 계좌를 알려줬고 H토건 대표는 100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신문기자들은 H토건을 놔주지 않았다. 파주시민신문 K씨(대표 겸 기자)는 H토건 대표가 L씨에게 100만원을 송금한 사실을 전해 듣고 “우리가 이 돈 받으려고 그렇게 난리를 친 줄 아느냐”고 화를 낸 뒤 또다시 공사 현장과 농어촌 파주지사 사무실에 찾아가 언론보도를 할 것처럼 행동했다. 결국 H토건 측은 신문사 사무실을 다시 찾아가 광고를 약속했고 신문사 측이 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해 550만원을 송금할 수밖에 없었다.

파주시민신문 기자들은 또다른 ‘먹잇감’을 찾았다. 이들은 2012년 5월 파주시에서 발주받아 B건설 주식회사가 시공하고 있는 관로 공사현장을 찾아가 “상수도관 매설에 재생모래를 썼다. 매설한 이후 땅을 다져줘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사진을 촬영했다.

B건설 주식회사도 H토건과 마찬가지로 언론보도로 인해 공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해 신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B건설 주식회사는 자료를 보여주며 공사현장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신문사 K씨는 “(자료를) 볼 필요도 없으니 나가라”고 화를 냈고, L씨는 B건설 주식회사에서 나온 사람을 데리고 식당으로 이동해 “광고비를 지급하면 보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B건설 주식회사는 해당 계좌로 330만원을 송금했다.

▲ @권범철 화백
▲ @권범철 화백

K씨는 B건설 주식회사에 또다시 연락해 이번에는 광고비가 아닌 찬조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과외교사를 초청한 행사를 벌이는데 돈이 필요하다며 계좌번호를 알려줬고 B건설 주식회사 측은 울며겨자먹기로 550만원을 송금했다.

이들은 처음엔 공사현장 문제점을 지적하며 접근해 돈을 뜯어냈지만 대범하게 개인적인 일에까지 돈을 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른다. L씨는 B건설 주식회사 측에 “아내가 외국인인데 허드렛일을 하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다”며 개인 명의의 계좌번호를 주고 돈을 달라고 요구해 200만원을 송금받았다.

의정부지방법원 제4형사부는 지난 15일 K씨와 L씨에 대해 공동공갈혐의 등으로 징역 8월과 징역 1년에 각각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항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지역 언론사가 언론보도를 빙자해 광고비와 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행태에 철퇴를 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지역의 언론사들이 광고비와 후원비를 받고 운영하지만 부적절한 과정을 통해 받았다면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당 판결은 지방 언론의 관행적 행태를 유죄로 인정한 것이어서 전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로부터 발주를 받아 관급공사를 벌이는 건설사들은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언론에 보도가 되면 문제가 돼 향후 발주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으로 스스로 언론사를 찾아가 돈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이 어려운 지역 언론사들이 이 같은 구조를 악용해 광고비와 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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