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고 황유미씨가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숨을 거둔 지 10년이 지났다. 피해자들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배제없는 보상과 진실한 사과를 요구하며 지금까지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6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 인권지킴이)’이 제작한 “클린룸 이야기” 상영회가 열린다. 삼성 반도체, 하이닉스 반도체, 엘지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첨단 전자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 뇌종양 등 직업병 피해를 입은 20여명의 젊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소중한 증언이 담겼다. 미디어오늘은 상영회를 앞 두고 제작에 함께 한 이들이 보내 온 글을 세 차례에 나눠 싣는다.

※이 글은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에 공동게재됩니다.

매일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쓰는 사람은 수십억이지만, 전화기나 텔레비전을 바라보면서 노동자들을 병들게 하는 독성물질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전자제품 제조에는 천 가지 넘는 화학물질이 사용되며 상당수는 유해하다. 전자산업은 아시아에서 급속히 성장해왔으며 그 노동력은 주로 여성이었다. 그 결과, 이 ‘화학물질 집약 산업’은 인간에게 타격을 입혀왔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건강으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 방진복을 입은 여성노동자. 사진=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 인권지킴이
▲ 방진복을 입은 여성 노동자. 사진=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 인권지킴이

한혜경씨는 말을 하거나 걸음을 걷기가 힘들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LCD 공장에서 유기용제와 땜납을 취급했던 이십대 시절, 한혜경씨는 어떠한 훈련도 정보도 보호도 받지 못했다. 뇌종양으로 근육 조절과 발성 기능을 잃었고 지금은 먹거나 걷거나 화장실을 가는 일조차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혜경씨는 “가끔 울고 싶지만, 뇌수술 때문에 눈물이 생기질 않아요”라고 말하곤 한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전자산업에서 일한 결과 그녀처럼 중대 질환에 걸리거나 죽어간 사람들이 수백 명이나 있다.

전자제품 제조 과정에서 독성물질 노출은 단지 한국의 노동자 안전 문제일 뿐 아니라 ‘국제 화학물질 관리 전략’이라는 유엔 협약에서 주목하고 있는 국제 이슈이기도 하다. 2009년에 100여 국의 정부들(한국 포함)은 전기전자제품의 생산, 사용, 폐기 과정의 유해물질들이 인체 건강과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유엔에서는 전자산업 노동자와 소비자, 공장이나 폐기장 주변의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하여 유해물질에 대한 분명한 대책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 결과 유해물질 사용의 저감, 예방 대책의 시행, 노동자 알 권리 보장,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노출한계 설정,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 효과적인 책임 및 보상 시스템에 대한 권고가 마련되었다. 유엔의 이 권고를 기준 삼아 한국 기업과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대책들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미국공중보건학회(APHA)도 전자산업 내 화학물질로 인한 인체 건강 위협을 주목했다. 2012년 이 학회는 전자산업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특히 아시아에서 독성물질의 사용과 건강 훼손이 증가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에서 학회는 기업들이 “생산기술과 설비를 하청업체로 이전하기 전에 해당 업체들이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하며, 이후 생산과정에서도 하청업체들이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건강을 확실히 보호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와 지역사회 보호를 위한 공중보건지침을 따르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 2016년, 한국에 있는 삼성과 LG의 하청업체에서는 에탄올 대신 메탄올을 사용하고 기초적인 보호구조차 지급하지 않아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실명에 이르기도 했다. 이 피해자들 중 김영신씨는 이번 달에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휴대폰을 만들다가 저는 시력을 잃고 뇌손상을 겪었습니다… 기업의 이윤보다 우리의 생명이 더 소중합니다.”

▲ 6월 20일 화요일 오후2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lt;클린룸이야기&gt;상영회가 열린다.
▲ 6월 20일 화요일 오후2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클린룸이야기' 상영회가 열린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전자산업 문제를 보고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5년에는 유해물질에 대한 유엔특별보고관 바스쿠트 툰작씨가 한국의 실태를 조사하러 방문했다. 바스쿠트 툰작 보고관은 2016년 제33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한국 전자산업이 림프종, 악성 뇌종양,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생식기능 이상 등의 중증 질환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썼다. 이 보고서에서는 특히 이십 대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삼성은 생산 과정에 어떤 유해물질도 사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유엔 당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유엔 보고서는 “전자제품 제조에 유해물질이 사용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삼성의 이런 주장이 허위임을 폭로했다. 또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청구인이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무거운 부담”때문에 병든 노동자들이 산재 보상을 받기도 어려운 데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사실을 부정하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2016년 추석 직전, ‘유엔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작업환경과 질병 사이에는 아무런 과학적 연관성이 없으며 삼성에서 근무한 것은 질병과 무관하다’라는 기사들이 다수 보도된 것을 기억하는가. 유엔특별보고관은 이런 언론 보도가 “진실과 동떨어져 있다”라며 “독성물질의 위협으로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전자산업과 한국 정부가 아직 하지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있다”라고 바로잡았다.

전 세계 전자산업 생산 현장에서 일하다가 중병에 걸리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은 무수히 많지만, 컴퓨터와 휴대전화, 텔레비전, 기타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 피해자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이펜(IPEN, 백여 개 국가에서 독성물질 없는 미래를 위해 일하는 공익단체들의 네트워크)이 반올림과 협력하여 “클린룸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실로 공중보건의 위기이며, 우리는 여기에 사람의 얼굴을 그려 넣고자 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나 가족을 떠나보낸 부모와 배우자들 21명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다. 그 중에는 전자산업 독성물질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헌신해온 한혜경씨의 모습도 있다. 한혜경씨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삼성이 제게 한 짓을 보세요. 앞으로도 계속 이러도록 내버려두면 안돼요. 앞으로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번역 :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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