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대통령 독대’를 둘러싸고 SK그룹 측이 ‘그룹 현안 청탁’ 정황을 인정했다. 반면 삼성은 재판 초기부터 ‘어떠한 부정청탁도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SK측 증언이 ‘삼성 뇌물 재판’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관심이 주목된다.

김창근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전 대통령 박근혜씨 뇌물 재판에서 “K스포츠재단의 89억원 추가 지원 요구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건의한 기업 현안과 관련이 있다고 보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김 의장은 검찰이 “최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건의할 현안은 SKT-CJ헬로비전 합병, 워커힐 면세점 특허 재취득 문제, 수감 중인 최재원 수석부회장 조기석방 등으로 보이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최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이 같은 주요현안을 건의한 사실은 명백한 것 같다”는 검찰 측 확인 질문에도 “네”라고 답했다.

김 의장은 2016년 2월16일 독대 당시 오고 간 대화 내용도 확인했다. 그는 검찰이 “그룹 건의사항을 들은 박 전 대통령이 ‘헬로비전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신속히 처리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고 ‘면세점에 대해서는 배석한 안종범 수석이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지만, 최재원 수석부회장에 대해서는 ‘어떤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맞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확인했다.

“독대 자리 청취자 있었느냐” 부인하는 삼성, SK 증언 영향 미칠까

SK그룹 임원의 ‘청탁 정황 인정’ 발언이 주목되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2016년 2월 대통령을 독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부정청탁 사실을 전면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정 417호에서 김 의장 신문이 진행되는 시각, 삼성 측 변호인단은 소법정 510호에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간 독대 시 어떤 대가관계나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SK 측의 증언은 특검의 공소사실을 강화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대통령 말씀자료 등의 증거 능력이 확인되고 이 부회장 진술의 신빙성이 약화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다.

특검 측은 안 전 수석 수첩과 대통령 말씀자료 등 ‘간접 증거’를 통해 이 부회장의 부정청탁 사안을 특정하고 있다. 이 부회장 독대 당시 작성된 대통령 말씀자료엔 ‘삼성그룹 지배구조 조속히 안정’, ‘기업에 대한 이해도 높은 현 정부 임기 내에 삼성그룹 경영권 문제 해결 희망’ 등이 명시돼있다.

2015년 7월10일 안 전 수석 수첩에는 ‘엘리엇 / 순환출자해소 / 정관개정필요’가, 7월27일엔 ‘삼성-엘리어트 대책 – M&A 활성화 전개 -소액주주권익 -Global Standard ->대책 지속 강구’라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이재용 부회장과 대통령 간 3차 독대가 있었던 2016년 2월15일 경엔 ‘외국투자기업 세제혜택’, ‘싱가폴, 아일랜드 글로벌 제약회사 유치’, ‘SS 운영’, ‘환경규제 多’, ‘규제 리스트 달라’, ‘삼성 리스트 주면 환경부 풀어야’ 등의 내용이 기재돼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와 관계된 민원 사항이 총망라된 식으로 적혀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대통령 독대 당시 이 같은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 측은 특검에게 ‘명시적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지난 4월7일 제1회 공판기일에 “특검의 공소장엔 추측과 논리적 비약이 가득하다”면서 “대통령과 피고인 이재용은 승계작업을 말한 사실도 없고 도움을 바라거나 주겠다고 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그 자리엔 다른 청취자도 없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대통령 말씀자료 등에 대해 삼성 측 변호인단은 “업무수첩엔 단어만 기재돼있다. 심지어 누가 말했는지 분간할 수 없고 진정한 의미를 분간하기란 더욱 어렵다”면서 “대통령 말씀자료도 독대에서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다. 어떤 증거로도 대통령과 피고인 이재용 사이 부정청탁과 대가관계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검은 안 전 수석 수첩이나 대통령 말씀자료에 기재된 ‘명시적 청탁’ 사안 외에도 대통령이 삼성그룹의 현안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묵시적 청탁’도 성립한다고 밝혔다.

특검은 이를 위해 청와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합병으로 인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을 관계기관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보고받고 관여한 정황을 입증하고 있다. 특검이 수사 결과 밝혀 낸 삼성그룹 미래전략실(현재 해체)의 청와대 및 유관기관 관계자에 대한 로비 정황도 묵시적 청탁의 근거다.

삼성 측은 지난 공판 기일 동안 거듭 “대통령이나 안종범 전 수석이 어떠한 지시나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게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특검 측 ‘묵시적 청탁관계’ 주장에 대해 삼성 측은 “특검은 현안에 대한 청와대·대통령의 인식만 갖고 부정청탁이나 대가관계가 합의된다고 하는데 결코 그런 취지가 아니”라면서 “해당 업무와 현안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대가관계가 성립하고 묵시적 청탁도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은 지난 4월28일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묵시적 청탁 주장에 대해 “이 사건 합병과 관련해 대통령과 피고인 이재용 간의 공통의 이해관계가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 3번의 독대에서 언제 성립했단 건지, 삼성의 누구와 언제 어디서 만나 성립했다는 건지 특검은 전혀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검팀 박주성 검사는 이에 “(이곳은) 문학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고, 가서 직접 말을 했나 안했나 이것만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부정청탁 요건에 묵시적 청탁은 분명히 포함되는 개념”이라면서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부터 (합병 관련 동향이) 모니터링 됐고 청와대에 보고됐다. 현안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상호 인식, 상호 이해가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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