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위대하다고들 하지만, 정작 엄마들은 스스로의 ‘위대한’ 삶이 너무 버거웠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육아의 책임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통념은 엄마들을 구속하는 굴레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성장하면서 쌓아왔던 인간관계도 꿈을 향한 미래 계획도, 사회적 자아는 내려놓고 ‘엄마’라는 자아를 자의반 타의반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을 직면하자 엄마들은 생각했다. 왜 ‘엄마’만 고된 돌봄 노동을 오롯이 책임져야 할까.

지난 11일 창립 선언을 한 ‘정치하는엄마들’의 공동대표 이고은씨(37)가 엄마들도 ‘정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엄마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내놓고 엄마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5일 동요가 흘러나오는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내 키즈카페에서 이고은 공동대표를 만났다. 각각 세살과 다섯살 바기인 이 대표의 딸과 아들은 인터뷰 내내 엄마의 주변에서 블록을 함께 쌓아달라고 내밀었으며 공을 던져주길 바랬고, 코를 흘려 엄마가 닦아줘야 했으며, 어디선가 넘어져 울고 있었다. 인터뷰와 ‘돌봄노동’은 병행됐다.

이 대표는 10년 간 경향신문 기자로 살았다. 지난해 회사를 그만 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포착하고 기사로 알리는 일을 했던 전직 기자출신 엄마도 ‘독박육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의반 타의반 내린 결정이었다. 시어머니와 친어머니 모두 지방에 계시기에 자신의 육아 ‘노동’을 나눠 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이비시터는 못 미더웠다. 100세 시대에, 어차피 직장에 계속 남아있는다고 해서 남은 인생을 직장이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를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로 하는 두 명의 예쁜 존재가 있었다.

▲ 이고은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사진제공=이고은 대표
▲ 이고은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사진제공=이고은 대표
10년차 기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자신의, 엄마로서의 삶은 사회적 약자였다. 이 대표도 “작년까지는 많이 우울했다”고 말했다. 경력단절 여성으로서 사회적 자아를 모두 잃는 것 같았다. 10년 간 기자로서 글쓰기를 업으로 해왔던 덕분에 이 대표는 지난해 육아문제에 대한 사회구조적 시선을 담아 ‘요즘 엄마들’이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다. 책을 통해 출산과 양육 과정에서 겪은 여러 에피소드들과 사회적 부조리를 지적하는 시선을 그려냈지만 여기서 그칠 수는 없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이라는 모임을 알게 되고 대표까지 맡게 된 계기였다.

지난 4월22일은 ‘정치하는엄마들’의 첫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계기는 장하나 전 국회의원이 한겨레에 연재하는 ‘엄마정치’라는 칼럼이었다. 첫 칼럼에서 장 전 의원은 “정치에 여성(엄마)들이 나서야만 독박육아를 끝장내고 평등하고 행복한 가족공동체를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울한 여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엄마들이 모였다.

아이를 낳을 때만 ‘애국한다’고 격려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보면 엄마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마음놓고 육아휴직도 못 쓰고 믿을만한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기는 일도 어렵다. 노동시간이 길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도 어렵고, 결국 전업주부가 되어 독박육아를 한다. 

‘경단녀’, ‘맘충’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엄마들의 삶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필요한 육아정보는 상업적인 정보에 매몰돼있고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어도 미세먼지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 이날 엄마들은 하소연을 하며 눈물짓다가도,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 없다는 데에 공감했다. ‘엄마정치’의 첫 걸음이었다.

▲ '정치하는엄마들'의 창립총회 사진. 출처=정치하는엄마들 페이스북 페이지.
▲ '정치하는엄마들'의 창립총회 사진. 출처=정치하는엄마들 페이스북 페이지.
‘정치하는엄마들’은 돌봄노동 당사자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모든 엄마가 차별받지 않는 성평등 사회를 꿈꾼다. 또한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복지사회,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비폭력 사회, 미래 세대의 권리를 옹호하는 생태사회 건설을 추구한다. 반드시 생물학적인 의미의 엄마만 이 모임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사회적 모성’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아이를 출산한 여성에게만 ‘모성’이 있다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각 단위에서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모든 형태의 돌봄 노동 주체,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회원들과 정관을 만들기 위해 난상토론을 벌이던 도중 나왔다. 이 대표는 “다양한 형태의 돌봄노동 주체들이 아이를 사회에서 건강하게 키워내고자 하지만 그러한 목적을 저해하는 여러 사회구조적 요인이 있고, 이를 타파해가자는 데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온라인 소통에 익숙한 7~80년대 생 엄마들은 페이스북과 텔레그램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얘기를 나눴다. 조직은 점점 모습을 갖춰갔다. 각자 자신만의 전문분야가 있는 엄마들의 ‘재능기부’로 조직이 운영됐다. 기자 출신 이 대표는 대표직과 대외홍보담당을 맡아 보도자료를 썼다. 장하나 전 의원도 공동대표직과 법·정책연구를 맡았다. 노무사 출신 엄마는 노동분야 연구에 매진했다. 로고를 만들고 플래카드를 제작하고, 심지어 실무적인 일들도 어디선가 ‘나 이거 잘한다’며 손을 들며 나타나는 엄마들이 있었다. 이 대표는 ‘엄벤저스(엄마+어벤저스)’라고 불렀다.

‘독박육아’ 문제는 제도와 정치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대표는 “공적 제도만으로는 모든 걸 해결하지 못한다는 건 안다. 다만 사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모든 엄마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모든 엄마들이 최선을 다하는데도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더러 최소한 양육을 돕기 위한 국가 제도라는 이름으로 공적 테이블에 올라오는 제도들은 정작 엄마들의 눈으로 보면 현실적이지 않다. 당사자의 시선에서 좀 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핵심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했던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 발언을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모이는, 사립유치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사에서 얘기한 것"이라며 "엄마들이 연대하고 엄마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는 단체가 있었으면 안철수 당시 후보가 그런 장소에서 그렇게 말을 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엄마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부모 당사자가 정책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당장 정당을 직접 만들거나 기성 정치권과의 연계작업을 하고 있지는 않다. 국회 토론회에서 엄마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패널로 참여하거나 스토리펀딩을 통해 엄마들의 목소리를 조금씩 알려나가는 작업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정치하는엄마들’이 시급한 현안으로 꼽고 있는 것을 보육과 노동문제로 꼽았다. 보육기관을 확충하고 전체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여 엄마들 뿐만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두가 일찍 퇴근하고 야근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아직 창립 선언만 한 단계다. 회원을 모으고 조직 운영에 필요한 행정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권리회원은 34명이고 참여회원은 5명이다. 아빠 회원도 있다.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politicalmamas) 가입회원 수는 153명이지만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앞으로 ‘모두가 함께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엄마가 되자’는 취지의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아갈 구체적인 방향과 사업 계획을 수립해 나갈 계획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