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위원장 정동영)가 발의를 채택한 법안 50%가 한 사람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위 설치목적과 달리 일자리 창출보다는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일방적인 입장을 수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래일자리특위는 지난해 4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제안으로 만든 특별위원회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부터 청취한 후 법안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문제는 일자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법안이 많은 데다 규제완화 입장을 가진 전문가가 제안한 아이디어 채택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이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미래일자리특위는 지난 13일 논의 대상 27개 검토법안 중 12개 법안의 발의를 채택했는데, 이 중 6개 법안의 ‘아이디어 제안자’가 구태언 테크앤로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다.

▲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가 발의를 채택한 법안. 아이디어 제안자는 대외적으로 공표되지 않았다.
▲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가 발의를 채택한 법안. 아이디어 제안자는 대외적으로 공표되지 않았다.

구태언 변호사의 법안은 △신용카드 활용 핀테크 서비스 도입을 위한 신용카드 결제범위 확대 △신용카드 모집인업무 관련 일사 전속주의 규제 폐지 △신용카드 터치 본인확인서비스 이중규제 개선 △금융사기 가해자의 계좌정보를 은행에 제공할 수 있는 근거 마련 △지방자치단체의 실정에 따라 자율주행차 허용범위확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민박업 허용 등이다.

구태언 변호사는 개인정보 규제 완화를 주장해온 전문가로 박근혜 정부 추천 개인정보보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 CPO포럼 부회장,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CPO포럼은 기업, 유관기관, 학계 등이 모여 개인정보보호 관련 정책수립을 위한 의견 전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SK, KT, KB국민카드, 현대자동차,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이 회원사로 속해 있다.

구태언 변호사가 아이디어를 낸 것 중 ‘금융사기 가해자의 계좌정보를 은행에 제공할 수 있는 근거 마련’ 법안은 담당부처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사실관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경우 선량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며 ‘신중검토’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지만 미래일자리특위는 발의를 결정했다.

개인정보 규제완화 입장을 지지해온 또 다른 전문가인 이광형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이 아이디어를 낸 법안도 2건 채택됐다.

미채택 법안 15건 중 3건이 이광형 원장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개인정보 범위 축소, 개인정보 사전규제방식을 사후규제로 전환, 개인정보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 축소 등의 내용으로 개인정보보호 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담당 부처 역시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문제는 미채택법안은 ‘파기’ 결정된 게 아니라 ‘보류법안’으로 분류돼 다시 발의가 추진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아이디어 제안자 중 노동계 전문가로 김성혁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이 △납품단가 연동제 △지주회사에 대해 자회사만 인정하고 손자회사 금지 △법정 근로시간 35시간 도입 법안을 제안했으나 모두 ‘미채택’됐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미래일자리특위 관계자는 “산업분야별, 단체별로 개선사항을 취합해 논의했고 이견이 없는 법안은 우선 채택했다”면서 “(채택된) 모든 법안이 바로 발의되는 건 아니고, 해당 상임위에 발의를 건의하거나 특위 소속 의원들이 발의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규제완화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의 요구가 대거 수용되자 시민사회단체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김보라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고문 변호사는 “미래일자리특위라고 이름을 지어놓고선 일자리와 무관한 법안들을 채택했다. 반대의견을 내는 단체의 의견 역시 수렴하지 않고 공개적인 논의절차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과적으로 금융사 등 특정 기업의 합법적 ‘로비창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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