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한 교수가 독일 유학 시절 북한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혐의로 당시 안기부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1994년 7월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안보불안심리가 퍼지던 시점이었다.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은 1994년 7월18일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주사파 뒤엔 사노맹, 사노맹 뒤에는 북한의 사노청, 사노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연일 ‘색깔론’에 근거한 발언을 쏟아내던 박 총장은 이후 8월 “북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대학교수가 된 사례가 있다”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불안정한 분위기에 박홍 총장의 발언이 기폭제가 되어 대한민국에는 주사파 색출 광풍이 일었다.

그러나 정작 교수들은 혐의가 없어 금새 풀려났고, 검찰도 같은 해 8월 박홍 총장의 발언을 “수사 단서로 삼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수사를 지속해 같은 해 10월 혐의가 있는 인물들을 연행했다. 

당시 연행됐던 인물 중 한 명이자 ‘북한장학금’ 교수 오보의 주인공은 2017년 현재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다. 

▲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지명자.
▲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지명자.

북한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연행돼 32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으나 정 교수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1994년 10월10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 교수는 긴급 연행된 이후 20여시간 동안 수사관의 심문을 받았는데, 북한 공작지도원으로 지목된 이와 만나는 것을 누가 봤다더라 정도의 ‘넘겨짚기’식 신문이 전부였다.

1994년 10월10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현백 교수는 안기부의 수사보다도 언론 보도에 더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기부에 연행된 32시간의 악몽보다도 ‘북한 장학금 교수’라고 매도한 일부 언론의 보도에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 공작지도원이라는 김용무(57)씨와 독일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밤 중에 연행조사를 받고, 언론은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장학재단의 장학금으로 유학한 나를 ‘북한 장학금 교수’라고 몰아붙였던 상황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침 방송 뉴스에 내가 독일유학 때 북한 장학금을 받은 혐의로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다른 일부 조간신문도 ‘북한 장학금’ 교수를 연행조사하고 있다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뽑았습니다. 어머니가 방송사에 항의하자 방송사에서는 안기부 자료를 보고 보도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더군요”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본 한겨레 1994년10월10일자 보도 갈무리.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본 한겨레 1994년10월10일자 보도 갈무리.
당시 정현백 교수가 SBS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청구 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SBS는 1994년 10월6일 ‘北장학금 교수조사 구속’이라는 제목으로 ‘혐의 밀입북 등 친북한 활동 여부, 북한장학금 수령여부’라는 자막과 함께 박홍 총장의 1994년 7월19일 기자회견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비췄다. 또한 그 다음날에도 SBS 8시뉴스는 ‘부부간첩자수’라는 제목으로 ‘간첩활동내역 대상 포섭후 입북기도’라는 자막을 포함했다.

‘북한 장학금 교수’ 보도사건은 언론이 사실확인 없이 매카시즘에 기반한 보도를 쏟아낸 ‘대참사’로 기록됐다. 해당 보도를 했던 언론사는 KBS와 SBS MBC 등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해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이었다.

SBS에 대한 정정보도소송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당원의 서울지방검찰 검사장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에 의하면 신청인(정현백 교수)이 안기부에 의한 긴급구속 상태에서 독일 유학 중 북한공작원인 김용무와 접촉하였는지에 관하여 조사받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북한으로부터 장학금 수령, 친북한 활동여부에 관하여는 조사받았음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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