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면서 그가 평소 생각했던 검찰 개혁 등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 후보자는 특히 인권위원장을 맡아 사회 쟁점이 되는 문제를 다뤄왔다는 점에서 진보적 의제를 화두에 올려 관철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난 2012년 10년 동안 쓴 글을 묶은 ‘시대유감’은 안 후보자가 사회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생각이 잘 정리돼 있다.

안 후보자는 검찰 개혁과 연관돼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안 후보자는 책에서 “고위공직자의 비리 수사권을 검찰에서 분리하여 다른 기관에 주려는 시도도 있다”면서 “검찰은 정권의 시녀가 되기 십상이기에 보다 독립된 기관에 권한을 준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러나 조직의 원리로 보나 현실적 효용으로 보나 합당한 개혁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안 후보자가 장관 지명을 받고 기자들과 만나 “일관되게 공수처 얘기가 나온 게 아니라 어떤 때는 공수처가 바람직하다고 하거나 그렇지 않을 때 있었다”며 “요즘은 사회적 논의가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이 점은 법무부가 하는 게 아니라 법무부가 관심을 갖지만 국회와 국민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안 후보자는 책에서 “정치검찰을 만든 것은 검찰 자신 못지않게 역대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나라에는 반드시 권력자가 두려워하는 기관이 있어야만 한다”며 “현재로서는 검찰 이외에 다른 기관을 생각하기 어렵다. 고위공직자나 대통령 측근의 비리 수사권을 검찰 이외의 별도 기관에 준다면 제대로 수사도 되지 않을 것이며 더욱더 정치적 영향을 받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자는 공수처 신설보다는 검찰권을 축소하는 방안을 개혁 방향으로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안 후보자는 같은 책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던 과거의 검찰을 생각하면 검찰권을 축소하는 것이 민주세상에 합당한 개혁”이라며 “우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 검찰 입장에서는 업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안 후보자는 ‘검찰과 경찰, 누가 더 국민에게 위협인가’라는 글에서 “모든 권력은 남용될 소지를 가진다. 경찰이나 검찰이나 매한가지다. 둘 중에 더 사랑스러운 기관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국민이 이들의 권력남용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가”라며 “경찰의 비리나 인권침해가 국민의 눈에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그 이유는 숫자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감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검찰수사는 장막 속, 밀실에서 주도된다”고 밝혔다.

안 후보자는 “제한된 인력을 감안하면 검찰사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가벼운 사건은 경찰의 몫으로 넘겨주는 것이 옳다”면서 “사건의 경중과 성격에 따라 두 기관이 수사권을 나누어 갖고 권력의 남용을 쉽게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에게 유익할까. 아니면 지금처럼 통제받지 않은 절대권력을 검찰의 특권으로 인정하는 것이 편할까”라고 반문했다. 사실상 검찰권을 축소하고 일부 수사권을 경찰이 갖는 등 검찰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 후보자는 인권위원장 시절 다뤘던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선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안 후보자는 “인권은 정치와 이념을 초월한 인류 보편적 가치다. 그러나 흔히 정치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 인권이기도 하다. 우리사회에서도 북한인권 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거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북녘정권은 사악한 무리, 그래서 궤멸되어야 하는 악귀다”라며 “정치나 교리보다 본질적인 것이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일 것이다. 북한인민의 정치적 신체적 자유권이 짓밟힌다고 분개하기 이전에 그들의 생존권을 챙겨주어야 한다. 식량의 인도적 지원이란 일체의 꼬리를 달지 말고, 아무런 조건 없이 식량을 건네주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인권위원장 임기 도중 사퇴했던 안 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일침을 놓기도 했다. 안 후보자는 임기 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까지 잃었던 범죄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국제사회의 조롱을 감수한 국민이었다”면서 “그런 국민이 대통령이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슬픈 일이다. 자리를 물러나서도 편치 못할 것 같다. 비비케이, 재직 중에 묻어두었던 해묵은 의혹도 다시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비극을 국민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 법 절차가 아니라 진심어린 고백과 회개를 바랄 뿐”이라고 꼬집었다.

안 후보자는 박근혜가 대선에 출마한 시기에 논란이 됐던 정수장학회 강탈 사건과 관련해서 “부산일보와 정수장학회 문제,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씨가 반드시 털고 가야할 일”이라며 “아버지의 범죄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불과 7년 전까지도 장물을 관리하던 장물아비가 아니었던가”라고 비난했다.

안 후보자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6년 2월 사실의 보도와 의견의 표명을 구분해 사실문제에 한하여 반론청구가 인정되며 의견표명이나 비평은 반론청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에 대해 안 후보자는 “정부나 공무원의 공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모든 민주시민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인의 경우보다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힘들다는 것이 여러 나라의 법리”라며 “국정홍보처는 문자 그대로 정부의 업적을 능동적으로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비판에 대응하는 데 과도한 정력을 낭비하지 말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취재진에 소감을 밝히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취재진에 소감을 밝히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안 후보자는 지난해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권력관계 속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분석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 책을 보면 데이트 폭력 문제, 성소수자 문제, 동성혼 합법화 등 민감한 사회 쟁점을 폭넓게 다루며 생각을 명쾌히 밝히면서도 여성관에 우려스러운 대목이 눈에 띈다.

안 후보자는 한국사회에서 강간죄 처벌에 대해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강간당한 여성을 감싸주고 약탈당한 권리를 보상해주키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벌한다. ‘강간당한 죄’가 있노라고”라며 “성적 지배권을 극도로 누리던 남자는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기 힘들다.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농담도 자칫 잘못하면 성희롱이 되고 악의 없는 친밀한 신체 접촉도 성추행이 된다며 당혹스러워한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은 크게 달라졌다. 성 선택권은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존감이자 특정 남자와의 관계가 끝나더라도 평생토록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밝혔다.

안 후보자는 동성애와 관련해서도 성소수자 편에 섰다. 안 후보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성애는 인류의 삶의 자연스러운 현상의 일부였다. 그 엄연한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는 시대와 여건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동성애 반대 구호를 내걸고 기독교 정당이 급조돼 나왔고 핵심 세력은 대형 교회의 목사, 장로, 그리고 신도들이라며 “이들이 척결대상으로 지목하는 종북좌파와 동성애자의 실체는 사상과 윤리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들, 즉 자유민주사회의 적이 아니라 신봉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자는 인권 문제 해결 뿐 아니라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자는 “모병제로 전환하면 수십만 개의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 모병제는 군대를 양질의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모병제는 헬조선의 구호를 뇌까리면서 자조와 실의에 빠진 청년들의 삶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을 편협하게 그려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안 후보자는 “여성의 입지가 넓어진 현대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더욱 복잡해 보인다. 일본 여성이 원하는 편안하고 소통 잘하는 남자, 유럽 여자들이 원하는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남자, 미국 여자들이 원하는 동등하게 존중해주는 남자…그런데 한국 여자들은 이 모두를 함께 원한다”며 “어떤 여자는 나를 재미있게 해주는 남자를 이상으로 꼽고는, 여기에 더해 명품가방을 원한다. 이래저래 한국남자들의 입장은 더욱 딱하고 서글프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안 후보자는 “한국의 젊은 남자는 힘들다. 가부장제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세대, 가족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지만 그에 따르는 권리는 없다. 이제 가부장제는 해체되고, 집안의 권력은 구성원 모두에게 분산되고 있다”며 “그러나 어쩐 일인지 책임과 의무만은 여전히 가장의 어깨에 무거운 짐으로 놓여 있다. 이런 이유로 남자들이 더욱 결혼생활을 고통스러워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부장제 해체를 말하면서 젊은 남성을 피해자인양 묘사한 것이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젊은 여성의 문제를 은폐하거나 무시하는 행태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철저히 남성중심적인 시각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내용도 있다. 통음과 난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고대 그리스 시대 에로티시즘을 소개하면서 안 후보자는 “남자의 세계에서는 술이 있는 곳에 여자가 있다. 술과 여자는 분리할 수 없는 보완재”라고 썼다.

안 후보자는 “여성은 술의 필수적 동반자다. 이는 만국에 공통된 음주문화다. 여성이 술꾼들을 잘 다루기 때문”이라며 “왜 사내들이 술집 마담에게 아내나 자신의 비밀을 쉽게 털어놓는 것일까?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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