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 표결 통과조차 불투명지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장 임기 등 법적 미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의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등 소수의견을 비난하며 임명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김 후보자에 ‘색깔론’ 딱지를 붙여 정치공세성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당은 자유한국당처럼 김 후보자를 마냥 반대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장의 임기와 지명 절차에 대한 문제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법 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에서 제2의 김이수 헌법소장 후보자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7일 보도자료를 통해 “15개월 후에 문재인 대통령이 재판관 중에서 잔여 임기가 2년이 남지 않은 사람을 다음 소장으로 지명한다면 대통령 임기 5년 중 헌법재판소장을 3명 또는 4명까지 임명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은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에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문제는 임기다. 김 후보자의 헌법재판관 잔여임기는 15개월 밖에 남지 않았지만 헌재소장이 되면 6년의 새로운 임기가 시작된다는 해석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김 후보자의 임기는 잔여임기이고 국회가 입법적으로 정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후보자가 소장이 되고 재판관 잔여임기만 채우고 물러나게 되면 또다시 문재인 대통령은 잔여임기가 남은 재판관 중 한명을 소장 후보자로 지명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장 임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참여정부에서도 헌법재판소장 임기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8월 16일 전효숙 헌법재판관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러자 전효숙 후보자의 임기를 재판관 잔여 임기로 할 것인지 아니면 6년 임기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과 같다.

청와대는 이 같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안정과 중립성’을 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새로운 6년 임기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야당은 이 같은 임기 연장이 편법이라고 주장했다. 전효숙 재판관이 사퇴를 하고 소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라고 청와대는 주장했지만 야당은 전효숙 재판관이 사퇴했으니 ‘국회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 임명한다’는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를 진행하려면 새로운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억지 논리였지만 법 규정대로라면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법적 미비가 가져온 ‘불행한’ 사태였다.

헌재소장과 재판관 후보자 청문회를 한꺼번에 안건으로 붙이는 방식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절차 문제를 끝까지 제기하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3개월 동안 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전효숙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나라당이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 등의 문제에 정부의 손을 들어준 전 후보의 의견을 문제 삼아 낙마시켰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헌재소장 임명 절차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걸림돌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이수 후보자의 경우도 임명 절차에 대한 사후 보정을 하지 않아 생긴 문제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효숙 사태를 의식한 듯 재판관 잔여임기만을 헌재소장 임기로 본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삼권분립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대통령 3인, 대법원 3인, 국회 3인 추천으로 구성돼 있다. 전효숙 재판관은 대법원에서 추천한 경우였는데 당시 전효숙 재판관이 소장이 되면 대통령 추천 4인, 대법원 추천 2인으로 헌재가 구성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 재판관 사표를 수리하고 대통령이 추천했지만 임기가 문제가 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 7일 국회 인사 청문회에 나온 김이수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7일 국회 인사 청문회에 나온 김이수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이수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회 추천으로 헌재 재판관이 된 김이수 후보자가 소장으로 임명되면 공석의 재판관 1인을 국회가 임명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지 권한 해석 문제로 논란이 커질 수 있다.

대통령 추천 몫이었던 박한철 전 소장 후임으로 김 후보자가 소장이 되면 재판관 공석 1석을 대통령 추천으로 채울 수 있다. 반면 김 후보자의 재판관 공석으로 봐서 국회 추천으로 채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김이수 후보자의 인준이 통과되더라도 재판관 지명 권한을 놓고 해석 싸움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이상돈 의원은 “청와대는 대통령이 단순히 재판관 중에서 소장을 임명했기 때문에 박 전 소장 후임 재판관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라며 “하지만 김 후보자가 인준되면 그는 박 전 소장 후임으로 헌법재판소장이 되는 것이고 재판관 김이수의 후임이 공석이라는 해석 또한 가능하다. 이처럼 공석이 된 재판관을 누가 지명할 수 있느냐에 대해 청와대와 국회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헌법에 의하면 재판소장은 재판관 중 임명한다고 돼 있는데 헌법 규정을 사실 잘못 만든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9월 달에 후임 재판소장을 임명을 하는데 그것도 기존 재판관 중에 임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람도 임기가 20개월 밖에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판관들이 혹여나 소장이 되고 싶어 해서 판결을 청와대 코드로 맞출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라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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