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김다솜 기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취재원은 등을 보였다. 명함을 들고 있던 손이 무색해졌다. 이런 일은 잦았다. 나는 어디를 가나 불청객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금 나는 남편, 남자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있다. 유가족과 목격자, 검사와 형사… 내가 만나야 하는 취재원들은 “당신이 누군 줄 알고 내가 답해야 하냐”며 입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름 없는 언론사’의 ‘기자’를 경계했다. 그래도 나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했다.

[관련기사 : 아주 친밀한 살인, 다음 스토리펀딩]

외로운 취재가 시작됐다. 남자친구에게 맞아 죽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취재하기로 했다. 궁금한 게 많았다. 그녀는 어쩌다 살해당했을까, 유가족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실의 조각들을 모아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그 뒤에 숨겨진 여성 문제를 짚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사건기사로 보도된 기사 몇 줄과 방송에 나온 CCTV 장면이 전부였다. 이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남겨둔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사건 담당 경찰서와 관할 구역 파출소로 찾아갔다. 외근이 잦은 형사들은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었다. 출입처 있는 기자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형사들의 개인 번호를 알고 있었다. 나는 부서를 거치고, 거쳐도 그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없었다. 개인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검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건번호, 재판 일정처럼 기본적인 정보도 얻기 힘들었다. 출입기자가 아니란 이유로 검사에게 한 장짜리 공소장을 받지 못해 쩔쩔매다가 다른 언론사 기자에게 은밀히 부탁해보기도 했다.

▲ 드라마 '피노키오'의 한 장면.
▲ 드라마 '피노키오'의 한 장면.
검사와 형사들은 ‘듣보’(듣도 보도 못한) 기자가 귀찮았는지 “공문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출입기자한테도 공문 받고 취재에 응해주냐”고 물으니 “출입기자가 아니라서 공문을 가져오라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출입처 있는 언론사에 다녔으면 취재가 조금은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취재는 진척이 없고, 한숨만 늘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송에 나온 사건 현장을 캡처했다. 그걸 가지고 직접 찾는 수밖에 없었다. 걷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두 시간 만에 무너졌다. 그때 동네 세탁소 앞에 세워진 자전거가 보였다. 자전거를 빌려 페달 위에 발을 얹었다. 세 시간 만에 사건 현장을 찾아냈다.

집주인에게서 피해 여성의 실명과 생년월일을 얻어냈다. 전국에 있는 화장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 화장터까지 찾아가 유족들 앞으로 내 전화번호를 남겼다. 겨우 유가족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전 아홉시에는 형사들이 경찰서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아침마다 전화를 걸었다. 형사는 내 이름을 말하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자양강장제 한 박스를 안고 형사실 앞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렸다.

취재원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나를 외면했던 취재원이 한밤중에 술에 취해 내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내가 찾아가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쫓아 보내던 형사가 형사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 했다.

하나 배웠다. 취재는 출입처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출입처 있는 기자든, 없는 기자든 취재가 힘든 건 똑같다. 다만, 취재가 출입처가 아니라 진심으로 한다는 건 모든 언론사에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취재원들의 마음을 얻기까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내가 몸담은 ‘셜록’
이 취재 기간을 보장해주는 언론사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4개월 전에는 부산 지역 취재기자가 출입기자에게만 정보를 제공해주는 잘못된 출입처 관행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련 기사 : 박상규 기자의 ‘셜록’ 프로젝트, 다음 스토리펀딩]

▲ 김다솜 셜록 기자
▲ 김다솜 셜록 기자

기자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문턱은 여전히 높다. 그게 기자의 숙명이니 따를 수밖에 없을 거다. 앞으로 나는 그 문턱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 출입처 없는 설움도 계속해서 쌓일 거다. 출입처 없는 모든 기자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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