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적임자”, “코드·보은 인사”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5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내정했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김상곤(68) 전 경기교육감, 법무부 장관에 안경환(69) 서울대 명예교수, 국방부 장관에 송영무(68) 전 해군참모총장, 환경부 장관에 김은경(61) 전 청와대 지속가능발전비서관, 고용노동부 장관에 조대엽(57)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각각 발탁됐다. 현행 17개 부처 중 11곳의 장관 인선이 마무리됐다.

이날 지명된 인사들은 문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줄곧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인물들로, 문 대통령과 참여정부 및 대선 캠프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비관료’ 출신들을 대거 기용한 것이 눈에 띈다는 평가다.

아울러 청와대는 조대엽 후보자와 송영무 후보자에 대해 각각 ‘음주운전’ 전력과 ‘주민등록법 위반’(위장전입) 사실을 미리 공개했다. 조 후보자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되긴 했으나 사고 등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송 후보자의 경우엔 투기 목적의 주민등록법 위반이 아닌데다 장관 인사청문회 제도가 본격 도입되기 전인 2005년 7월 이전에 발생한 문제라서 크게 시비될 게 없다는 게 청와대 해명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나머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가급적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검증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 12일자 경향신문 1면
▲ 12일자 경향신문 1면
한겨레는 “위장전입 의혹 등 ‘부실 검증’ 논란이 커지자 인사 발표에 속도 조절을 해왔던 청와대가 이제 더는 인적 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을 통해 5대 기준을 실제 적용할 구체적 기준을 만들겠다고 한 만큼, 이 기준에 붙들려 인사 진도를 더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송영무 후보자를 제외하면 이날 내정된 인사들은 전부 관료 출신이 아니다. 김상곤 부총리 후보자는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았던 2015년 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바 있으며 이번 대선에선 문 대통령 대선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송 후보자와 조대엽 후보자 모두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각각 더불어안보포럼과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등에 참여했다.

야권은 5개 부처 장관 인선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청와대가 일부 장관 후보자의 비위 의혹을 미리 공개한 것은 문 대통령이 공언한 ‘5대 비리자 인사배제 원칙’을 이번에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개혁과 전문성을 내세웠지만, 전형적인 캠프 보은인사이자 코드인사”라고 논평했다. 오신환 바른정당 대변인도 “원칙과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사과도 없고 새로운 인사 기준도 없는 일방적 후보 내정은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며 “야당을 협치 대상이 아닌 정쟁과 무시의 대상으로 삼는 국정운영 방식이 더 이상 계속돼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경환·조국 ‘투 톱’ 검찰개혁 의지

특히 문 대통령이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새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하면서 조국 민정수석과 함께 비(非) 검찰 출신이 ‘검찰 개혁’을 구현할 최전방 ‘투 톱’으로 나서게 될 전망이다.

안경환 후보자는 인권 문제에 정통한 진보 법학자로 참여정부 때인 2006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다 2009년 7월 임기 만료를 4개월 남기고 이명박 정부의 인권 의지를 비판하며 사퇴했다.

한국일보는 “안 후보자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는 서울대 법대에서 선후배 교수로 지냈고, 국가인권위와 참여연대에서도 활동한 공통점이 있다”면서 “안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조 수석과 함께 강도 높은 검찰개혁과 법무부의 문민화를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인선 발표에서 안 후보자에 대해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검찰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 12일자 한국일보 3면
▲ 12일자 한국일보 3면
안 후보자는 이날 “퇴임한 학자로서 뜻밖에 공직 후보자로 지명 받았다”며 “장관직을 맡게 되면 법무부의 탈검사화 등 대통령 공약을 실현하는 데 앞장서고, 국정과 우리 국민 생활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존중의 정신과 문화가 확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자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 재직 때 법무·검찰 개혁을 위한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4~2005년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한국일보는 “예고는 됐으나 역시나 이례적인 ‘파격 인사’에 안 후보자가 검찰의 반발을 잠재우고 인적·조직 쇄신을 이뤄낼 장악력을 발휘할지 일각의 우려도 없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그가 법무부와 검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기우라는 시각도 만만찮다”고 전했다.

김상곤 ‘친전교조 성향’이 불편한 조선·동아

교육부 장관 후보로 내정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두고도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진보적 교육·복지 정책의 아이콘”이라는 평가와 함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친전교조 성향에다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을 역임했고, 이번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혁신학교 확대, 초·중등교육 권한의 교육청 이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 등을 비롯한 문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설계했다.

서울시문은 “올 7월 발표하기로 한 2021학년도 수능 개선과 고교 내신산출 제도 개선, 올 10월 예정된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 등 전기고 입시계획 발표 등 교육 공약들이 분초를 다툴 정도로 시급한 데다가, 김 후보자가 설계한 교육 공약을 지휘할 인물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장관 인선에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이어 “각종 교육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교육을 설계한 김 후보자가 이를 풀어나가는 게 합당하며, 진보 교육감 흐름이 이어지는 추세 속에서 집권 초 교육 개혁을 추진하는 데 김 후보자 이외에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라고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김 내정자는 교육감 재직 시절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정책을 추진했다. 무상급식은 복지논쟁을 일으키며 전국적 의제로 부상했고, ‘보편 복지’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며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 정책도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다른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잇따라 도입하며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 12일자 조선일보 3면
▲ 12일자 조선일보 3면
반면 조선일보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정책 추진으로 교육계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논평은 빼먹은 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의 말만 전하며 김 후보자가 ‘친전교조 성향’임을 강조했다.

전교조는 논평을 내어 “교육부 장관 지명이 늦어진 데 따른 혼란이 극복되고 신속한 인사청문회를 거쳐 새 정부의 교육정책 기틀이 바르게 잡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반면 교총은 “김 후보자는 무상 급식, 학생 인권 조례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혁신학교 확대 등으로 교육 현장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며 “교육감 퇴임 후 특정 정당 중책을 맡은 사람이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교육부 장관에 적합한지도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또 “김 후보자는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교육감직을 전격 사퇴했지만, 새천년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다”며 “당시 김 후보자는 ‘무상 급식’을 연상케 하는 ‘무상 버스(대중교통)’ 공약을 내걸어 ‘포퓰리즘 전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김상곤 후보자는 민선 1·2기 경기도교육감을 지낸 친전교조 성향의 대표적 진보인사다”라며 “교육감 시절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같은 교육개혁을 밀어붙여 거센 포퓰리즘 논란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 12일자 동아일보 사설
▲ 12일자 동아일보 사설
환경부 수장이 ‘시민운동가’ 출신이라 문제?

조선일보는 새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 위원으로 있다가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은경(61) 지속가능성센터 지우 대표에 대해선 ‘타협, 소통이 부족하다’고 꼬투리를 잡았다.

최근 국정기획자문위 환경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와 미세 먼지 사태 등은 환경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 생긴 일”, “국민들 시선이 차갑다”는 등 날 선 비판을 했다는 이유다. “환경부가 4대강 사업과 미세 먼지 대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에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이유로 새 정부가 ‘반성이 필요한 부처’로 지목해 인사 물갈이를 했다는 말이 나온다”고도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김 후보자가 인사 청문회를 통과할 경우 새정부의 ‘환경 라인업’은 시민단체 활동이 주 경력인 외부 인사로 모두 채워진다”며 “신임 차관인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은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김혜애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 내정자는 녹색연합 공동대표”라고 밝혔다.

▲ 12일자 조선일보 2면
▲ 12일자 조선일보 2면
동아일보도 김 후보자의 ‘시민운동가’ 출신을 문제 삼았다. 동아일보는 “어제 발표된 장관 후보자들은 친전교조·비법조인·비육사·시민운동가·친노동계 출신으로 새 정부의 개혁 코드에 맞는 문재인표 인사들”이라며 “특히 환경부 장·차관에는 모두 환경운동가들이 내정돼 4대강 복원처럼 논란 많은 난제를 과감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에서 ‘적폐청산을 통한 재조산하(再造山下·나라를 다시 만듦)’를 주창한 문 대통령”이라며 “이들을 내세워 개혁에 가속도를 내겠다는 예고인 셈이지만 비주류 아웃사이더를 통한 개혁 과속은 자칫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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